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가족(마루야마 겐지)

by 궁금하다

마루야마 겐지의 강렬한 느낌!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라는 소설에서 나는 짐승을 풀어놓은 것 같은 야성을 느꼈던 것 같다.

아주 착한 소설(천 개의 파랑)을 읽은 뒤끝이라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이런 게 인간이지'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야심 차게 다시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주 고통스러웠다.


또 야에코야?

또 근친상간이야?(사실 달에 울다의 야에코는 근친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때려죽인 이웃 사나이의 딸)

또 변태성욕자야?(사실 달에 울다에서의 나는 변태성욕자라고 할 수는 없고 이 소설의 변태성욕자는 살해당한 채 물레방아에 매달린다)

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질려버렸다.

또, 또 하고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야에코'라는 여자 이름 외에는 정확히 반복되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그 분위기! 나는 또, 또?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비정상적이고 어두운 관계의 묘사가 나에게 그런 느낌을 준 것 같다.


작가는


......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소설이라는 것이 소설언어라는 가장 인간적인 도구를 마음껏 구사하여, 이 세상과 이 세상에 몸담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물의 핵심에 얼마만큼 다가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소설을 써서 내가 받는 것은 원고료와 인세, 그리고 사념에 오염되지 않은 독자의 감상이다.(<또다시 집필을>, 1988.10)


인간의 핵심을 드러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처절하고 더럽고 무관심하고 어리석고...... 등등

그런 인물들이 결국은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뭐 그렇기도 한데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좀 고통스러웠다.(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나'라는 청년은 여동생 '야에코'와 근친상간을 한다.


마른 소나무에 감겨서 피는 인동꽃 향기에 거역하기 어려운 자극을 받은 우리는, 덤불에 숨겨둔 옷을 입기 전에, 깊고 부드러운 여름풀 위로 쾅 쓰러졌다. 야에코의 활짝 열어젖힌 두 다리의 기대에 응하려고, 나는 난폭하게 올라탔다.

그때 야에코의 소리가 멈췄다.

그때 야에코의 눈이 나에게서 떨어져 갔다. 그때 나는-그때 나는, 둑 위의 마른 소나무 그늘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달빛 따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마치 사진이라도 보듯이 세세한 데까지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발각된 순간 '나'는 더 이상 집구석에 발을 붙일 수 없다. 그렇게 떠난 '나'는 5년 후 다시 고향집 쿠사바 마을 근처로 돌아와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앉아 뭔가를 끄적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죽어버린 그는 다시 물이 되었나 귀신이 되었나 해서 가족 주위를 떠돈다. 어머니는 시체처럼 방구석에 누워버렸고 아버지는 어부로서 고기잡이를 하고 형은 집안의 장남으로서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닌다. 형수는 불륜을 저지르고 동생은 범죄를 계속 저지른다. 말을 키우고 연을 날리는 조부는 계속해서 말을 키우고 연을 날린다. 하지만 개 같은 집구석이다. 집안이 이지경인데 멀쩡하게 고기를 잡고 말을 키운다. 토할 것 같은 인간들의 군상을 건조하게, 쿠사바 마을의 시각적 묘사와 더불어 풀어놓는다. 물인지 귀신인지가 된 '나'는 어느새 집구석으로 돌아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가족들을 계속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야에코가 낳은 아기(마을에 벙어리 소년과 정을 통해서 낳은)를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결국 어떤 순수함의 결정체 같은 야에코가 낳은 아이를 가족들이 받아들이면서 모두 구원을 받는다.


우리 가족, 그들은 오늘밤에도 살아 있다.

방하고는 거의 무관한 어머니의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는, 별채에 있는 불단을 단순한 쓰레기로 여기게 할 정도의 기세로 여덟 칸짜리 방 가득히 울려 퍼지고, 마당의 연못에도 도달하여 금붕어를 황홀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내일 아침 일찍, 해뜲과 동시에 이부자리를 걷고, 별채에서의 생활을 그만둘 생각이다. 그녀는 지금 막 잠들었다.

목욕으로 충분히 데워진 형수의 살집 좋은 양다리는, 남편의 가는 허리를 꼭꼭 조이고 있고, 형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집안 일도, 사무실 일도, 아내의 옛 남자 일도, 비가 쏟아지던 밤에 복숭아꽃이 수놓여진 손수건을 준 외국 여자 일도 잊어버리고, 이를 악물고 쾌감을 찾는다.

문득 잠이 깬 아버지는, 궐련을 태우면서, 창문 너머로 물망천을 멍하니 바라보며, 바다의 조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가슴에 넘쳐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고민은 없다. 우리 가족은 전부, 될 대로 되었고,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동생을 삼킨 은빛 탱크의 내부 압력은, 벌써 지상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는 곳까지 낮추어졌다. 의식을 회복한 동생은, 심한 두통에 엄습당하고 있지만, 날이 샐 때까지는 그전 상태로 회복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재압탱크의 두꺼운 유리로 된 둥근 창을 교대로 들여다보는 꼬마와 뚱보를 향해서, 동생은 일일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아귀산 기슭의 오두막에서는 조금 아까까지 형수가 안고 있었던 젖먹이가, 오르골이 붙어 있는 모빌 아래에서, 성장을 위한, 이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갖추기 위한, 극히 건강한 잠을 탐닉하고 있다. 야에코는 그런 아이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밤참을 게걸스럽게 먹고, 손님이 준 팁을 곁눈질로 세고, 춤추어 노곤해진 몸을 쉬게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은 구원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가족 중 지랄 같은 한 청년이 세상을 떴고 빠진 자리를 새로운 아기가 채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마지막, 아이를 잃은 로제 샤론이 굶주린 남자에게 젖을 먹이며 끝나듯이

이 소설에서도 순수의 결정체 같은 여자 '야에코'의 아이를 모두가 받아들이며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이 소설의 귀신인지 물인지 하는 '나'도 이제는 진짜로 죽겠지.


길고 지루했고 고통스러운 끝에 구원받는 물의 가족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지쳤다.

그리고 내 삶도 썩 ......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나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담담히 지난 일을 되돌아볼 수 있을까?


고통스러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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