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프란츠 카프카)

by 궁금하다

불쾌하다.


이 소설을 읽자마자 든 생각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은 서글프다.


아마도 그레고르가 겪은 일이 남일 같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야기는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버린 아침에 시작된다.


처음에 그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가만히 일어나 옷을 입은 후 무엇보다 아침식사부터 하고 싶었다. 그다음 일은 그때 가서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는 아무리 생각에 몰두해 봤자 신통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간혹 어설픈 자세로 누워 자는 바람에 생긴 듯한 가벼운 통증이 느껴지다가도 막상 일어나 보면 그것이 순전히 침대 속 공상이었음을 깨닫곤 했던 일이 기억났다. 그래서 오늘의 이상한 환상은 어떻게 사라져 갈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목소리가 변한 것은 바로 출장 영업사원들의 직업병인 독한 감기의 전조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이불을 걷어내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몸을 약간 부풀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자 이불은 저절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다음부터가 어려웠다. 몸이 너무 많이 옆으로 퍼져 있어서 더욱 어려움이 컸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면 팔과 손이 있어야 하는데, 이젠 그런 것 대신 가는 다리들만 수없이 많이 있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그야말로 벌레 보듯 바라본다. 경악하고 도망친다. 그레고르가 애타게 하는 말들은 모두 벌레가 내는 이상한 소리일 뿐이다.


긴 저녁 시간 동안 한 번은 한쪽 옆문이, 또 한 번은 다른 쪽 옆문이 빠끔히 열렸다가 재빨리 닫혔다. 누군가 들어오려다가 선뜻 들어오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그레고르는 그 주저하는 방문자를 어떻게든 들어오게 하리라, 아니 적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리라 결심하고 거실로 나가는 문 바로 옆에 가만히 엎드렸다. 그러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허사였다. 아침에 문이 잠겨 있을 때는 다를 들어오려고 하더니, 문이 모두 열려 있는 지금은 - 아침의 소란 때 그가 하나를 열었고, 그 후 그가 자는 사이 다른 문들도 누군가 분명 열어두었으나 ---아무도 그의 방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열쇠들도 모두 바깥쪽에 꽂혀 있었다.


집안 식구들의 ATM이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된 이후에 집안 식구들로부터 소외당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새로 취업을 하고 어머니와 여동생도 각자 자신의 살길을 찾기 시작한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그야말로 집안 식구들의 천형이 되어 버렸다. 집안 식구들이 하숙인들을 집에 들이고부터 그레고르는 더욱 고립되게 된다.


그레고르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어쩌다 음식 옆을 지나가다가 장난 삼아 한 입 물어넣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몇 시간 동안 그대로 물고 있다가 대개 다시 뱉어버렸다. 처음엔 그렇게 식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달라진 방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 방의 변화에 적응하게 되었다. 식구들은 다른 곳에 마땅히 둘 수 없는 물건들을 이 방에 갖다 놓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런 물건들이 이제는 많아졌다. 그 집의 방 하나를 세 명의 하숙인에게 세를 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레고르가 꼭 음악학교를 보내주려 했던 여동생은 하숙인들에게 바이올린 솜씨를 보여줄 기회가 생기고 그레고르는 자기도 모르게 거실로,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기어 나오게 된다.


여동생이 연주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제 위치에서 딸의 손놀림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레고르는 바이올린 소리에 마음이 끌려 겁도 없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더니 어느새 머리를 거실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다른 사람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 데다, 자신의 그런 행동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기어 나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식구들은 바이올린 연주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었고, 하숙인들은 얼마간 지겨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엔 두 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채 여동생의 악보대 뒤에 바짝 붙어 서 있다가 --마음만 먹으면 악보를 들여다볼 수도 있을 정도여서 틀림없이 여동생에게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곧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로 수군수군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창 쪽으로 물러나더니, 아버지의 근심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아름답거나 흥겨운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연주 전체에 싫증이 났으나 오직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들어주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이제는 너무나 역력했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나갔다.


그레고르는 사람들 눈에 띄게 되고 모두에게(가족들에게까지) 완벽하게 버려지게 된다.


"아버지, 엄마!" 여동생이 먼저 입을 열며 식탁을 내리쳤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요. 두 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깨달았어요.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저 아이 말이 백 번 옳아."

아버지는 혼잣말을 했다.


그가 방 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문이 화닥닥 닫히더니 빗장이 철컥 잠겼다. 문이 폐쇄된 것이다. 뒤에서 난 갑작스러운 소리에 그레고르는 깜짝 놀라 다리가 뚝뚝 꺾였다. 그렇게 서둘러 문을 닫은 것은 여동생이었다. 그레고르는 그녀가 다가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녀는 자물통에 꽂힌 열쇠를 돌리며 부모를 향해 외쳤다.

"됐어요!"


이른 아침에 파출부 할멈이 와서 --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워낙 힘이 넘치고 성격이 급한 그녀인지라 문이란 문은 모두 쾅쾅 닫고 다니는 바람에 그녀가 왔다 하면 집 안 어느 곳에서도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보통 때처럼 그레고르의 방을 잠깐 들여다보았지만 처음엔 뭔가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레고르가 일부러 꼼짝 않고 엎드려 기분 상한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부아가 난 그녀는 그레고르를 약간 찔러보았는데, 그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밀려났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레고르를 유심히 살펴보았고, 곧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된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휙 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잠자 부부의 침실 문을 홱 열어젖히고는 어둠 속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리 좀 와보세요. 그것이 뻗었어요. 저기 자빠져서 완전히 뻗어버렸어요!"


그레고르는 그렇게 죽었고 아마 파출부 할멈이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버렸을 것이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하숙인이고 파출부고 간에 모두 내보낼 생각을 하고 세 사람은 집을 나선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그들 가족은 각자의 미래를 그리며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간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그레고르의 삶은 참 우리 사회의 보통 아저씨들과 닮았다.

그 산업화 시대의 역군으로서 이 사회를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꼰대 소리를 듣고 있는 그들이다.(나도 뭐...)

꼰대, 개저씨 아니 이제는 아저씨 자체도 멸칭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그들은 버려진다. 아저씨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왜 이리 버릇이 없나 생각하고 아이들은 그런 아저씨가 부담스럽다. 아이들은 아저씨 덕분에 먹고사는 것을 알면서도 답답한 아저씨의 행태 자체는 참아내기 힘들다. 그러다가 경제적 활동까지 멈추게 되면 바로 그레고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오롯이 가족의 짐덩어리로 변신이다.

누군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했다지만(그 말도 과연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로 지금 21세기의 아저씨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불쾌하고 서글퍼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불현듯

벌레로 취급당할 나 자신에 대한 묵시록이라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