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돈키호테로 태어나 산초로 죽어가는 것.
소설의 후반부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다.
모두들 어렸을 때는 꿈과 희망으로 충만했었고 이제 나이 들어 중년이 되면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열정과 광기는 빛이 바래고 건조한 인생의 부스러기만 남으니 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 화낼 일도 아니다.(그것이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나 이 소설의 미덕은 우리 모두 돈키호테가 될 수 있고 산초도 될 수 있고 세르반테스도 될 수 있고.... 하는 가능성의 여지를 둔다는 점이다.
소설은 피디였던 진솔이 방송을 그만두면서 시작된다. 메인피디의 횡포를 못 견딘 진똘(직장시절의 별명)은 어린 시절 살던 노잼 도시 대전으로 내려와서 잉여로서의 삶을 산다. 어머니의 구박 속에 하루하루 연명하던 그녀는 어린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돈키호테 비디오'의 건물을 우연히 방문하게 되고, 거기에서 비디오 가게 사장이었던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을 만난다. 그 시절 거기에 모여 영화를 보고 책을 보던 라만차 클럽 친구들을 떠올리던 솔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유튜브 콘텐츠를 만든다. 돈키호테 아저씨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과거 돈키호테 아저씨가 일했던 곳, 아저씨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며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는 과정,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저씨의 모습. 천박한 세상에서 돈키호테로 살아나가는 아저씨의 모습. 점점 더 아저씨의 실체에 다가가면서 유튜브 구독자는 늘어나고,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가면서 아저씨와 가까워지는 여정.
이게 뭐라고 제법 박진감이 느껴진다. 페이지도 술술 넘어가고 주인공에게 몰입도 잘 된다.
지금은 비록 루저지만 언제까지나 루저일 수는 없는, 우리 모두에게.
“누가 알아준다고 모험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남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아. 안 그러니 솔아?”
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던 돈 아저씨.
“<분노의 법정>에 대해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다만 이거 하나만 알려주지. 시나리오가 좋다고 영화가 되는 건 아니야. 성실하다고 돈 잘 버나? 사람 착하다고 복을 받나? 다 그런 거야.”
라고 말하는 빌런, 영화사 석 사장.
적당한 악당, 그리고 적당한 위안, 그리고 뭔가를 찾아가는 구성 자체가 주는 적당한 긴장감.
주인공이 가지는 삶에 대한 고민(이 또한 적당하다)에도 공감하기가 좋다.
또한 모두가 돈키호테이고 모두가 산초가 될 수 있다는 나름의 반전.
“솔아. 사람은 평생 자기를 알기 위해 애써야 해. 그래. 나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짓고 살아왔지. 하지만 <돈키호테>를 받아쓰면 받아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내 생각엔, 솔이 네가 돈키호테다. 나는 네가 비디오 가게에서 늘 TV 프로그램 보며 깔깔 웃던 게 기억이 나거든. 마치 브라운관으로 들어갈 것처럼 몰두했지. 그런데 나중에 네가 그런 TV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됐다는 얘길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 저렇게 솔이는 자기 꿈을 이루며 사는구나. 그때 나는 이미 널 돈키호테라고 생각했단다.”
“됐거든요!”
“여기 민 피디도 나한텐 돈키호테야. 민 피디 이 친구는 내가 영화 일 하며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뚝심이 있는 친구였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았고, 내가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도 나서서 바로잡으려고 애썼어.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말이야. 영화에 대한 열정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적당함의 선을 적절하게 유지해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감정이 너무 과잉하다든지, 독자를 가르치려는 태도가 과잉하다든지, 떡밥을 뿌려놓고 회수를 못해서 결말이 너무 지리멸렬하다든지 하는 것이 없고 하나의 주된 이야기에 에피소드들의 곁가지를 적당히 매달아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영리하게도.
과연 현실이 요렇게 긍정적일까?
에 대한 반감만 한 수 접어둔다면 재미있고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나도 뭔가 어떤 꿈을 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하게 된다는 점.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