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사랑은 이제 '종교'의 영역이 아닐까?
'구의 증명'을 읽고 '급류'를 읽었더니, 그리고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나니 불현듯 드는 생각이었다.
뭐 순서대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나서 보니 세상에 널려있는 온갖 사랑에 대한 이미지, 이야기, 등등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사랑이라는 종교에 빠진 신도들께서 한껏 자신의 신앙심을 폭발시킨 것이었을 뿐이었나? 아. 정말?
그러니까 사람들은
'오, 주여' 하듯이 '오, 사랑이여'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낭만적 연애'의 완성을 위해
부모를 죽이고 주인공들을 괴롭히고 주변 인물들을 바보로 만든다.
그리고 완성하는 낭만적 연애, 즉 '사랑'이다.
'구의 증명'에서 본 그 처절한 사랑이
양태가 조금 다르지만 이 소설에서도 매한가지로 반복된다.
그래서 조금 짜증이 난다.
그렇게까지 추구해야 할 것이 사랑인가?
사실 줄거리는 앙상하다.(단순화시키고 나면 안 그런 게 어디 있겠냐마는)
주인공 여자애 '최도담'과 남자애 '이해솔'이 만난다. 뜻밖의 사건으로 헤어진다. 둘은 각자 고통을 겪는다.
도담은 방문을 걸어 잠갔다. 커터 칼로 팔 안쪽과 허벅지를 그었다. 처음 해 보는 자해였지만 어떤 사람들이, 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지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순간에는 모든 고통스러운 생각을 잊었다.
하지만 둘은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고 서로를 안기만 했다. 배고파지면 방 안에 있는 것을 먹었고 그 외에는 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듯 다시 안았다. 방 안이 서로의 체취로 가득했다. 헤어져 있던 시간을 채우려는 듯 오래 서로를 안고 있었다. 박탈당했던 행복을 되찾은 것처럼, 품에 안고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다시 잃어버릴 것처럼.
미친 듯이 사랑하지만 다시 헤어진다.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해솔이 불안하게 서성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금세 울상이 됐다.
"네가 떠나면, 그러면 나는 완전히 혼자잖아."
"......"
뜻밖의 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
“너희 아버지는 나를 살리려고 손을 놓으셨어. 나는 최 반장님에게 두 번이나 구해진 거야.”
해솔은 울음을 삼키며 말을 마쳤다.
결국 둘은 다시 만나고 굳세게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개 같은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기로 한다. 두려움 없이.
소설 속에도 나오듯이 사랑이 교통사고와 같다면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처리과정까지 마무리되어야 교통사고 처리가 끝나는 것일 텐데......
왜들 그리 사람들은 번개처럼, 갑자기, 운명의 장난으로, 무심코, 벌어지는 사고의 시작(낭만적 연애)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왜들 그리도 열정적 감정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나는 조금 짜증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또 일견 사실 사랑이란 것의 신도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들 그러다가 늙어가는 거 아닌가? 누구 말마따나 덕통사고와 탈덕의 과정?이랄까?
그래서
문득 내가 이리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은, 그런 자신에 대한 변명, 합리화,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주인공들에 대한 질투심, 이런 감정들이 그야말로 급류처럼 나를 휘감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없는,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에 대한 거시기한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