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성해나)

by 궁금하다

어쩌면 나는 저번 주에 읽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성해나의 이 단편 소설집을 읽고도 성해나 소설 자체의 모습보다는 김애란의 소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것은 바로 그 '다른 점'뿐인 것을.


그리고 나는

강렬함,

결말의 강렬함, 이것이 바로 그 '다른 점'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김애란의 소설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것이 소시민적인 고통의 공유(?)에서 온다고 생각한다.(왜 이렇게 야멸찬 말을 뿜어내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김애란의 단편소설들은 지리멸렬한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성해나의 소설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혼모노에서


서술자인 주인공 '나'는 '장수할멈'을 모시는 박수무당이다. 어느 날 앞집에 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애기가 이사를 오고 그 신애기는 알고 보니 '나'가 모시던 장수할멈을 받은 무당이었다.(신이 옮겨가기도 하는 모양) 장수할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던 '나'는 결국은 이렇게 내쳐졌고 그래서 요 근래에는 신빨도 서지 않았던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돈이라도 땡겨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큰손이었던 단골 황보 국회의원마저 '나'가 아닌 신애기에게 큰 굿을 맡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굿을 하는 곳에 가서 대결과 같은 혼자만의 굿을 벌인다. 작두를 타고 칼춤을 춘다.


북소리가 거세진다. 하늘은 낮고 볕은 강하다. 구름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신애기와 내 얼굴에 번갈아 가며 그늘이 진다. 이제는 등뿐 아니라 정수리와 목덜미, 발가락까지 찐득하게 젖어든다. 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뚝뚝 떨어진다. 뒤로 넘어갈 듯 기진맥진한 상태로 작두를 탄다. 신애기 역시 지친 듯 보이나 둘 중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삼십 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 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헐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가짜 무당이 되어버린 '나'가 진짜 무당을 쌈 싸 먹는 이야기다.(뭐 물론 작가가 이렇게 활자를 통해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주인공 '나'에게 '장수할멈'은 중요치 않다.

가짜지만 그래 뭐 어때? 이것이야말로 혼모노.(혼모노ほんもの 일본어로 진짜라는 뜻, 반의어는 니세모노(にせもの)-나무위키


강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인물을 창조하고 갈등을 증폭시킨 후 강렬한 결말.


좋고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 매우 그럴듯하게 상상하게 해 주었던 점('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에서 드러나는 덕후들의 세계, '스무드'에서 드러나는 부자들과 극우 집회 속의 사람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의 건축가들의 모습, '우호적 감정'에서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세계, '잉태기'에서 시부와 며느리의 관계, '메탈'에서의 세 청춘들) 그리고 그 세계들을 능청스럽게도 들려주는 작가의 능력.


좋고도 마음에 들었다.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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