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다자이 오사무)

by 궁금하다

한때 홍대여신이라고 불렸던 요조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오며 가며 이름을 들었고, 그 이름 '요조'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한 것은 아니었죠.

그런데 바로 이 소설, '인간 실격'의 주인공이 요조.

소설을 한참 보다가 불현듯 이 가수를 떠올렸고, 과연 연예인이라면 훨씬 더 주인공 '요조'에게 공감하기 쉬었을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연예인이야말로 대중의 사랑을 먹고살면서 그들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또 그 내면에는 그것 때문에 빚어진 고통이 있지 않겠습니까?


흠,

주인공 요조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말해볼까요?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처럼.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서문과 세 편의 수기, 후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는 세상에 상처받기 쉬운,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익살꾼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다케이치(어릴 때 요조의 본모습을 꿰뚫어 본 학교의 바보 같은 아이), 호리키(동경에서 요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자기 이익을 챙긴다), 넙치(시골 부자였던 요조 집안의 동경 대리인) 같은 남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요조를 뜯어먹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호리키와 넙치는 구역질이 날 정도죠.


또는 긴자의 카페 아가씨(쓰네코, 요조와 함께 자살 시도), 출판사 여기자(시즈코, 시게코라는 딸이 있다), 요시코(담배가게 아가씨, 요조와 결혼), 약국집의 부인(한쪽 다리가 불구) 같은 여자들이 있었고 요조를 보살펴 줍니다. 술을 마시고 모르핀에 중독되어 점점 쓰레기가 되어 가는 중에도.

여자들은 요조의 섬세한 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모양입니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뭔가 해 주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져. ……언제나 쭈뼛쭈뼛 겁먹고, 그러면서도 익살스럽고. ……가끔 혼자 굉장히 침울해하고 있으면 그 모습이 더 여자의 마음을 흔들거든."(시즈코)


그렇게 점점 더 요조는 영락해 가고 결국은 스스로를 포기하고 맙니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초여름쯤에는 쇠창살이 끼워진 창에서 병원 마당의 작은 연못에 빨간 수련이 피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만,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마당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자 뜻밖에도 고향에서 큰형이 넙치와 함께 저를 데리러 와서는 아버지가 지난달 말에 위궤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하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저는 테쓰라고 하는 그 늙은 식모한테 몇 번인가 이상한 방법으로 겁탈을 당했고, 가끔씩 부부 싸움 같은 것도 하게 되었고,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나는 항상 '내면의 진정성, 비대한 자아' 어쩌구 해 가면서 내면을 서술한 여러 사소설들을 비난해 왔었습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뒷담을 까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소설은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올까요?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읽고 욕하던 여러 소설들은 남의 고민?

다자이 오사무의 이 소설은 내 고민처럼 느껴져서일까요?

항상 주변인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익살꾼의 면모를 가장해 왔던 나?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형도는 '빈집'이라는 시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 인간 실격을 선언하고

기형도는 스스로 문을 잠그고 있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자기 연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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