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응시
영화 <카모메 식당>에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감정을 응시하고, 아주 천천히 자기 삶의 리듬을 회복해간다는 것을 느꼈죠. 정갈한 식탁, 조용한 응시, 평범한 한 끼 식사 안에 감정의 회복이 숨어 있죠.
예술은 때로, “이것이 내 감정이다”라고 말하지 않지만 대신 그 감정이 머물고 있던 자리를 가리켜 주는 역할을 해요. 그렇게 우리는 그림자처럼 남아 있던 감정을, 다시 정리해볼 수 있게 되죠.
정신과에서 말하는 자기 분석이란, 단지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내 안에서 어떤 반복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천천히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말보다 훨씬 깊이 있게 우리 감정을 건드리는 순간이 있어요. 그건 설명되지 않는 이미지, 문장 너머의 분위기, 멜로디 속 정서의 리듬 같은 것들입니다.
예술은 무의식을 건드리는 방식이 다릅니다.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죠. 대신 조용히 “느끼게” 하고, “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말보다 먼저 감정을 자극하고, 말보다 오래 머무르게 하죠.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 분석’을 유도할 수 있을까?
정서의 동요를 일으켜요, 기억의 무의식적 조각을 자극해서, 말로 기억나지 않던 장면이, 이미지나 선율을 통해 떠오르는 순간들이 되어요.
방어 없이, 감정과 마주하게 만든다는 상황은, 정신분석의 저항이 해제되는 순간,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과 닮았습니다.
영화나 음악, 시, 그림, 향, 풍경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요동치는 그 순간, 우리는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지점에서부터 자기 분석은 시작됩니다.
진료실에서도 가끔, 자신의 감정이 너무 모호하고 혼란스러울 때 ‘최근 인상 깊었던 영화나 음악’을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감정과 예술이 맞닿아 있는 접점을 찾는 순간,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단어를 붙일 수 있게 되거든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어느 장면처럼,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삶은 천천히 정리될 수 있습니다. 정갈한 식탁, 무심한 눈빛, 그 안에서 감정은 응시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