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해소되지 않는다

잔류하는 상태들


향기는 해소되지 않는다. 기억 또한 그러하다. 여기 네 가지 사물—베티버, 시트러스, 린넨, 울—이 있다.


결론을 거부하는 삶의 곁에서 기억이 ,그 물성들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에 대한 실험적 글쓰기이다.


뿌리와 베티버

캔들의 가장자리를 따라 왁스가 고였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서 호박색 고리가 얇게 차올랐다.

소독약 냄새와 그 아래 깔린 오래된 카펫, 축적된 기억의 잔해를 지우기 위해 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심지는 옆으로 휘어졌고, 연기는 한 줄기 깨끗한 선을 그리며 위로 뻗어 나갔다. 유리 홀더의 끝에 엄지를 대고 열기를 가늠해 보았다. 향이 피어올랐다. 뿌리와 베티버의 냄새, 그것은 기억보다 더 어둡고 짙은 농도였다. 향기의 잔해는 침전물처럼 하얀 세면대 위로 가라앉았다.



비린 귤껍질

토요일 저녁, 현관 앞의 귤 박스는 여전히 뜯지 않은 채였다. 비타민 C와 가사 노동의 안락함, 활력을 포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바구니에 쌓아두는 작은 오렌지색 구체들을 원했던 어느 날에 주문한 것이었다. 테이프를 잘랐을 때 껍질은 이미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를 집어 들자 엄지 아래서 과육이 힘없이 눌렸다. 터져 나온 오일은 과일이라기보다, 선명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다 지쳐버린 무언가의 비린내를 풍겼다.


발신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가장 선명한 경계의 설정이었다.


그는 이미 물러나 있었다. 이미 증명된 후퇴의 설계도가 보일 만큼만 적당히. 귤은 쉽게 쪼개졌다. 쓰디쓴 섬유질이 손가락에 달라붙었고 그 아래 과육은 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먹었다. 명징함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잔해만 남은 맛이 원래 그러해야 할 농도 그대로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뼈의 색을 닮은 린넨

베갯잇은 원래의 색을 잃어버릴 만큼 여러 번 세탁되었다. 흰색이라기보다 뼈의 색에 가까운 무언가. 쉽게 멍이 드는 환자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그것을 베개 위로 밀어 넣었다. 린넨은 처음엔 저항하다가 이내 제 몸을 내어주었다. 천이 늘어나며 마른 소리를 냈다. 솔기 부분의 얇은 능선이 손목을 압박했다. 한 번, 두 번,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침대는 정돈되어 보였으나 결코 펴지지 않는 구김 하나가 남았다.

그 위에 향수를 한 번, 그리고 즉시 후회하며 한 번 더 뿌렸다. 프리지아의 향이 너무 빠르게 피어올랐다. 예상보다 날카로웠다. 알코올이 조용히 사라지기도 전에 향을 공중으로 휘발시켰다. 그곳은 화원이 아니었다.비누 냄새가 밴 서랍장, 다림질된 셔츠, 여전히 쓸모가 있을지 몰라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보관된 깊은 구석의 냄새였다. 린넨은 향을 불규칙적으로 흡수하며, 아침이면 사라질 짙은 타원형의 얼룩들을 남겼다. 나는 그 위에 누웠다. 향기는 견딜 수 있는 한계선에서 머물다, 이내 집요하게 내 코를 파고들었다.


방의 공기는 차가워졌다. 향의 입자는 얇아졌다. 남은 것은 천 그 자체의 냄새였다.

깨끗하고, 미세한 광물질의 느낌이 나며, 내 몸에서 빌려온 온기로 생생해진 감각. 베개를 한 번 뒤집었다가 그대로 두었다. 천은 내 뺨의 형상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놓아주었다. 아침이 오면 침대는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젖은 울의 하중

코트는 밤새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고, 열린 창문을 타고 들어온 빗물이 그것을 찾아냈다.

아침이 되자 코트는 아래로 미끄러져 있었고, 어깨는 더 이상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그것을 들어 올렸을 때,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소매는 한 박자 늦게 따라왔다. 빗물은 안감 속으로 스며들어 천이 겹치는 곳에 고여 있었다. 옷걸이는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살짝 휘어졌다. 울이 움직이며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를 냈다. 손을 떼고 난 뒤에도 손가락 끝에 오래도록 남는 그런 종류의 감각이었다.

오후가 되자 코트는 입을 수 있을 만큼 마른 것처럼 보였다. 칼라는 빳빳했고 소매 끝은 여전히 서늘했다. 등 위로 느껴지는 무게는 불균형했다. 그 아래로 열기가 빠르게 모였지만 갈 곳이 없었다. 습기는 피부 가까이 달라붙어 냉각시키는 대신 압박해왔다. 코트가 내 몸의 윤곽을 너무 잘 알아버린 모양이다. 호흡이 얕아졌다. 단추를 하나, 그리고 다시 하나 풀었다. 아직 다 부드러워지지 않은 울이 목덜미를 긁었고, 비와 먼지, 그리고 전에는 없던 동물의 냄새가 희미하지만 집요하게 풍겼. 마침내 코트를 벗었을 때, 한기는 뒤늦게 도착했다.


저녁 무렵, 창가에서 코트는 완전히 말랐다. 형태는 불완전하게 돌아왔다. 한쪽 소매는 길어졌고 밑단은 살짝 비틀렸다.


냄새는 남았다. 부패가 아니라 변형된 상태로. 나는 그것을 접어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버려진 것도 아니고, 준비된 것도 아닌 상태로. 그것을 다시 입게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결정은 울의 조직 속에 유예된 채 머물렀다. 그것은 변형된 채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계절을 기다리며 그곳에 고요히 쉬고 있었다.


The smell remained—not decay, but alteration. I folded it and placed it at the back of the closet, not discarded, not ready. It would be worn again, perhaps, or not. The decision stayed suspended in the wool itself. It rested there quietly, changed, waiting for a season that might not arrive.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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