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쾌감의 원인은 뭘까?
이 소설들(7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을 보고 나는 무척 짜증이 났다.
지리멸렬한 내 삶이 들킨 것 같아서, 그래서 얼굴이 화끈하고 불쾌했던 것일까?
나도 나름 '펀, 쿨, 섹'하고 멋지게 살고 싶은데,
사실 '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라고 말해줘서?
내 내면의 빈곤함을 덮어 놓았던 천 하나를 휙 뒤집어 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긁혔나?
대머리인 친구들과 당구를 칠 때 '대머리'라고 놀리면 맨탈이 나가는 것처럼
찌질한 나에게 찌질하다고 지적하는 누군가를 맞닥뜨린 것 같은 상황인가?
확실히 작가는 예리하다.
일상의 어떤 장면, 무심코 넘어가던 그 장면을 정확히 포착한다.
-- 그래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쥔 게 있는 세대잖아. 감사하며 살자.
남편이 선량한 듯 서글픈 얼굴로 대꾸했다.
--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 결국 이렇게 된 거 아닐까?
-- ‘이렇게’가 뭔데?
-- ……
(좋은 이웃)
요런 장면들이다. 상대방이 --‘이렇게’가 뭔데?라고 했을 때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는 그런 장면.
삶과 타협하며 적당히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소시민에게 그게 정말 최선이었냐고 묻는
요런 장면들.
확실히 예리하고 날카롭지만......
너무 스트레스다.
그리고 나서 작가는 별 설명이 없다.
마치 남의 아픈 부분을 푹 찔러 놓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각 단편들의 결말은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 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요.
--……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김과 박, 서를 등진 오대표의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다. 이연이 코트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썼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홈파티)
--은주야 오늘 귀국하지? 조심해서 와. 늘 고마워 우리 딸. 휴대전화를 쥔 채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곤 마른침을 삼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만 고맙다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휑한지 모르겠다고.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택시가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숲 속 작은 집)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 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
(좋은 이웃)
기태가 용기 내 반말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기류가 흐를 때 기태가 꺼내드는 카드였다. 이번에도 바로 ‘읽음’ 표시가 떴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기태는 여느 때처럼 목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게 식도염 탓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식도 위로 또 정체불명의 뜨거운 덩어리가 역류해 가까스로 삼켰는데, 그 덩어리에서 어느 짐승의 내장 맛이 났다.
(이물감)
기진이 제 앞의 케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미 반쯤 녹아내린 초가 케이크 윗면에 푸른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초가 다 타기 전에 소원을 빌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기진은 그 빛 앞에서 막상 무얼 말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케이크 옆의 샴페인 병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기진은 그 물방울을 응시하며 ‘지금 이 술을 딸지 말지’ 고민했다.
(레몬케이크)
지지직 소음을 내며 꺼진 구식 무전기처럼 혹은 깨진 픽셀 파일처럼 기이한 인상으로 ‘정지’된 로버트의 얼굴을. 상대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결국 못한 누군가의 입술을. 그래서 나는 오래전 들은 팝송에 한국어로 새 가사를 덧씌우듯 내가 듣지 못한 말을 스스로 중얼거렸다. 몇 해 전 한수가 끄덕여준 대로 “안녕”이라고. 부디 평안하라고.
(안녕이라 그랬어)
지수가 절망적인 얼굴로 뭔가 결심한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방금 전 낙숫물에 섞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이 집에 일부러 흘리고 간 단어마냥 툭툭.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부디 살라고 얘기하는 물소리가.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빗방울처럼)
7편의 단편 소설 결말 중에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은 1편 정도?
나머지는 다 애매하고, 혼란스럽고, 아쉽고, 지리멸렬하다.
결론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건가?
어쩌라구?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평론가(신형철)는 김애란에 대해서
누군가를 사회학자라고 규정할 자격이 사회학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 이번 책에서도 '존재론적 단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리한 재현 역량이 '경제적 인간'의 내면을 탐사하는 표현 역량의 빛나는 지원을 받는다. R.G. 콜링우드에 따르면 남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악의 진정한 근원이고, 좋은 예술은 공동체를 제 마음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의식의 부패를 막는 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안녕을 위해 김애란의 안녕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라고 평했지만
다른 평론가(인아영)는 장류진에 대해서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 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감정에 침잠해 있기보다는 가볍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대단한 환상을 품게 하는 커리어 우먼이나 거대한 구조와 싸우는 정의로운 투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도 아니다. 다만 노동과 일상의 경계를 명민하게 알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이 시대 가장 보통의 우리들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정확히 김애란 작가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서 비교하기가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내가 김애란 작가의 이 작품에서 느낀 것이 바로 '비대한 자아, 내면의 진정성 추구'였다.
그래서 무척 짜증이 났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리얼리즘을 좋아한다.(온갖 종류의 리얼리즘이 있지만)
그리고 참된 리얼리즘이 되려면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울하기만 해서야 어디.....
보고나서 한없이 우울하기만 하다면
뭣하러 소설 나부랭이를 처 보고 앉았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