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제는 뫼르소가 어떤 인물인지 좀 알 것 같다.
예전 어렸을 때, 이 소설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었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예전에는 뫼르소가 왜 총을 쏘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혼란스러웠었는데....
이제는 총을 쏜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르트르의 말을 좀 빌리면(책의 후반부에 함께 실린 사르트르의 해설)
이 책을 읽노라면 우리는, 옛적에 스스로의 풍모에 의해서 값진 것임을 드러내 보일 뿐 구태여 무엇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 작품들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무상성의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이 상당히 애매하다는 인상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자기 어머니가 죽고 난 바로 그 이튿날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그리고 또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살해한, 자기는 '전에도 행복하였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분명하게 말하며, 사형집행을 받는 날에는 단두대 주위로 많은 구경꾼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기'를 원하는 이 인물을 어떻게 이해애야만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바보다. 한심한 녀석이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보다 더 눈이 밝아서, '무죄의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
카뮈는 그보다 몇 개월 후에 출간한 시지프 신화에서 자기 작품의 정확한 해석을 제공하였다. 즉 그의 주인공은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도덕적인 사람도 부도덕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범주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고 그는 다만 작가가 부조리라는 이름을 할애하는, 매우 특이한 종류에 속한다.
.......
이리하여 벌써 소설의 제목은 부분적으로 해명이 된다. 이방인이란 세계와 대면하고 있는 인간이다.
다시 말해 이방인, 뫼르소는 카뮈가 자신의 부조리 철학을 보여주기 위해, 묘사하기 위해 예로 들어준 인물인 것이다.
뫼르소는 총으로 아랍인을 살해했고 동기는 뚜렷하지 않다. 총이거나 칼이거나 또는 살인이거나 중상해를 입히거나 중요하지 않다. 단지 뫼르소에게 일어나는 이 사건은 세계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세상이 부조리하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
그 이후 뫼르소는 돈을 주고 변호인을 선임하지도 않고 사형이 결정된 후 찾아오는 사제에게 회개를 하지도 않는다.
사제는 일종의 슬픈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나는 벽에 등을 완전히 기대고 있었으므로, 빛이 나의 이마 위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무어라고 몇 마디 말했으나 나는 듣지 못했다. 그러더니 그는 매우 빠른 어조로, 나를 껴안는 것을 허락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싫습니다."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는 돌아서서 벽으로 걸어가더니 천천히 그 위에 손을 갖다 대고, "그래 그렇게도 이 땅을 사랑합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뫼르소는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한 '사형수의 자유'를 보여주는 인물인 것이다. 스스로 자살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종교에 귀의하면서 철학적 자살을 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부조리의 인간, 그 예시.
어렸을 때, 나는 뫼르소를 범죄심리학적으로다가 생각한 모양이다. 살해의 동기를 분석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 좀 이해가 안 된다. 카뮈의 부조리를 바탕에 깔고 이 소설을 읽을 때 뫼르소는 '카뮈의 이론을 보여주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뫼르소는 그런 인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인물, 사건, 배경 하면서 줄거리를 따라가며 읽는 것은
이 소설에는 해당되지 않은 듯싶다.
소설 속의 인물들과 예전에 알았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 인물류와는 다른 인물인 것이다. 작가가 창조했지만 자기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이끌어가는 것 같은 독립적인 인물이 아닌 것이다.
결국 뫼르소는 어디까지나 작가인 카뮈의 창조물이다.(작가의 의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아들 같은, 카뮈의 부조리를 충실히 보여주는,
그런 인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조리한 뫼르소의 모습(자기 어머니가 죽고 난 바로 그 이튿날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에 나 스스로가 겹치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