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함보다는 상대방의 편안함이 먼저더라구요.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나 가치관들이 굉장히 편협하고 그릇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20대 초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가기 전에는 막연히 베트남, 태국 같은 국가들은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보다 가난하니 위험하고 별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30일간의 여행을 마친 후 동남아시아의 매력에 빠져 말레이시아로 교환학생을 갔을 정도로 나는 그 나라들의 문화와, 음식,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는, 부부 사이에서 경제적으로 적은 돈을 버는 사람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부부 관계에서의 “공평함”이라 믿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돈을 벌어오면, 엄마는 그 돈으로 열심히 살림을 꾸려나갔다. 우리가 어느 정도 크며 엄마의 맞벌이가 시작되고 나서 상대적으로 아빠보다 적은 돈을 벌어오는 엄마는 우리 가족들에게 “아침을 챙겨주지 못하는 것,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했다.
그러나 남편과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림을 꾸려나가니 부모님을 보며 내가 믿어 의심치 않던 “공평함”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내가 남편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퇴근 전 그가 먹고 싶어 하는 요리를 준비하고 널부러진 빨래를 정리하며 그가 조금이라도 집에 와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공평함”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벌어오니 “살림도 오빠가 더 많이 해”, 라는 말을 하는 순간 우리의 부부생활은 지옥이 될 것이다. 밥을 차리는 행위, 빨래를 하는 행위, 청소기를 돌리는 행위까지 “공평함”이라는 기준을 들이댈 수 있는 행위들은 무궁무진하다.
결혼 전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협한 생각들은 나의 “편안함”을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남편으로 인해 자연스레 바뀌게 되었다. 남편을 통해 내가 바뀌었듯이 서로의 공평함보다는, 상대방의 편안함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