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와 내면의 광시곡
감정이 예술로 변환되는 가장 순도 높은 예는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다.
그는 그 곡을 통해 자신 안의 무의식, 불안, 해리, 내면의 괴성을
5분 55초짜리 심리적 오페라로 직조해냈다.
이 곡은 노래가 아니었다.
하나의 치료 세션,
심리적 해체와 재구성의 전 과정이었다.
감정이 폭주할 때,
그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언어가 아닌 리듬, 형상, 고백되지 않은 속도로 정제하는 순간—
정신의학은 그것을 “승화”라 부른다.
프레디 머큐리는 그걸 음악으로 했다.
그리고 단 한 곡으로,
그는 자신을 껴안았다.
“Is this the real life?”
→ 이건 현실인가? 아니면 해리의 무대인가?
정신 붕괴의 문은 그렇게 조용히 열린다.
“I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 그것은 죽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존재의 구조를 해체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Poor boy, nobody loves me”
→ 자기를 사랑하지 못했던 소년의 고백,
심연의 자아가 수면 위로 올라온 절규였다.
“Beelzebub has a devil put aside for me”
→ 그는 괴로움을 추상화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의 이름을 불렀다.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아가
살아있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옥에서 바알제붑과 마왕, 그림자를 다시 불러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해리된 자아를 전율로 번역해
수천만 사람의 감정 회로에 접속시켰다.
그의 분열된 자아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 세계 수억 명의 잊힌 감정과 맞닿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노래한다.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그건 단념이 아니다.
그것은
통합 이후의 평온,
해리를 지나 마침내 한 사람의 감정이 자기 자신을 껴안는 순간이었다.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과,
사랑을 갈망하던 자신,
그 자신을 끝내 사랑해낸 존재가
무대 위에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