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이기호)

by 궁금하다

선량하고 순진한 아이는 무섭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더라도, 그 아이는 무슨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탓하기도 애매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리다, 이시봉(이것은 개이름)은 한 카테고리에 묶인다.


아유, 답답한 것들.

이이구, 선량한 것들.


그러니까 그날 그들이 나와 이시봉을 찾아온 것은 전적으로 리다 때문이었다. 오, 나의 사랑, 나의 불행, 나의 한숨, 리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약간 상투적으로 시작한다.

아빠의 죽음 이후 자퇴생이 된 '나'가, 아빠가 키우던 개(이시봉)를 키우며 친구들(수아, 정용, 수아는 알바를 하며 약간 세상을 냉소하는 면이 있고, 정용은 근육질 몬스터 정도?)과 함께 나쁜 악당들을 해치울 것 같은(?)

그래서

아, 이기호 소설이 이렇지 않았는데..... 그전에 기괴하다고 할 정도로 재기 발랄했던 상상력이 이렇지 않았는데.....

무슨 청소년 소설처럼 흘러가면 실망인데.....(청소년 소설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서 약간은 조마조마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지금은

다행이다.(?)

재미있었다.(!)


이러고 있다.(내 주제에)


이 소설은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고 그런 만큼 여러 주변 이야기들, 인물의 이야기들이 함께 엮인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소설은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 흐름이 '나'의 이시봉 찾아오기 여정에 함께 엮이면서 전개된다.


비숑 프리제의 족보와 관련된 스페인의 루이사 왕비와 총리 고도이의 이야기

그리고 정채민과 박유정, 김상우의 이야기

그다음은 '나'를 통해서 그 이야기들이 엮인다.

그리고 그 두 이야기들은 인간의 이기적인 '집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닐까 한다.

스페인의 총리 고도이는 루이사 왕비의 집착 끝에 그가 사랑하던 여러 여인들을 잃고, 말년에는 개에 집착하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정채민은 프랑스 유학시절 알게 된 김상우의 아내, 박유정을 갖고자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 아니었을까? 그 집착은 박유정이 남긴 개에게까지 이어지고 개와 본인 모두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간다.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그들의 일그러진 집착은 모두에게 고통과 불행을 준다.


그리고 그 끝에 남은 것은

무기력했던 '나'와 명랑한 '이시봉'의 일상 복귀다.

'나'는 조금씩 삶에 희망이 생기고 '이시봉'은 개껌을 씹겠지.


우리는 쉼터 벤치까지 올라간 뒤 서로 조금 떨어져 앉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들을 바라보았다. 나무는 언제나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늘 어느 한쪽이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가지나 잎사귀들, 나무의 꼭대기나 가장 멀리 뻗어나간 가지의 끝, 그곳들이 항상 흔들렸다. 나는 그 나무들의 움직임을 보았다.


낮에 보면 저 흔들리는 잎사귀들 사이로 밝고 환한 빛이 쏟아지겠지.


결국, '나'와 '리다'의 성장 스토리.


그런데

소설을 재미 있게 잘 읽었음에도 약간의 꿀꿀함이 남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나는

나(소설 속의 '나' 말고)는 과연 집착, 편협한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죽기 일 초 전이라도 그런 헛된 욕망과 집착과 자신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감정은 좋을 게 없으니 버리라고는 하지만 어디 그게 내마음대로 되냐구?

하는 내자신과 관련된 좌절감 때문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교통사고의 발단이 된 '이시봉' 때문에 남편을 잃은 엄마의 고통 때문이다.(제대로 공감받지 못한)


내가 잠에서 깬 건 깊은 밤이었다.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일어나는 대신 다시 눈을 감고 벽을 향해 모로 누웠다. 방엔 불이 꺼져 있었고 창문도 닫힌 상태였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몸에서 시큼한 냄새도 났지만, 나는 덥다고 느끼지 않았다. 내 베개 바로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시봉도 문소리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시봉은 다시 눕지 않았다.

.......

어둠 속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고, 계속.

......

“이 개새끼야.”

그 누군가가 이시봉을 들어 올렸다. 안은 것이 아니었다.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 누군가는 그 상태돌 몇 걸음 걸어가 내 방 창문을 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 누군가를 노려보았다. 이시봉은 다리를 허우적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주둥이를 조금 더 앞으로 빼려고 노력하며, 그 누군가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잠시 후 털썩, 그 누군가가 이시봉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방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소설 속의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되면서도 또 한편으론 화가 났다....... 이시봉은 도로가 무엇인지, 인도가 무엇인지, 규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저렇게 계속 명랑한 것이 아닌가? 이시봉을 원망한다는 것은 자연을 원망하는 것. 나는 엄마가 곧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길 바랐다.


이건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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