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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Jun 22. 2022

담배 한 개비의 시간 / 문진영(2010)

부서지고 흩어지는 청춘 - 빗방울과 담배 연기

줄거리


 모든 게 바쁘게 움직이는 강남 대로의 편의점에서 느긋한 삶을 살아가는 스물한 살 '나'. 그녀는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어떤 집단에 속하지 않은 채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살아간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이태원에 사는 그녀는 그녀가 짝사랑했던 복학생 M과 전 타임 알바생 J, 그리고 J가 짝사랑하는 근처 카페의 알바생 물고기, 편의점 점장님과 단출한 인간관계를 꾸리며 일상을 영위한다.

 그녀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습관과 이유로 담배를 피웠다. M은 '존재의 이유'라는 의미의 레종을 폈고 물고기는 포장지가 예뻐서 말보로 라이트를 피웠다. 존재 자체가 버거워 보이는 J는 특색 없고 저렴한 디스플러스를 핀다.

 M과 우연히 다시 만나 이도 저도 아닌 관계를 유지하던 중 M은 "너는 뭔가 할 거 같은 놈이었는데"라는 동창의 말이 과거형이라는 것에 자신의 처지를 실감한다. 경계선 밖에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 언제나 경계선을 따라 걷던 대단치 않은 삶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한편 언젠가 절에 들어갈 것이라던 J는 정말로 절에 갈 때가 된 것 같다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네팔에 가겠다던  물고기 역시 때가 된 것 같다며 그녀를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J와 물고기는 함께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J는 죽었고 물고기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나'의 삶은 총제적으로 흔들린다. 자신의 세포핵마다 슬픔이 새겨져 있어 울 필요가 없다던 '나'는 펑펑 눈물을 흘린다. 혼수상태인 물고기를 만나고 온 '나'는 물고기가 피던 말보로 라이트를 사서 입에 물지만 라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후 웃으며 말한다. 

"나는, 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01. 건조한 청춘에 내리는 빗방울


  어릴 적 지붕에서 말라죽은 고양이 시체를 본 충격으로 지붕에서 떨어진 뒤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존재가 된 J. 늘 여행하듯 살 것이고 여행에서 만나는 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겠다며 2차원 평면과 같은 방에 사는 물고기. 자신은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경계선 밖을 벗어나 본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M. 편의점 창고에 박혀 세상의 어떤 것에도 정 주지 않을 것처럼 구는 점장. 그리고 그들을 관조하며 어떤 집단에도 소속하지 않은 채 표류하는 '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미건조하다. 인물들은 아주 작은 자신들의 세상을 구축해서 사는데, 주인공인 '나'는 편의점과 지하철, 숨 가쁘게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자취방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물고기는 최저임금의 둘레가 자신을 지켜주는 카페와 피시방, 가구 없는 2차원 평면 세계로 이루어진 방을 오가며 살아간다. 취업에 연달아 낙방하는 M과 삶이 버거운 J까지도 모든 인물들이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 N포 세대를 대변한다.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는 그들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거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장치가 된다. 공중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보며 자신의 숨을 느껴야 할 만큼 청춘들은 바싹 말라버렸다. 흩어지는 담배연기는 최악의 구렁텅이 그 주변 어딘가에서 버티고 서는 것이 최선인 그들의 무게를 대변한다. 무겁게 내뱉지만 가볍게 흩어지는 정도의 무게 말이다. 내뱉을 때는 내 것임이 분명한 담배연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 중에 사라져 버린다. 그건 특별한 삶을 살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실은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이었음을 알게 되는 청춘의 모습 아닌가.

 작년 즈음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에 시동을 걸었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로 퇴근 후 맥주 한 캔, 좋은 향초 사서 피우기, 자기 전 ASMR 듣기 같은 큰 노력과 소비 없이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이른다. 그런 한편, 우리의 행복이 '소소함'에 그쳐야 하냐는 반발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청춘들의 큰 야망은 강제로 소거되었다는 말이고 나 역시 그에 대부분 동의한다. 소확행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야망이 소거되며 시작됐다. 부가 부를 낳고 집값은 치솟고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은 없는 현실 말이다. 그런 사회의 책임은 쏙 빼고 개인에게 남겨진 건 '소확행'이라니, 이건 기만이 아닌가?

 N포 세대가 포기하는 것들로는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꿈, 희망 직업, 연애, 인간관계] 등이 있다고 한다. 결혼과 출산 면에서는 페미니즘의 물결 이후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인권 운동적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현실, 인간이 태어나 자아실현의 대부분을 이루는 꿈과 희망 직업 역시 취업난에 포기하고, 그토록 팍팍한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될지도 모를 인간관계마저 포기하게 되는 것은 시대적 문제이다.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허락된 행복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물고기와 해가 내리쬐는 공원에 늘어져 있고, 육교에서 맥주를 마시고, 피시방에서 지뢰 찾기를 한다. 외부를 차단한 채 책을 읽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석양을 본다. 분명 때때로 행복했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에게 남을,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만한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일 하루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지 않은 채 '내일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나'에게 허락된 행복은 그뿐인 듯 보인다.

그나마의 여행을 떠나겠다는 꿈이 있던 물고기와 절에 들어간다는 J는 어쩐 일인지 함께 있었고 사고를 당한다. '여행지에서의 인연은, 그곳에 두고 올 것'이라며 J의 고백을 거절했던 물고기인데 말이다. 물고기는 미래의 한 지점에 자신의 인생을 위탁한 채 표면적으로 여행하듯 실제로는 현실을 외면한 채 최저임금의 둘레 안에 살아간다. J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과제인 것처럼 특징적인 점도 없고 '초코파이' 농담 같은 시시한 사람이다.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알 수 없지만, 그런 물고기와 J가 외면해왔던 현실과 관계 맺음에 한 발자국씩 다가갔었던 건 아닐까 하는 긍정적인 상상을 해본다. 그 끝은 비극이었지만. 그런 두 사람의 결말은 마치 '노력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라고 말하는 비관적 태도 같다.


 그렇게 무던한 '나'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 건 결말부에 J와 물고기의 사고 소식 이후 내리는 비 때문이다. 비 내리는 모습, 비 냄새, 빗소리, 피부에 닿는 느낌 때문에 '나'는 총체적으로 흔들리며 걷는다. 그녀는 M의 가슴팍에 기대에 양수 속을 흐느적대며 울었다.


"

내가 태어나기 얼마 전,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할머니를 마음속 깊이 사랑했다. 깊은 밤 엄마가 조용히 눈물을 흘릴 때면, 나도 빠짐없이 따라 울었다. 그래서 나를 감싸고 있던 양수의 염도는 조금씩 조금씩 높아져갔다.

어쩌면 나는 엄마의 슬픔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났는지도 몰랐다.

내가 태어나던 날, 분만실 바닥에는 엄마의 눈물이 발목까지 찰랑거렸다.

"




그녀는 그렇게 우렁찬 울음으로 태어나 좀처럼 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염도가 높았던 양수를 느낄 만큼, 그렇게 울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을 만큼 울었다.

 앞서 늘어놓았던 청춘의 건조함과 대비되는 비가 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다. M은 비가 오지 않아도 비 냄새를 맡을 줄 알았고 그럼에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나'는 M의 그런 점까지 좋아했고, 또 다른 비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물고기를 만나 또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녀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이별한다. 사실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은 개인을 스치고 간다. 우리는 그 잠깐의 인연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굴고 당연히 다가오는 수순인 이별에 너무 많이 슬퍼하곤 한다.

 비 냄새를 맡고 비가 올 것이라 짐작하는 물고기와 M이 있지만 한 사람은 우산을 챙기고 한 사람은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주인공이 M에 대해 말하기를 '나를 위해 우산을 가지고 올 테지만 나를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했듯 그는 자신을 위한 우산을 펼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자신을 위한 우산이 없는 사람이라니, 어쩐지 처연하고 슬프다. 나는 M을 측은해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그가 비를 맞는 건 사실 그의 인생에서 그리 큰일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에서 슬픔과 함께 묘사되고 있는 비는 역설적으로 건조하기만 했던 청춘을 적셨다. 빗방울은 부서지고, 마른다. 담배연기는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담배 한 개비의 시간>에서 말하고 있는 청춘의 속성이다. 부서지는 빗방울과 흩어지는 담배연기, 그건 우리가 지나온 한때의 시간과 같다. 모든 시간은 부서지고 흩어지고, 그 시간의 파편에서 유의미한 것을 이어 붙여 우리는 추억 혹은 경험이라 부른다. 그러니 어떤 비를 맞아도 문제가 될 건 없다. 비쯤이야 말리면 그만이고 연기는 손쓸 새 없이 흩어질 테니까.

 언제나 주변 인물들이 담배를 다루는 태도를 지켜보던 '나'가 물고기가 피우던 말보로 라이트를 입에 물고 후후 웃는다. 그녀는 라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엔 어떨지 모른다. 건조함과 상응되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열린 결말인 셈이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할 '나'가 있듯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건조하든 치열하든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하고 있는 청춘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하고 싶다. 삶의 결말은 언제나 열린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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