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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PEACE Oct 06. 2022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난 죽고 없을 거야

줄리 앤 피터스의 장편 소설 (2010) 리뷰


줄거리

뚱뚱해서 왕따를 당하고 집단 성폭행을 겪은 아이 대일린 라이스는 앞선 자살 ‘실패’(대일린은 시도가 아닌 실패라고 표현한다.)로 인해 부모로부터 살아있음에 대한 감시받는 상황에서 자살 사이트 ‘스루더라이트(Through-the-Light)’에 운명적으로 접속하게 된다. 실행일을 설정하고 매일 접속해 자살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이 사이트는 D-day까지 최소 23일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이야기는 D-23일부터의 대일린을 따라 전개된다. 


한편 대일린이 하교를 위해 칩과 킴(부모)의 차를 기다리는 벤치에 방해꾼이 나타난다. 대일린에게 관심을 보이는 산타나라는 남자애다. 대일린은 애써 산타나를 무시하며 죽기 전에 읽기로 결심한 <안개속 욕망> 시리즈(이야기에 등장하는 시리즈는 황무지에서 피는 욕망-탄광에 피는 욕망이다)를 읽어나간다.  


대일린의 깊은 상처는 아빠의 강요에 의해 나간 오디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강당에서 자신의 몸매에 대한 평가를 받고 그 사건으로 인해 ‘다시는 아빠를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 대일린은 그후로 학교에서 뚱뚱하다는 이유로 온갖 괴롭힘을 당한다. 괴롭힘의 정도는 왕따를 넘어서 투미 패거리의 집단 성폭행까지 이른다. 대일린의 엄마는 대일린을 스카우트 캠프에 억지로 보내지만 역시나 그곳에서도 놀림을 받았고 대일린의 부모는 "노력을 해보긴 했니?”라는 질문을 한다.


이사와 전학을 반복하며 대일린은 매번 새로운 괴롭힘을 받게 되는 한편 비만캠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짓밟힌 채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자살을 23일 남겨두고 그 누구와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싶지 않은 대일린의 의지와 달리 산타나는 끈질기게 대일린에게 다가온다. 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 것으로 예상되는 뚱뚱한 학생 에밀리는 경제 수업과 합창 수업에서 자꾸 말을 걸어온다. 


23일이 지난 D-day, 대일린은 과연 자살에 ‘성공’할 수 있을까? 





당하는 쪽이 노력해야 하는 세상은 바뀔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자살을 결심한 아이의 심리 묘사가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정상적인 범주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작품을 읽다 보면 대일린이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과대망상적으로 느껴지는 심리묘사들이 많은데 대일린의 지난 상처들이 드러나면 그런 심리가 자기 방어를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일린의 상처를 보듬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는 모두 놓쳐졌다. 그 이유 또한 상처받은 아이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던 탓이 아닐까. 





“모임에 가자. 재미있을 거야”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중략)…

모임은 지루했고 형편없었다. 우리 학교에서 온 여자애 하나가 나중에 나한테 와서 말했다.

“이곳이 마음에 들 거야. 대일린. 여기선 먹거든”

여자애가 정말 큰 소리로 한숨을 쉬어서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컵케이크를 충분히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대장이 밖으로 나오라고 설득했다.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는데도 애들이 비웃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화장실 바닥에 앉아 문에 기댄 채 엄마가 데리러 오기만 기다렸다.

차 안에서 엄마가 말했다.

“노력해 보긴 했니?”

왜 내가 노력하는 쪽이 되어야만 하나요? 





대일린의 자기 방어 행위는 세상의 시선으론 과민함으로 비추어졌다. 공황이나 발작, 강박을 부모는 감추고 부끄러워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겠지만 그전에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해라’는 말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시대 아닐까. 맞서는 것만을 극복이라고 여기는 부모 아래서 대일린은 매번 새로운 고통을 겪어야 했다.


 ’피하는 쪽이 지는 쪽’이라는 생각은 피해자에게 가혹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자신을 혐오하거나 혐오하는 곳으로 밀어 넣는 상황에서 대일린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은 자살 말고는 없다. 







“마스크 절대 못 벗어”…밥까지 굶는 10대들의 속사정. 


원론으로 돌아가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행위는 어떤가. 대일린은 뚱뚱하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비만캠프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운동을 시키는 가혹행위가 이어진다. 끔찍한 것은 뚱뚱한 자신을 혐오하도록 주입시키는 것이다. 비만캠프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존엄성 파괴는 극단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상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난 죽고 없을 거야>가 쓰인 지 12년이 지난 2022년의 일이다. 마기꾼, 마혜자. 마스크 속 얼굴이 자신이 예상한 얼굴과 다를 때 평가하는 유머식 신조어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심들을 엿볼 수 있다. 남이야 어떻게 생겼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평가하며 이런 말들을 만들어 내는 걸까? 





올해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있잖아, 고등학교까지 포함해서. 나는 사람들이 좀 더 어른스러워질 거라고 생각했어. 적어도 더 친절할 거라고 말이야.”

뜻밖이야, 에밀리.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아.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만 있어. 승자와 패자.

흑과 백. 회색이 어디에 어울리는지, 네가 그늘 속에서도 살 수 있는지 난 몰라.

269p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해져서 ‘남을 평가하는 일’을 그만두게 될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처음부터 남을 쉽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남을 평가한다. 그런 일에 의연해지라거나 “신경쓰지마”라는 식의 해법엔 한계가 있다. 대일린의 말처럼 왜 당하는 쪽이 노력을 해야 하느냔 의문만 남는다. 



그럼에도 대일린은 용기를 가진 아이다. 선택적 함구증을 보이던 대일린이 비만캠프에 가겠다는 에밀리에게 몇 년 만에 목소리를 내어 말을 한다. 가지 말라고. 칩과 킴이 대일린을 내몰았던 극복의 방식은 대일린에게 상처를 주고 갖은 고초를 겪게 했지만 결국엔 대일린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낸다. 그 용기는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더이상 없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D-day, 대일린은 산타나와 저녁을 먹었을까, 자살을 했을까? 이 책을 다 읽은 모든 독자의 소원처럼 대일린에게 새로운 빛의 길이 열려있길 바란다. 


이 작품은 문제작이다. 대일린의 자살 실패와 재도전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이 작품이 던지는 화두는 다양하다. 많은 부모와 자살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이 읽어보기를, 그리고 그 누구도 죽지 않기를 바라본다.  





(작품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같이 나눠봐요)


1) 자녀가 심리적 곤경에 처했을 때 올바른 부모의 대처는?

대일린의 부모인 칩과 킴은 대일린을 존중하지 않고 대일린의 성향과 맞지 않는 방식으로 대일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폭력적인 면이 있는 반면, 대일린이 느끼기에는 감시였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 등하교 문제, 직업의 이동과 이사, 캠프와 같이 또래 집단에 섞일 방법을 여러방면으로 알아보고 먹지 못하는 대일린을 위해 식사를 일일이 갈아주거나 다시 자살충동이 일었을 때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안전한 맞춤 가구를 들이는 등- 대일린의 ‘생존’에 열과 성을 다한다. 분명 대일린을 사랑하지만 대일린의 민감한 성향에 맞지 않는 막무가내식 대처를 보이고 그것은 대일린의 자살을 확신하게 한다. 

산타나의 엄마 에이리얼은 산타나가 태어나기도 전에 산타나 아빠를 사고로 잃고 혼자 산타나를 키워낸다. 암에 걸린 산타나를 위해 집을 ‘멸균’에 가깝게 유지하려 애쓰지만 생계를 유지해야 되기 때문에 산타나를 두고 일을 하러 나가야 하고, 병으로 홈스쿨링을 하는 산타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지만 궁금한 부모는 에밀리의 부모이다. 대일린과 비슷한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지만 그에 크게 좌절하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에밀리는 어떤 가정에서 성장했을까? 

에밀리의 가정환경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나름대로 붙여보자면 <좋은 부모의 법칙> 같은 게 없기 때문인 거 같다. 에밀리가 칩과 킴 아래서 자랐고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고 해도 에밀리는 타고난 성향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대일린과 마찬가지로 자살 시도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런 가정을 하는 것은 결국에 부모와 자식은 ‘고를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2) 당근과 채찍 이야기 중 채찍의 효용성에 대해서

이야기에서 기술되는 <비만캠프>에서는 자신을 “뚱돼지”로 부르고 끝없이 뚱뚱한 자신을 보고 괴로워하도록 한다. 흔히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라는데 폭언은 채찍의 영역에 들 수 없다. 그런데 모욕감을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어느 정도의 선까지를 ‘채찍’의 기준을 둘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외모’를 가꾸는 일에도 한정할 수 있을까?  


3) 인간은 인간을 구원하는데, 그 구원자는 완전한 빛인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산타나는 결국에는 대일린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구원하는 존재처럼 그려지지만 그들의 마음과 관계없이 상황으로만 봤을 때 산타나는 말을 하지 않는 여자애에게 언어적 소통과 동의 없이 스킨십을 시도한다. 대일린의 과거의 아픔으로 민감한 상태였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것은 일방적인 성추행에 가깝다. 구원자라고 해서 완전한 선인은 아니라는 걸 절감하면서 “누군가를 도와줄 때 그 사람이 선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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