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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by 궁금하다

멋지다. 글로 사진을 찍는 작가

나이마저 어리다.

뜬금없는 열등감을 폭발시킬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그야말로 갑자기 불현듯)


작품집에 실린 단편들은 다음과 같다.

잘 살겠습니다(곧 결혼하는 젊은 여자), 일의 기쁨과 슬픔(직장인 젊은 여자),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결혼 적령기의 젊은 남자), 다소 낮음(결혼도 생각하고 있었던 뮤지션 젊은 남자), 도움의 손길(신혼부부인 젊은 아내), 백 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막 취업하는 젊은 여자), 새벽의 방문자들(결혼을 생각했던 남자와 막 이별한 젊은 여자), 탐페레 공항(취업을 준비하다가 간절히 바라던 일을 버린 젊은 여자)

그리고 단편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어떤 공통적인 면모가 있다.

그들은 현실의 삶에 찌들어 살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는 나는 그렇게 눈물 난다거나 하지는 않다.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다들 그렇게 사는 그 정확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것이 예술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도 애매했다.
그런 상황에서 글의 후반부에 나온 평론가의 말은 내가 생각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한 것 같다.


장류진의 소설은 말한다.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 원을 내면 만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잘 살겠습니다) 이 세계는 정확히 움직인다. 주는 만큼 돌려받는 곳. 딱 한 만큼 대가를 치르는 곳.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에누리 없이 계산되는 곳. 합리적인 인간을 상정하고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장류진의 소설에 기본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세계다. 이 철저한 시스템 안에서 생존해야 하는 개인은 일, 사랑, 돈, 취미, 인간관계, 젠더 폭력을 고민하면서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성차별적인 회사 구조에서 입사 동기와 결혼한 여성 직장인(잘 살겠습니다)....... 무자녀 기혼 여성(도움의 손길)이 그런 이들이다. 이 작고 평범한 개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복잡한 그물망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물음에서 장류진의 첫 번째 소설집이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 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감정에 침잠해 있기보다는 가볍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대단한 환상을 품게 하는 커리어 우먼이나 거대한 구조와 싸우는 정의로운 투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도 아니다. 다만 노동과 일상의 경계를 명민하게 알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이 시대 가장 보통의 우리들이다.


그렇다. 이 소설들, 그리고 장류진의 소설들이 못 견디게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우울하고 사변적인 자아, 딱 질색이다. 고민도 하루 이틀이지. 맨날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말이다. 항상 호구가 될까 봐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그래서 속으로 음청 계산을 해대는,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지만 결국 oo인 채로 지질하게 결말을 맞고 마는 남자(그런 기이한 작별인사가 끊어질 듯 이어졌고, 그렇게 끊으려는 자와 끊지 못하는 자의 실랑이가 한참을 더 이어진 끝에 통화가 끝났다. 세상 질척거리는 통화였다. 심지어 나는 울고 있었다. 최악이었다.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져버리고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뚜껑을 닫지 않은 채로 올려놨던 작은 생수병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바닥에 두었던 백팩 위로 물이 쏟아졌다. 나는 황급히 백팩을 집어 들었다. 백팩의 앞주머니 지퍼가 활짝 열려 있었다. 이 씨발년이. 열었으면 닫아놔야 할 거 아냐. 소중한 황금연휴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_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그렇게들 살지 않나? 그러면서 울고 웃고 살지 않나?

작가의 소설들에서 바로 내 모습을 봤고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포착해 내는 영리한 작가에게 못 견디게 질투심을 느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다 재미있었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중고거래 이야기),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다소 낮음, 새벽의 방문자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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