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by 궁금하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는 신화가 되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작가가 이제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가 되었다는 입지전적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요절한 후 남긴 시들이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남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당대 젊은이들의 느꼈을 외로움과 쓸쓸함. 군사 독재의 시기를 보내던 대부분의 내성적, 소극적 젊은이들이 이 시인의 시에 열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시인은 그런 청년들의 마음을 생생하고 날카롭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이 그때 한참 유행하던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같은 류의 열풍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요절한 젊은 시인, 젊은 나이에 죽은 록스타 같은...

더구나 그가 요절했다는 종로의 파고다 극장은 나 또한 가본 적이 있다. 어린 내가 성인 영화를 보고자 간절히 찾아갔던 그 극장에서 시인이 숨졌던 것이다.
시인이라는 이세계 사나이의 족적이 신기하게도 나와 겹치는?

나와 다른 세상 사람이지만 동시에 나의 동선과 겹치는?

약간의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느낌?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제일 앞에 나온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산문과 맨 뒤에 있는 원재길 시인의 '기형도에 관한 추억'이다.


대구에 도착하였다. 밤 9시 20분. 버스터미널은 환하였다. 예상했던 막막함이 덮치듯 나를 마중하였다. 먼저 내일 떠날 전주행 차편을 수소문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내일 전주로 떠날 것이다.

장정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집에 있었다. 10시에 대구백화점 앞에서 그를 만났다. 푸른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짧은 머리의 소년. 우리는 가까운 호프로 가서 한 잔 하였고 내가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줄 그는 금방 눈치챘다. 연전에 원재길이, 그 후에 박인홍이, 그리고 달전에는 박기영, 박덕규가 대구에 왔었다고 했다. 나에게 왜 술을 많이 안 하느냐고 그는 물었다. 나는 그와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은 직업으로 시를 쓰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열음사에서 포르노 소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나도 그것을, 아니 <그것은 나도 모른다>(1천 매)가 곧 나올 거라고 했다. 서울서 봤을 때는 말이 없었는데 대구라 그런지 말을 많이 하였고 발랄했다. 나는 그에게 전화할 때 중앙이다라고 했다. 그가 <문학정신>에 발표한 <중앙과 나>를 빗댄 것이었다. 그는, 중앙이요? 하다가 웃었다. 누구세요? 중앙이라고요. 나는 말했다. 그는, 기형도 형이군요, 했다.


그가 불현듯 떠나는 여행은 내가 어렸을 때 떠났던 여행을 떠오르게 한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어린 나는 독서실에서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은 나에게 여행에 대한 막연한 낭만을 심어주었다. 대학교에 와서 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진 척, 고뇌하는 척할 때 나는 여행을 떠났다. 물론 돈도 없이 더 어린 나이에 길을 나섰던 나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기형도도 약간의 낭만, 과대망상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번 휴가의 목적은 있다. 그것을 나는 편의상 '희망'이라고 부를 것이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차라리 나는 내가 철저히 파멸하고 망가져 버리는 상태까지 가고 싶었다. 나는 어떤 시에선가 불행하다고 적었다.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고. 도대체 무엇이 더 남아있단 말인가. 누군가 내 정신을 들여다보면 경악할 것이다.(......) 시는 어쨌든 욕망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욕망이 사라졌다. 그건 성(聖)도 아니다. 추악하고 덧없는 생존이다. 어쨌든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 왔던 탈출 위에 있다. 나는 부닥칠 것이다. 공허와 권태뿐일 것이다. 지치고 지쳐서 돌아오리라.


어지간하지 않은가?


나도 어려서 문학 비평 공부를 조금 할 때(진짜 조금)는 뭔 놈의 철학자들이 그리 많은지 정말 고통스러웠다. 뭔 소리하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읽고 아는 척해야 했다. 지적 허영심의 향연. 그것은 오히려 치기가 아니었을까?

내 주제에 기형도의 산문집에서 이런 치기를 말한다는 것이 가당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기형도의 이 산문집

기형도가 남겨둔 거의 모든 산문, 소설, 기사, 그리고 곁들여진 사진들에서 오히려 그런 젊은이의 치기를 느낀다.

과연 기형도는 이 모든 글들이 출판되어 박제되는 것을 원했을까?


하지만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

그들은 기형도가 잊히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로웠던 것 같다.

엊그제까지 내 옆에 머물던 친구가 이제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시인 원재길은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섭섭하면 많이 섭섭해하고 조금만 유쾌하면 많이 유쾌해했다.(.......) 그가 이제 이 지상에 없다니. 끔찍한 일이다. 너무도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한데, 너무도 가까이서 지금도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그가 없다니 무서운 일이다. 며칠 전에 꿈에서 그를 보았다. 싱글싱글 웃으며 그가 다가왔다. 다가와서 말했다. '가자.' 그가 앞장을 섰다. 나는 얼마쯤 그를 따라갔다. 그러다가 그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 지를 문득 깨달았다. 공포로 떨면서 얼마간 따라가다가, 그를 뿌리쳤다. 달아나듯이 나는 꿈에서 지상으로 기어 올라왔다. 한참 동안 온몸이 후들거렸다. 무슨 꿈을 꾸었냐고 옆에서 물어왔다. 나는 꿈 얘기를 들려주었다. 옆사람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따라가면 안 돼요. 그가 당신을 데려가려 해요. 했다. 그렇다. 그는 갔다. 그는 간 사람이다. 갔지만, 그러나 만약 지상에서 비슷한 추구를 한 사람끼리 저승에서도 무리를 짓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형도의 남긴 모든 것, 영혼까지 끌어모아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형도라면 과연 이 책을 원했을까?


시집 한 권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를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안쓰럽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글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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