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장 폴 사르트르)

by 궁금하다

책의 100페이지를 넘어갈 때쯤 나는 구토를 느꼈다.

이게 과연 소설인가?


나름 단단히 마음먹고 펼쳐든 소설인데......

카뮈 형 책을 몇 권 읽었으니까 사르트르 형 책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실존주의 형님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집어든 소설이지만

역시 쉽지는 않았다.

딱히 두드러지는 갈등도 없고, 인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지 않은 데다가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끊임없이 욕지기를 느낀다.

어쩌라구?


그런데 책의 200페이지를 넘어갈 때쯤 불현듯

나의 이런 혼란이 바로 사르트르 형의 노린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돌아가는 게 아냐'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인물 간의 관계, 사건의 흐름을 명확히 하면서 읽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 아닐까?


그 뒤부터는 그냥 활자를 따라가면서 읽었다.

그래서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왜 내가 사르트르의 생각을 숙제하듯이 해석하고

그것이 틀릴까 봐 안달해야 하는가? 하는 반감이 자꾸 들었다.(우둔한 것이 자존심만 세다)


어느 유투버는 타인은 지옥이다(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서)라는 관점에서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앙투안이 끊임없이 구토를 느끼는 것은(돌멩이를 집어 들었을 때,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타인의 얼굴을 보면서, 카페에서 맥주잔을 쥐면서, 땅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집으려고 하면서,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면서...... 등등등) 그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그 인식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고, 오히려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음을 느낄 때 구토를 느낀다. 그리하여 어디로 가더라도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앙투안이 자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하는 순간(자신을 관찰하는 메타인지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구토로부터 벗어날 희망을 얻게 된다고 하더라.

[북토크 편집본] 구토 / 장 폴 사르트르 - 타인은 지옥이다


책 해설에서는

인간이 의식과 언어를 통해 존재들을 지배하지만, 인간은 종종 자신의 의식이 '반쯤 잠든 상태'에 있길 바라기도 하며(인간은 게으르니까), 사르트르는 그런 상태에 빠진 인간을 경계한다. 그런 세계는 반복적이고 인습적이며 일상성에 완전히 매몰된 세계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인간이 자기와 자기가 아닌 존재들의 본래 모습에 주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느 순간 사물들이 인간이 부여한 도구성과 유용성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이유 없이 존재하는 날것'의 모습으로 역습해 올 때가 있고, 바로 로캉탱은 실존적 충격을 받게 된다. 그가 경험한 '구토'는 바로 이러한 필연성 없는 존재들의 기괴하고 낯선 나상(裸像)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부조리한 감정이라고 설명하더라.


그래서


내가 책을 읽으며 생각할 때는

앙투안이 뭔가 본질적인 용도에서 벗어난 것이 생생한 감각으로 느껴질 때 욕지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이 목적이나 의미가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말처럼

본질(?), 의미 같은 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나?

어쨌든 태어났고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지.


거기에 대해서 카뮈 형은 '페스트'에서 직분에 맞게 성실하게 사는 인물을 보여주었고

사르트르 형은 '구토'에서 존재라는 것 자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알듯 말듯하고 알쏭달쏭하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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