13. 꽃이 울어요
“으앙, 꽃이 불쌍해요.”
“응? 왜 울어?.”
“저것 봐요. 꽃이 울잖아요. 으앙. 할머니 내가 저 꽃에 물도 주고 밤에는 데리고 잘 게요”
할머니는 다섯 살의 손녀를 가슴에 꼭 안았다.
할머니는 해마다 봄이 오면 활련화를 사다가 피고 지고 하는 것을 여름 내내 바라본다. 그러다가 가을의 끝자락에 꽃이 다 지게 되면, 또 다음의 봄을 기다린다.
활련화는 할머니의 어머니가 좋아하던 꽃이라 그 아름다움과 함께 어머니를 생각하며 물을 주곤 한다.
오늘도 주황,빨강,노랑의 활련화를 사 와서 햇볕이 잘 드는 오픈 베란다에 놓았다. 그런데 그 베란다에 가려면 딸이 쓰는 방을 거쳐야 한다. 딸은 엄마 방 앞의 베란다로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엄마가 자주 볼 수 있지 않느냐 고. 그러나 할머니 방 앞의 베란다는 유리문이 있어서 해를 많이 볼 수 없으니 꽃에는 이롭지 않다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손녀가 본 것이다.
손녀는 꽃을 서로 싫다고 하는 줄 알았나 보다.
아이는 싫어한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상처인 줄을 아는 것이다.
그래 맞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저를 싫어한다면 그것이 아픔이 되리라.
그래서 꽃도 울 줄을 알 것이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떠랴.
동물 중에 우리 인간 만이 누리는 언어는 창조주가 폭력을 남발하라고 부여한 것은 단언컨대 아니다. 언어폭력의 상처는 커져서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그 참된 눈망울에서 우리는 진실을 배워야겠다.
사람은 일생동안 얼마나 웃고, 또 얼마나 울까? 웃음이 울음보다 많으려나?
당연히 그래야 되겠지?
모두가 웃음이었으면 이 세상은 더욱 빛이 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