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식(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궁금하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가고 싶다.

욕망이란, 인간의 욕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끝없는 갈증,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사람들은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된다.

마셔보진 않았다.

하지만 바닷물을 마시면 탈수현상에 빠지고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목이 말라 바닷물을 마시면 염분 때문에 더 많은 물을 배출하고, 그러면 더 많은 바닷물을 마시고, 결국 신장이 망가지고, 환각, 의식불명, 신부전으로 죽는다(고 한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소설집, '월식'에서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작품들이 바로 이런 탐욕을 다루고 있다.

지나친 탐욕은 패망을 부른다.

이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 발짝만 더 디디고 싶다.

그리고 그 결과 벌어지는 참혹.


'지옥변'에서

화가 요시히데는 자신이 뛰어난 화가라는 자부심과 오만이 넘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외동딸만은 몹시 사랑하고 있다.

어느 날 대영주에게 지옥변 병풍을 그릴 것을 명 받고 자신이 본 것만을 그린다는 신념대로 제자들을 괴롭히면서 여섯 달 동안 지옥을 그려낸다. 그러나 병풍 한가운데에 귀족의 우차(牛車)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자신이 본 적이 없는 장면이라며 영주에게 귀족의 우차 한 대를 자신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달라고 요구한다.

대영주는 요시히데의 요청을 듣고 아름다운 여인 하나를 귀부인 옷으로 갈아입혀 함께 불태울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당일 밤 가마 안에는 요시히데의 딸이 묶여 있고 마침내 우차가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연기에 숨이 막혀 뒤로 몸을 젖힌 하얀 얼굴, 불길을 떨쳐내려고 마구 헝클어진 길다란 머리채, 그리고 순식간에 불길에 뒤덮인 당의의 아름다움...... 참으로 참혹한 광경이었습니다. 밤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가면서 연기가 건너편으로 사라졌을 때 붉은색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불길 속에서 처녀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불기둥을 앞에 두고 굳어버린 듯이 서 있는 요시히데는 기괴한 모습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옥의 형벌에 시달리는 듯하던 요시히데는 이제 태도를 돌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광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황홀한 법열과도 같은 광채를 주름진 얼굴에 가득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금 대영주님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 팔짱을 낀 채로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요시히데의 눈에는 자신의 딸이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오로지 아름다운 화염과 그 속에서 고통을 겪는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요시히데는 병풍을 완성시킨 다음날 밤에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은 것입니다.


아마 화가는 자신의 딸을 태울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딸이 타는 모습을 앞에 두고 그는 그림을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서 나의 힘으로는 이 화형식을 멈출 수 없고 그럴 바에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타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자'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대한 욕망은 결정적 순간에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욕망이란 좌고우면 하는 것이 아니니까. 탐욕의 대상으로 직진하는 거니까.


이런 식의 흥미 있는 단편들이 있다.


대여섯 치나 되는 코를 가진 나이구 스님.(대충 계산해보면 20cm 정도?)

코만 줄어들면 사람들로부터 받는 비웃음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코)


고구마죽을 배 터지게 먹고 싶은 5품 무사.

실제로 고구마죽을 양껏 먹게 되자 욕망을 품고 있을 때가 행복했음을 느낀다.(고구마죽)


호색한 돈주앙 헤이츄가 시종녀에게서 정을 떼려고 그녀의 요강을 훔쳐 달아난다.(호색)


헤이츄는 조금 전에 자신이 요강에서 들어 올린 물체를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쓴맛에 섞인 단맛이 묘한 여운을 주었다. 그의 입안에는 곧 감귤의 향기로 가득했다. 미묘한 향기였다.


죽어가는 헤이츄의 눈동자에는 미소 짓는 시종의 얼굴이 떠올랐다. 풍성한 머리카락에 구슬 같은 얼굴이었다.


이런 식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탐욕의 모습.

이런 단편들이 내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전개, 나는 그런 것을 바란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아직은 이런 게 훨씬 속 시원하고 좋다.

그래서 내 자신, 왠지 겁나고 두렵다.



p.s. 오히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 유명해진 '라쇼몽'과 '덤불 속'은 심상했다.(영화는 두 편을 합쳐서 만든 영화라는데.....)

오가며 들은 것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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