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인 조르바와 그리스인 조르바
확실히 다르지.
'희랍'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미묘한 느낌, 리듬감.
그렇지. 엊그제 읽은 '흰'에서 받은 상처, 자격지심 같은 것들을 털어버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사람들도 다 좋다고들 하지 않았나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오해였어.
존경해 마지않는 형님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의 순서로다가 뒤로 갈수록 더 좋았다(소년이 온다였는지, 채식주의자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했지만, 나와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것 같어.
취향이란 제 각각이라지만
뭔가 수준 있는 것을 읽어내지 못하는 우둔한 느낌이라면
좀 곤란하지.
나 그런 사람 아니니까.
한마디로 한강의 묘사는 무척 좋았지. 감탄스러워.
여자는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 스웨터에 검은 바지를 입었다. 의자에 걸어놓은 재킷도 검정색이며, 커다랗고 검은 헝겊 가방에 넣어둔 목도리는 검정색 털실로 짠 것이다. 상가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 같은 그 복장 위로, 그녀의 거친 얼굴은 일부러 길게 빚은 진흙상처럼 여위어 있다.
젊지도,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은 여자다. 총명한 눈빛을 가졌지만, 자꾸만 눈꺼풀이 경련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보기 어렵다. 마치 세상으로부터 검은 옷 속으로 피신하려는 듯 어깨와 등은 비스듬히 굽었고, 손톱들은 지독할 만큼 바싹 깎여 있다. 왼쪽 손목에는 머리칼을 묶는 흑자주색 벨벳 밴드가 둘러져 있는데, 여자의 몸에 걸쳐진 것들 중 유일하게 색채를 가진 것이다.
'그녀'에 대한 묘사야.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에 대한 묘사.
기막히지.
계속되는 생생한 묘사. 문학이란 이런 건가?
기껏해야 남녀가 만나는 이야기인데, 게다가 200 페이지도 안되지.
그런데 이상하게 쫄깃거리더라 말이지?
그런 것은 정말 대단하다 싶은데...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이거지.
그와 그녀의 속사정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설명이 충분하지 않지.
다만 희랍어를 배우는 한 여자는 말을 잃어가고 희랍어를 가르치는 한 남자는 눈이 멀어가.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통하게 되지. 그들은 희랍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공통의 시간이 있지만 각각 떨어져 있어. 그러다가 어느 날 조그만 새가 길을 잃고 이리저리 부딪히는 모습을 그녀가 봐.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그가 다가와. 그러자 그녀는 강의실로 사라지지.
망설이다가 그는 가방을 열고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낸다. 그것을 말아서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손전등을 비추며 신중하게 계단을 내려간다. 그는 세 계단 이상 내려가지 않을 생각이다. 새는 아직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말아쥔 책으로 새가 있는 쪽을 툭툭 치기 위해 그가 몸을 수그린 순간, 삐이삐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새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얼굴로 달려드는 새를 피하려던 소리와 함께 새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얼굴로 달려드는 새를 피하려던 그의 발이 계단을 헛디딘다. 손전등을 놓친다. 새는 벽에, 난간에 세차게 제 머리를 부딪친다.
희랍어를 배우는 건물의 지하층 계단에 우연히 갇힌 새를 구해주려다가 남자는 자빠지고 다쳐. 그리고 그를 구해주는 것은 여자. 그렇게 둘은 만나고 지금까지는 그야말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정이었던 거야.
이 인물들은 왜 그럴까?
이유를 따질 것은 아니야. 왜냐하면(카뮈형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기 때문이야.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왜 이렇게 삶이 부조리하냐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지. 그들은 단지 이 세상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고,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서술자는 그걸 명확히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야.
그야말로 '개와 늑대의 시간'인 거야.(소설 본문에도 나오듯이)
그래.
그것 때문이야.
나는 명확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네?
이렇게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고 스스로 결론을 내면 되는데, 나는 그 과정이 좀 고통스러운 것 같어. 요즘 내가 좀 호흡이 짧아진 것인지, 노상 처 보고 있는 웹툰에 길들여진 것인지,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내가 소설이나 영화나 이런 걸 보는 것은 현실을 잊기 위해서일까?
그런데 자꾸 복잡하게,
생각하게 만드니까 짜증이 나는 걸까?
나에게 '한강'은 여기까지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