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by 궁금하다

어장관리에 당하고 마는 얼치기 청년의 불쌍한 기록.


로테에게 한눈에 반한 베르테르는 밤이나 낮이나 로테 생각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로테는 외모가 괜찮았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베르테르뿐만 아니라 로테네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서기도 그녀에게 반한 것을 보면)


빌헬름! 내가 자네에게 편지로 그의 이야기를 써 보냈던 남자, 행복하고도 불행한 그 남자는 로테의 아버지 밑에서 서기로 있었다. 그는 남몰래 로테를 사모하다가 마침내 사랑을 고백했고 그 때문에 파면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미쳐버렸다.


그렇게 아름다운 로테에게 청년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계속 여지를 준다.


로테를 너무 자주 만나지는 않겠다고 나는 벌써 몇 번이고 결심을 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지켜질 수 있을는지! 나는 매일 유혹에 못 이겨 나가면서, 내일은 가지 말고 집에 머무르겠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해 보곤 한다. 그러나 막상 날이 새고 그날이 오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찾아 어느 결에 그녀 옆에 와 있는 것이다. “내일도 또 오시겠지요?”하고 로테가 헤어질 때 말한다면 어찌 그녀에게 가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그녀에게서 어떤 부탁이라도 받은 경우에는 내가 직접 그녀에게로 가서 그 결과를 알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달밤에 산책을 하면, 저는 언제나 돌아가신 분들을 회상하게 되고 죽음과 내세에 관해서 심각한 생각을 하게 되곤 해요. 우리도 언젠가는 저 세상에서 존재하겠지요!" 하고 그녀는 엄숙한 감정이 깃들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베르테르, 우리는 저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게 될까요? 만나서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신의 의견은?" "로테" 하고 나는 말하면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우리는 만나게 될 거예요! 이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저 세상에서도 만나게 되고 말고요!"


그녀는 나의 무절제한 생활을 나무랐다. 그러나 나무라는 그녀의 태도가 어찌나 사랑스러웠던지. 그녀는 내가 포도주를 한 잔으로 기분을 내기 시작해서, 한 병을 몽땅 마셔버리는 버릇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마세요”하고 그녀는 말하더군. “로테를 생각해 주셔야죠!” “생각하라구요?”하고 나는 반문했다. “그렇게 하라고 내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나는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지요! 당신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있고 한시도 떠난 적이 없어요. 오늘도 저는 당신이 그때 그 마차에서 내린 장소에 앉아 있었지요” 그녀는, 이런 이야기 속으로 나를 더 깊이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화제를 바꿔버렸다.


이러는데 베르테르가 어찌 로테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있나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것이 베르테르의 뇌내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야기는 스토킹 범죄자의 내면 심리 보고서로 변한다.


아침마다 내가 괴로운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헛되이 그녀를 향하여 두 팔을 뻗고 더듬는다. 그녀와 나란히 풀밭에 앉아서 그녀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키스를 퍼붓는 천진난만한 즐거운 꿈이 보람 없는 착각임을 깨달으며, 나는 밤마다 침대 속에서 안타깝게 그녀를 찾아 헤맨다.


아니, 그럼 됐어. 모든 것이 괜찮아! 내가 그녀의 남편이라면! 아아 신이여, 저를 만들어내신 당신이 그런 기쁨을 내게 마련해 주셨다면, 저는 평생 쉬지도 않고 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저는 항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시름에 빠져 눈물을 흘리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이런 부질없는 소원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녀가 나의 아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를 내 품에 꼭 껴안을 수 있다면…… 알베르트가 그녀의 날씬한 몸을 껴안고 있다고 생각하면, 빌헬름, 나는 온몸이 오싹해지는 것 같다.


나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외면했다. 그녀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한 천국의 순진성과 축복으로 가득 찬 장면에 의해서 나의 상상력이 자극을 받고 생에 대한 무관심이 종종 우리를 끌어넣어 버렸던 잠으로부터 내 마음을 깨우는 일은 없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나를 그렇게도 믿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베르테르는 그녀를 휘감아 가슴에 꼭 껴안은 다음, 떨리고 웅얼거리는 입술에다 미친 듯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베르테르 씨!” 하고 로테는 외면하면서 숨 막히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베르테르 씨!” 그녀는 힘없는 가냘픈 손으로 자기 가슴에서 그의 가슴을 떠밀었습니다. 이윽고 “베르테르 씨!” 하며 그녀는 말할 수 없이 숭고한 감정이 깃들인, 차분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 남자는 거역하지 않고, 껴안고 있던 그녀를 두 팔에서 풀어주고 미친 듯이 그녀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녀는 몸을 뿌리치고 일어나더니 사랑인지 분노인지 분간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몸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에요. 베르테르 씨, 이제는 다시는 만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로테는 이 불쌍한 베르테르에게 사랑이 가득 찬 눈초리를 보내면서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베르테르는 그쪽으로 두 팔을 뻗기는 했지만, 차마 그녀를 붙잡지는 못했습니다.


로테에게 집착하는 베르테르는 로테의 모든 행동이 자신을 향한 사랑의 표시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로테와의 사랑을 키우다가 결국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그녀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끔찍한 자기애이자 연민)


그런데

그렇게 베르테르를 비난하려면

눈감아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모두들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부끄러운 첫사랑의 기억들 말이다.

그 시절 첫사랑은 그리 아름답기만 했을까?

서투르고 모자라서 이불킥하는 기억들이 태반이 아닌가?

그래도 그때는 젊었고 지금은 지난 일이라 비밀로 하고 있는 그 기억들.

그런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다면 베르테르를 거침없이 나무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지 않을까?

18세기 독일의 청년이나 20세기에 한창 젊은 시절을 보낸 한국의 청년이나 비슷하게 공명하는 첫사랑의 어리석음이라니……

괴테가 포착한 젊은이의 감정(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은 과연 그를 18세기 유럽의 인기 작가로 등극시켰고 지금 봐도 엄지척이다.

당대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 시대에 이런 식으로 감정에 충실하고 격정적인 인물이라니……


당대의 젊은이라면 베르테르에게 빠지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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