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조지아 여행 / 쿠타이시 to 메스티아, 메스티아 둘러보기
10/13_2022
오늘은 쿠타이시에서 메스티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사실 쿠타이시에서 익숙한 러시아 중부 느낌을 많이 받아서 1박 하고 떠나는 게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볼트를 부르려고 했는데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 그런지 호출 탭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걸어가기로.
뒷 배낭 13킬로(한국에서 잰 거니 아마 더 늘었겠지), 앞 배낭 4킬로를 매고 17분가량 걸으니 땀이 났다. 역시 운동은 무게를 쳐야 되는구나 깨달음.. 한국 돌아가면 운동 열심히 해야지.
9시 10분에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어제 티켓 끊을 때 ‘김줜일’하면서 사우스 코리아 안다고 하던 아저씨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내가 탈 마슈로카 운전기사였다! 내가 다가가자마자 티켓 확인도 안 하고 배낭 달라며 트렁크 쪽에 넣고 아무 데나 앉으라고 했다.
동양인 여자들이 마슈로카를 타면 체구가 작아서 좁은 자리로 앉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말이 없어서 1인 석에 앉아서 편하게 왔다. 나는 딱히 자리가 좁진 않았는데 옆자리에 앉은 키 큰 남자들은 앞자리에 무릎이 닿더라. 이럴 때는 키 작은 게 좋아!
9시 10분에 도착했는데 이미 몇몇 자리는 잡혀있었다. 자리 찜을 잘해놔야 되는 게 맨 뒤에 서양인 2명이 앉아있다가 배낭을 메고 먹을 걸 사러 갔다 오는 사이에 기사 아저씨가 그들이 앉아있던 자리에 짐을 실었다. 둘이 떨어져서 앉게 된 상황인데 다행히 혼자 온 다른 서양인 남자가 자리를 바꿔줘서 평화롭게 출발!
1시간 정도 달린 후 주그디디에서 첫 번째 휴식을 가졌다. 화장실 상태를 알고 싶지 않아서 그냥 좀 서 있다가 다시 탔다.
점점 길이 험해지기 시작할 때쯤 세 번째 휴식. (중간에 승객 중에 한 명이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주유소에서 아주 잠시 쉬었었다.) 여기서는 기사 아저씨가 하차푸리 먹으며 커피도 마시고 사람들도 커피 마시고 그러더라.
여기서 쉬고 있는데 옆자리에 탄 다리긴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이름은 ’구람’이고 메스티아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다고 했다. 옆자리에 있던 친구는 미셸, 형제일 줄 알았는데 그냥 베스트 프렌드라고 같이 트빌리시&쿠타이시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실 미셸은 나한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구라미(라고 하겠음. 왜냐면 그게 더 귀여우니까)가 뭐라 뭐라 얘기하면 맞아 맞아하는 정도ㅋㅋㅋ마치 외향인 사이에 낀 내향인 같군요. 내향인인 나도 그 마음 이해해..
이 휴게소에서부터가 진짜 리얼 로드 트립 시작.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음악을 크게 틀어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찐 롤러코스터 구간이다.
좀 심하게 덜컹거리긴 해도 여러 후기에서 본 거처럼 미친 듯이 힘들진 않았다. 게다가 롤러코스터 좋아해서 공짜 롤코다 생각하고 즐김ㅎㅎ 여행할 때 긍정적이어서 손해 볼 건 없지.
옆에 낭떠러지가 있긴 한데 내 기준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아틀란티스 산맥 넘어갈 때보다 무섭진 않았다. (거기는 가드레일 자체가 없어서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
마구잡이로 달리는 거 같아도 코너길에서는 서행하고 공사 중인 곳을 지나갈 때도 주의하면서 운전하는 게 느껴져서 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신기했던 건 타이밍을 어떻게 알았는지 메스티아 가는 길에 있는 집들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물건을 받아갔다. 갓길 없음ㅋㅋㅋㅋ 막 달리다가 냅다 도로 중간에 그냥 세우고 물건 주고받고 이야기한다.
물건을 주문할 땐 어떻게 할까? 처음에 어떻게 번호를 주고받았을까? 그런 궁금증으로 이들의 삶을 상상하게 됐던 풍경이었다.
그리고 메스티아에 거의 다 와갈 때 저 멀리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 한 7-80명 무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위인 줄 알고 ”헐 저게 뭐야” 이러고 있었는데 구라미가 장례식 행렬을 하는 거라고 알려줬다.
가까워져서 보니까 시신이 든 관을 들고 행렬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대부분 울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례문화라 신기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라고 해서 좀 슬퍼졌다.
그렇게 차를 주유소 쪽에 대고 기다리는데 마을이랑 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미셸이가 갑자기 탈주했다(??)ㅋㅋㅋ행렬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다시 3분 정도 달려서 메스티아 터미널 도착!
원래 구라미가 자기 가는 길이랑 같으니까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탈주한 미셸이를 기다려야 될 거 같다고 길을 알려줬다. 그리고 인스타 맞팔하면서 이따 볼 수 있으면 보자 하고 헤어짐.
메스티아 내리자마자 직감했다. 여기는 내가 사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미친 풍경을 보면서 다리 건너서 걸어가고 있는데 트럭 한 대가 멈추더니 어디 가냐고 했다. 태워주려는 건 줄 알고 숙소까지 5분도 안 남겨둔 시점이라 “나 게스트하우스 가는데 다 왔어!” 이러니까 ”어디 게스트하우스?”이러길래 ”무슈쿠디아니 매너라고.. 알아?”하니까 “그거 내 게스트 하우스임”이러는 거 아니겠음?ㅋㅋㅋㅋㅋㅋㅋ
같이 걸어오면서 어떻게 알았냐니까 자기는 자기 손님의 아우라를 느낀다고 했다. 주인아저씨는 정말 친절했다. 테라스뷰를 보자마자 ‘아.. 여기서 남은 조지아 일정을 다 보내버릴까’ 싶었다.
주인아저씨가 너 언제 다시 이동하냐 해서 6일 뒤라니까 왜 2박만 했냐고 더 있고 싶으면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부킹에서 가격이 올라서 다른 곳을 예약했다니까 네가 예약한 가격으로 머무는 거 문제없다고 있고 싶으면 있고 가고 싶으면 가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다음 게스트하우스에 말해보고 알려줄게!”하고 일단 밥을 먹으러 갔다.
5시가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BBQ Garden>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Lile> 조지아 빵 3라리 + 오자후리 12라리 + 맥주 500 5라리 + 서비스차지 15% = 23라리
그래서 길 건너 문 열린 곳에 냅다 들어가서 오자후리랑 빵, 맥주를 시켰다. 오자후리는 돼지고기 감자볶음 같은 건데 고수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고수 못 먹으면 빼 달라고 요청을 해야 한다.
아침 8시에 밥을 먹고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여서 그런지 정말 너무 맛있어서 눈물 날뻔했다. 메스티아 너무 좋은 거 아니냐고.. 너무 맛있어서 나와서 가게 사진 찍고 구글맵에도 찍어놨다.
밥 다 먹고 슈퍼 가서 물 2개랑 치즈 하나, 블랙커피 봉지 몇 개를 사 왔다. 가격은 14.98라리.. 근데 뭐가 얼마인지는 기억이 잘.. 물이 500원 정도였다.
그렇게 들어오니까 8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심심해서 ‘뭐하지..’ 하다가 산책을 가보자 하고 다시 나갔다.
걸어서 센트럴 쪽으로 가는데 아무래도 비수기라 문 닫은 곳이 많았다. (여름&1-2월이 성수기) 아까 밥 먹었던 중심가에 다시 도착했는데 택시 아저씨가 ”헤이~ 좀 쉬었니?” 이러길래 ”??저요??” 이러니까 ”그래 우리 아까 코룰디 갔다 왔잖아..? 그렇지?”이러길래 ”아 그거 나 아닌 거 같은데? 나 방금 메스티아 도착했어” 하니까 다른 동양인이랑 갔다 왔는데 착각했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ㅋㅋㅋ
트레킹 갈 택시 기사나 정보를 알아보려고 나간 참이라 코룰디 레이크 가는 택시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너 혼자면 다른 사람이랑 합승해서 가는 걸로 인당 50라리, 1시간 가서 2시간 기다리고 1시간 돌아오는 걸로 해준다고 했다. 숙소 아저씨는 혼자 가는 걸로 100 라리라고 했는데 잘됐다 싶어서 바로 왓츠앱 등록하고 날씨 좀 보고 가기 전날 연락한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구라미가 연락 와서 심심하면 좀 걷자길래 한 2~30분 더 걷고 들어가면 좋지 하고 만나서 걷기 시작.
근데 구라미는 혈기왕성한 24세였음ㅋㅋㅋㅋㅋ 잠깐 걷자더니 매스티아 공항까지 찍고 돌아와서 1시간 넘게 걸었다. 너의 잠깐은 1시간이구나.. 기억할게..
메스티아를 아주 잠깐 봤는데도 너무 좋아서 뒤에 예정했던 보르조미 일정을 취소할까 고민하면서 어제 먹고 남은 와인을 마셨다. 술 먹고 싶어서 먹은 건 아니고요.. 좀 추워서요..?ㅎ
내일 날씨 예보도 안 좋고 트레킹을 위한 컨디션도 조절하려고 내일은 하루 쉬면서 메스티아 좀 둘러볼 생각이다. 운전은 기사님이 했지만 왜 내 몸이 두들겨 맞은 거 같은지..
메스티아 너무 좋고 만난 사람들도 너무 좋다. 숙소에 댕냥이도 있고 강물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정말,, 좋단 말로 부족할 만큼 좋아. 쿠타이시에서 잠깐 외로웠는데 다시 활기찬 여행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