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마루야마 겐지)

by 궁금하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사과밭을 가진 농가의 외아들로 아버지와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간다. 의지하던 개가 죽은 후에도,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도, 40세가 넘었지만 변함없이 혼자 살아간다. 한 번도 마을을 떠나 살아 본 적이 없다. 인생에서 딱 한 번, 마을에서 손가락질당하던 한 여자를 사랑한다. 주인공은 그 여자 야에코가 마을을 떠났다가 몹시 추운 날에 마을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오로지 그 사랑을 반추하고 음미하며 살아간다. 주인공의 방에는 사계절의 풍경이 담긴 병풍이 있고, 그 속에 달이 떠 있고, 비파를 타는 법사가 그려져 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 병풍 앞 이부자리에서 잠을 잤다. 그동안의 무수한 세월이 하루처럼 지나가버렸다.(옮긴이의 말)


이 소설의 느낌은 줄거리로 요약될 수 없다.

내가 읽은 이 이야기는 위에서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뭔가가 있다.

마치 짐승을 풀어놓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아무 데서나 볼 일을 보고 어디에서나 정사를 갖는 본능적인 짐승.

그런데 사실 인간도 짐승이 아닌가? 사회 속에서 점잖은 척하고는 있지만 머릿속에는 온갖 욕구와 욕망이 들끓고 있지 않은가.

주인공 '나'는 그러한 욕망과 본능, 그리고 인간이 가진 비천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 놓는다.(사회적으로는 차마 말하기 힘든)


'나'의 아버지는 촌장의 곳간을 도둑질한 야에코의 아버지를 사냥하고 때려죽이는 것에 앞장을 섰고

아들인 '나'는 야에코를 사랑한다.

과수원의 사과나무에 농약을 쳐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앞에 야에코가 나타나고, 아버지는 멀리서 자꾸 나를 불러댄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로 진드기가 늘었다.

아버지와 나는 오늘 안에 산에 있는 사과밭 소독을 끝낼 작정이다.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무거운 펌프를 손수레에 실어 산으로 끌고 갔다. 그 자리는 양잠이 한물간 후 뽕밭을 없애고 만든 사과밭이었는데, 병충해에 약한 어린 나무들뿐이었다. 나는 수동식 펌프를 움직였고 아버지는 긴 호스와 노즐을 다루면서 사다리에 올라 하얀 액체를 살포했다. 엄청난 더위와 단조롭고 힘든 노동으로 차츰 몸 안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나는 여러 번 정신을 놓을 뻔했다. 소독약이 잘 나오지 않을 때마다 멀리서 아버지가 소리쳤다.


야에코와 농약 펌프 사이를 오가던 '나'


나는 “고쳤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작업용 접이사다리를 살짝 손본 후에 긴 자루가 달린 노즐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펌프 쪽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을 때 등 뒤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고, 아버지가 묘한 소리를 냈다. 나는 곧바로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목을 돌렸다. 물림쇠가 빠진 사다리는 납작하게 찌부러져 있었다. 벌렁 나자빠진 아버지의 눈에는 흰자위뿐이었다.


자꾸 불러대는 아버지를 처리하고 야에코와 정사를 치르는 '나'다.


그는

군데군데 솜이 삐져나온 요와 땀내 나는 값싼 담요 사이에 끼어 있는 젊은이는 꼭 20년 전, 갓 스무 살이 된 나다.

......

교교한 보름달의 독기 서린 빛이 등골까지 스며들어 골수를 파먹고 있지만 법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강풍이 쏟아내는 대지의 비통한 절규는 어딘지 비파 소리를 닮았다. 그 소리는 병풍 옆에 깔린 호사스러운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청년을 압도하고 영혼까지 마비시킨다.

방에 어울리지 않는 거위털 이불과 양털 요사이에 끼어 있는 그 사내는 꼭 10년 전, 서른 살 때의 나다.


그는 사회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이자 스스로 루저가 된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현실에 한 발, 비현실(욕망? 또는 가질 수 없는 꿈이라 해도 좋겠다)에 한 발이 걸쳐져 있다. 그리고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는 각자 다르겠지.

하지만 '나', 소설 속의 그는 비현실 쪽의 인물이다.

그는 현실을 냉소하고 비난한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시각은 모질고 매몰차다.


텔레비전 따위는 보지 않고도, 사과와 더불어 20년을 살아온 것만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 같은 남자들이 대륙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짐작이 간다.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변명은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온갖 짓을 다 저지르고도 나중에 입을 싹 닦고 잘 살아간다.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다. 이를테면 야에코 아버지 일로 괴로워하는 마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런 것이다.


이 소설의 '나'도 그렇고 이 소설집에 함께 묶여 있는 '조롱을 높이 매달고'에서의 주인공 '나'도 그렇다.

비정상적이고 정신병적이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사회의 루저.


작가는 왜 이런 인물들을 창조했을까?


그리고 이런 '나'들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있는 나는 또 뭔가?


소설을 구도자의 자세로 쓴다는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일본 시골 마을의 세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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