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시에서 시적 화자, 소설에서 서술자는 작가 자신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필에서 서술자는 작가 자신으로 본다.
수필이라는 갈래 자체가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개성 있는 눈으로다가, 붓 가는 대로 써서, 깨달음을 주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필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작가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책의 추천 글에는
친구네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건축하시는 아버지와 긴 대화를 나눈 듯.
이라는 문구가 있다.
친구네 아버지와 이해관계가 있을 리가 만무하고 그냥 저녁 먹은 후 이런저런 이야기하면 그야말로 편안한 저녁이지 않은가?
"야, 느이 아버지, 대단하시다야.
음청 재미있었다.
저녁 잘 먹었고 다음에 또 연락할게"
딱 이 정도 기대하면서 책을 펼쳐든 것 같다.
그래서 친구네 아버지는?
교회에 다닌다. 어렸을 때부터 다닌 것은 아니고 교회 건축을 하게 되면서
마침 나 역시 일이 별로 없던 때라 좋다고 대답하고 친구사무실과 같이 공동으로 그 현상공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마침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그런 기능의 설계에 많은 경험이 있어서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업무를 분담하여 친구가 기능을 먼저 정리하면, 나는 정리된 기능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하기로 하고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계획안을 제출하였다. 그렇게 안을 제출하니 그분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 등록만 했지 실제로 교회를 안 다녔으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다녀서 혹시 심사과정에 교회에 에 관한 사항을 물어보더라도 제대로 답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나는 그때부터 바로 일요일 낮과 밤 등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며 나름 눈도장을 찍었다.
사실 염불보다는 젯밥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를 다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건의 교회 건축도 하시고 진지하게 신앙을 가지신 것 같다.
그리고 친구네 아버지는 건축사라는 자신의 직업에 은근한 자부심이 있으시다.
아무튼 건축가들은 문제다. 돈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나도 역시 포함해서. 그래서 난 저소득 자영업자에 속한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설계를 한다는 이유로 우리 가족은 내가 설계한 집, 도심에서 한번, 전원에서 한번, 2번이나 살아봤고 우리 부모님도 시골에서 내가 설계한 집에서 살아보셨다. 남들이 평생 경험해 보기 어려운 일을 두 번이나 누린 점은 확실히 좋은 점이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품성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멋진가?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리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 자랑이 초큼 있으시다. 직업상 공무원들을 많이 만나시는 까닭에 불합리한 관료주의에 대한 염증도 있으시고 그 와중에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으신다. 또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도 만나고, 직원들도 만나게 된다. 과하게 욕심부리면 탈 나게 마련이고 일 잘하는 직원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아직까지 사무실을 접으신 것은 아니지만 은퇴를 생각하시는 친구네 아버님.
범상치 않은 인생, 특이한 관점은 없다.
치열하게 사신 것 같지만 그렇다고 사선을 오가신 것 같지는 않다.
그야말로 오가며 가끔 만날 것 같은 친구네 아버님이다.
만약에 오래간만에 친구가 전화를 해서 또 한 번 저녁 초대를 하면 어떨까?
"오래간만이지. 저녁이나 한번 먹게 우리 집으로 와. 아버님도 네 얘기 가끔 하셔. 저녁 먹고 또 얘기나 하자셔."
......
"어. 반갑다. 아버님 잘 계시지? 근데 나 마침 그날 선약이 있어. 아버님께도 안부 전해 줘."
......
다시 만나 뵙기는 좀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