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션 베이커)

by 궁금하다

너무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의 마지막,


함박눈이 하염없이 날리는 거리,


음악도 없이 자동차의 와이퍼 소리만 끽끽 대는 이고르의 낡은 차 안에서 정사를 나누던 그들.

그러다가 갑자기

아노라는 흐느낀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감독인 션 베이커에게 수많은 영화제의 수상을 선물한 영화다.

수많은 영화제의 수상작인 만큼 너무 기대가 컸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아노라는 스트리퍼다. 그녀는 가난한 스트리퍼이기 때문에 고객에 대한 모든 서비스를 돈으로 치환한다. 그녀는 그런 여자다.

그래도 러시아어를 좀 할 줄 알았던 덕에 러시아 재벌 2세인 이반을 상대하게 되고 뭉텅뭉텅 돈을 써대는 이반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일주일에 만 오천 달러라는 금액에 라스베이거스로 함께 여행을 가게 되고 충동적으로 이반과 결혼을 한다.

4캐럿이나 되는 다이아 반지. 재벌 2세인 젊은 청년.


하지만 말라깽이 재벌 2세는 후견인(토로스)이 있었고 결혼 소식을 들은 그들이 청년을 찾아온다. 토로스는 이반이 어렸을 때부터 온갖 뒤처리를 해온 재벌가의 집사이고 그는 그의 동생 가닉, 동네 폭력배로 보이는 이고르를 대동하고 결혼을 무효화하려고 한다. 이반의 부모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자 이반의 부모는 다음날로 미국에 오겠다며 노발대발하고 그 소식을 들은 이반은 꽁지 빠지게 도망을 친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

아노라는 남편인 이반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토로스 일행은 결혼을 무효화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이반을 찾아다니고 그 과정이 약간은 희극적이다. 결국 스트립 클럽에서 이반을 발견한 그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채로 다음 날 이반의 부모를 만나게 되고 아노라는 재벌 부모의 냉혹한 응대, 그래도 명목상 남편이었던 이반에게는 장난감에 불과했다는 사실. 아노라는 그것을 확인한 후, 이혼 절차를 밟는다.

그래도 아노라가 추울까 봐 스카프를 주는 이고르 외에는 아노라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영화를 보고 있는 나까지도? 쟤 외 갑자기 사랑 타령? 철부지 아이 때문에 개고생하는, 싸가지 없는 재벌 부모에게 오히려 감정이입?)


결국 아노라에게 재벌 2세와의 즐거운 파티는 한낱 일장춘몽에 불과했고 세상은 그야말로 만만치 않은 곳이다.


그리고 아까 처음에 말했던 그 장면.


그리고 나는 묻는다.


이고르와 아노라는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매춘부로 불리던 여자와 양아치 폭력배인 듯이 짐작되는 남자.

둘만 남은 이 세상에서 새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데.....

가난한 사람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데.....


그러면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고르와 아노라는 애가 아니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다시 시작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노라와 이고르도 알 것이다.


그래서 쓸쓸한 영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암스테르담(이언 매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