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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르누아르의 빛과 세잔의 그림자 사이에서




Forms are never secure. Light is always blurred.

This, unmistakably, is my self.



나의 소설은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충동 사이에 선 침묵 속에서 존재한다.

르누아르의 찰나적인 감각적 포착세잔의 차갑고 끈기 있는 중력.

나는 조도의 언어로 글을 시작한다. 부드러운 표면, 떨리는 몸짓, 누군가 말을 꺼내기 직전 방 안에 감도는 순간적인 온기. 이것이 르누아르의 파사드이다. 명명되지 않은 무언가 위에 얇게 덧씌워진 색채의 막.



1. 르누아르: 찰나를 포착하는 피부


그러나 그 밝음 아래, 나의 욕망은 세잔의 어둠에 속해 있다. 형태가 해체되는 흐릿한 경계로, 위안을 거부하는 고요한 본질의 잔혹함으로. 그의 세계는 아름답지 않다. 다만 진실할 뿐이며, 진실은 언제나 약간은 어둡다.


나의 문장들은 늦은 오후의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떠돌지만, 그 무게는 문장들을 제자리에 붙잡아두는 그림자에서 온다. 나는 감각을 쫓되, 결국 그것들을 해체하고, 벗겨내어 그 아래 떨리는 건축물을 드러내는 일을 반복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색채 자체가 아니다. 색이 멈추는 지점의 파열(Fracture)이다.


이것이 내가 세잔의 불안한 고요함에 매혹되는 이유다. 그의 대상들—배와 사과, 여인의 초상—은 화면 위에서 휴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존재와 소멸 사이에서 주저하는 듯 맴돈다.



세잔의 붓질은 대상을 묘사하는 동시에 구조를 비틀어낸다. 《사과와 오렌지》나 《부인의 초상》에서 보듯, 그는 한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다각도 시점의 실험을 통해, 그 형태를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압박한다.

오후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감각의 표면.

2. 세잔: 그림자가 제거된 형체의 본질


하지만 그 문장들의 무게는 그것들을 제자리에 붙잡아두는 그림자에서 온다.


나는 내가 쫓는 모든 감각들을 해체하고, 옷을 벗기고, 그 아래의 떨리는 감정들을 해체한다.

내가 정말로 찾는 것은 색채가 아닙니다. 색채가 끝나는 지점의 파열이다.


세잔의 그림은 그림자가 제거된 형체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는 원근법과 고전적 구조를 비틀어, 대상들이 안정적인 배경을 갖는 것을 거부한다.


그의 사물들은 그림자 없이 액자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것들은 존재와 소멸 사이에서 망설이는 듯 허공에 떠 있다.


이 긴장은 나의 내면을 완벽히 반영한다. 거의 무언가이지만, 거의 어딘가에 있지만, 거의 살아있는 것과 같은 통증.


그래서 세잔은 나에게 돌아갈 심연을 제공한다. 그의 정물화는 중심축에서 살짝 기울어져 있다. 고요히 질서를 위협하는 정물. 내 글의 주인은 이 불안정성 속에서 태어난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이 형태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3. 빛의 카무플라주, 그림자의 기원


르누아르는 내가 장면을 묘사하는 감각적 빛의 아지랑이를 주지만, 세잔은 내가 되돌아갈 인지적 어둠의 기원을 선사한다.

밝음은 위장이며, 그림자는 기원이다.

내 소설은 그 둘 사이의 간극에서 태어난다.



빛이 항상 약간 어두워져 있고, 형체는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

욕망은 오직 그 부재를 통해서만 감지되는 세계.


나는 그 불안정성 속에서 글을 쓰며, 그 망설임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향하고 있는 소설은 바로 이 어둠—색채가 흐릿해지고, 기저의 형체가 천천히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소—로부터 배열될 것이다.


내가 다가가는 글은 이 어둠으로부터 건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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