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과나후아토, 삐삘라 전망대, 젤라토, 새우타코
2025_6/6
오늘은 큰 계획은 없고 그냥 동네 산책할 생각, 과나후아토에 저녁에 도착해서 낮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첫날이다! 빨래 돌려놓고 씻었는데도 9시, 1층 식당에서 오픈 준비를 하는지 음식 냄새가 솔솔 나고, 그 덕에 나도 배가 고파졌다.
구글맵으로는 아직 문 연 식당들이 많이 없어서 일단 거리로 나가봤다. 빵집들은 아침에 많이 여니까 빵을 사 와서 호스텔의 무료 커피를 타 테라스에서 먹으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행 정보 카페에서 아침에만 여는 빵집이 있다 해서 그 광장 쪽으로 향했다. 아침에 보니 더더 예쁜 과나후아토. 내일 가기엔 너무 아쉬울 거 같아서 1박 연장하기로 잠깐의 산책에도 결심이 섰다.
이 좁고 구불구불한 길 따라 열심히 달리는 차들도 귀엽고, 색감이 다채로우니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안 걸어 Baratillo 광장에 도착하니 진짜 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현지인 아저씨가 봉투 가득 빵을 담으시는 걸 보니 현지인들에게 인정받는 맛집(?) 맛있는 노점인가 보다. 다른 사람들 하는 거 따라 나도 맛있어 보이는 빵 두 개 골라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21페소란다. 말도 안 된다. 진짜 빵 하나에 1000원도 안 하는 착한 가격이라니.
감명받고 집으로 돌아와서 커피랑 빵 먹기, 근데 가격을 논하지 않더라도 빵이 정말 맛있었다. 그냥 모양새만 보고 골랐는데 안에 고추참치 같은 양념된 참치가 들어간 빵이어서 짠 빵 좋아하는 (식사가 될 거 같은 빵) 나로서는 너무 맛있었다. 멕시코에서 사 먹은 거 중에 기억에 남을 거 같은 맛. 거기까지 먹다가 테라스 너무 더워서 결국 방으로 내려왔다.
방에서 나머지 빵을 먹었는데 달달구리 한 빵도 안에 슈크림 같은 게 가득 들어있어서 너무 맛있었다. 이 빵은 과나후아토 떠나는 날 꼭 사가서 버스에서 요기해야지. 21페소에 이 정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니.
빵을 다 먹고 빨래를 확인하니 잘 안 되어 있다. 아마 세제를 그냥 세탁물이랑 같이 넣는 건지, 빨래에서 세제 향은커녕 그다지 좋지 않은 냄새만 났다. 결국 다시 돌리고 방에서 좀 쉬었다. 남는 게 시간이요 마을은 작으니 급할 것도 없었다. 창문 밖으로 아직 가게 오픈 준비를 하며 틀어놓은 음악 소리도 정겹고 좋았고 혼자 쓰는 퀸 침대도 황송했다.
금방 빨래는 다 되었고, 해가 쨍하게 드니 엄청 잘 마르겠다 싶었다. 나중에 빨래에 대해 따로 글을 쓰고 싶으니 자세히 논하지 않겠지만 난 빨래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빨래를 햇볕에 너는 일은 정말 좋아한다.
다시 산책을 나섰다. 계획은 삐삘라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전망이 좋은 카페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다시 같은 길을 걸어봐도 정말 예쁜 과나후아토, 근데 삐삘라 전망대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경사졌다. 이렇게 힘들 일이 아닌데 싶다가도 뒤를 돌면 얼핏 얼핏 보이는 풍경에 다시 올라가게 됐다.
다행인 건 숙소랑 가까워서 한 10-15분 만에 도착했다는 사실. 올라가니 음식들 파는 노점도 있고 사람들도 많았다. 보니까 옆에 찻길도 있어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차로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삐삘라에서 한참 풍경을 바라봤다. 정부에서 집집마다 페인트를 지급한다는데, 그렇다고 해도 그걸 칠하는 정성은 감사할 따름이다. 여러 가지 색들이 모여 마을의 전체적이 색감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특히 언덕을 따라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게 신기하고 대단했다. 저기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어지간히 힘들겠다 싶고, 학교는 어디에 있을지 얘네도 학원 같은 걸 다닐지 궁금했다.
해가 강해 전망대에 기대는 벽돌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내려오기 시작, 내려오는 길에도 예쁜 포인트가 많아서 앉아서 사진도 찍으며 혼자만의 산책을 만끽했다.
그렇게 내려오고 나니 어제 잠깐 둘러본 과나후아토가 전부가 아니었다. 과나후아토는 그냥 예쁜 마을 구경 정도로 생각하며 극장마저 예쁘다고 생각했던 후아레스 극장이 있었다. 바로 앞에는 우니온 정원이! 정원은 작았지만 그늘이 많이 질 수 있도록 나무를 반듯반듯하게 깎아두었고 사람들이 가득했다.
극장을 지나 쭉 걸어가는데 길들이 너무 예뻤다. 멕시코의 많은 도시를 가보지 않았는데도 과나후아토가 엄청 아기자기하고 멕시코에서도 예쁜 도시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과나후아토는 그냥 산책만으로도 하루를 다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가다 보니 성당도 엄청 예쁜 게 있었다. 성당 앞쪽으로 식당들도 나와있었는데 노래 불러주는 마리아치 팀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멕시코 시티에는 마리아치들이 있는 거리가 따로 있다는데 과나후아토는 마을 전체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기자기 귀엽고 예쁜 마을을 즐기며 도착한 카페는 젤라토 전문점 Estación Gelato. 후에 알았는데 체인점이었다. 그 지점들 중에서도 여기가 풍경이 좋다 해서 들어갔다. 평소 같았다면 아무렴 젤라토 전문점이라도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텐데 날이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배스킨라빈스 맛보기 스푼처럼 여러 개를 먹어보게 해 줬다. 여러 개를 맛봤는데 내 입맛에는 모히또 맛이 제일 잘 맞았다. 한 스쿱에 64페소. 디저트 치고는 비싸지만 모히또 맛이 엄청 상큼해서 더위가 확 식는 느낌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2층에 가니 유튜버 두 명이 뭔가 타로(?) 같은 걸 하면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거기가 풍경 보기 딱 좋은 곳인데,, 나는 그 옆자리에 앉았다. 혼자 이것저것 쓰고 사람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옆에 혼자 있던 언니가 꽃 선물을 배달받았다. 여기가 테라스로 되어잇는 곳이라 밖에서도 이 옥상이 보이는데 누군가 보고 선물을 보낸 건지 로맨틱한 풍경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유튜버랑 꽃 선물 받은 언니랑 모두 가고도 한참 시간을 보내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가 위치가 좋아서 중간중간 들어와 쉴 수 있으니 참 좋다. 돌아오는 길에도 예쁘고 예쁜 것들 투성이. 날씨도 좋고 산책만 하는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에 돌아오니 오늘도 혼자 여자 도미토리룸엔 혼자인 듯했다! 저녁엔 뭘 먹지 찾아보다가 사람들이 새우타코를 엄청 추천 많이 해서 오랜만에 현지음식을 먹기로 하고 새우타코를 먹으러 나갔다.
새우타코집도 숙소 바로 앞.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는 타코에 딱 새우튀김만 올려주면 셀프바에서 취향대로 추가해서 먹는 식이었다. 나는 새우튀김 하나랑 그릴새우 하나씩 시켰다. 아저씨가 추천해 주신 대로 양배추랑 살사, 매운 소스 조금 올려서 먹었다. 근데 매운 소스가 진짜 매웠다.
타코는 한 번에 왁왁 먹어야 되는데 이거 먹고 저거 먹고 하다 보니 결국 새우타코가 찢어졌다. 양배추 샐러드가 좀 물이 나오는 제형이라 그런 듯. 좀 게걸스러웠을 테지만 어쨌든 다 먹고 광장에 앉아서 기타 치는 아저씨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다가 다시 삐삘라로 오르기 시작.
밤 모습의 삐삘라도 보고 싶어서 오르기 시작한 건데 두 번째 오르는 거라고 길이 익숙해졌다. 아까 잠깐 쉬면서 삐삘라 전망대에 밤에 올라가는 게 괜찮은지 찾아봤는데 역시 해지고는 위험하다고 했다. 내려올 때 사람들 무더기로 내려가면 섞여서 내려와야겠단 생각을 하다 보니 익숙한 길도 좀 무서워 보여서 처음 오를 때보다 더 빨리 올랐다.
해가 지기 4-50분 전, 노을 시간이 다 돼가니까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도 앉아서 노을 구 경을 하고 사람들 구경을 했다. 아시아인 하나 찾기 어려웠던 멕시코 시티에 비해 과나후아토는 아시아인들도 많았다. 특히 중국인들이! 먼먼 나라에서 그래도 가까이 붙어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름 반갑다.
삐삘라를 오늘만 2번 (후에 한 번 더 갔지만) 왔는데 삐삘라에서 풍경을 바라볼 때 가장 예쁜 시간은 노을빛이 다채로운 색에 물들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Remeber me~가 절로 생각나는 풍경. 언덕이라 바람이 엄청 불었지만 풍 경을 바라보느라 한참을 있었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타임랩스 영상 찍어둔 건 다 흔들렸다ㅠㅠ )
해가 거의 다 지고 이제 슬슬 같이 따라갈 사람들을 정해 따라 내려가려는데 가족끼리 온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고 아직 내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경찰 무장복 입은 아저씨 두 명이 내가 내려가는 쪽으로 내려가길래 얼른 따라갔다.
근데 한 블록 정도 내려오고 나서 낮에 봤던 포인트에서 맥주랑 과자 먹기 시작ㅠ 너네 안 내려가냐고 하니까 안 내려간단다. 그래서 "나 무서워서 너네랑 가려고 했단 말이야"하니까 허허 웃기만 했다. 그래서 다음 팀 오면 같이 내려가려고 기다리는데 누가 봐도 양아치인 애들 4명이 내려갔다. 걔네는 내가 같이 갈 게 아니라 걔네를 조심해야 될 거 같아서 경찰 아저씨 쪽에 붙어있었다.
그때가 7시 50분이었는데 8시까지만 기다려보고 푸니쿨라를 타든, 혼자 걸어내려 가든 해야겠다.. 하고 있는 차에 어떤 언니가 엄청 밝게 인사하면서 내려왔다. 경찰 아저씨랑 스몰토크도 하는 거 보니 여기 현지인인 거 같았다.
그래서 냉큼 "너 내려가니? 나도 내려가는데 같이 가자 나 좀 무서워" 하면서 같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언니여서 소통이 가능했다. 역시 늘 생각대로 안 되는 게 여행이고 또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도 여행이다.
근데 무서운 점 : 내려가다가 딱 꺾여서 안 보이는 지점에 아까 본 양아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기다린 게 아니겠지 했는데 누군가랑 같이 있는 날 보자마자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고 자리 털고 일어나서 우리를 따라왔다.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 무서워서 사실 그녀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어쨌든 무사히 내려와서 (아까 그들은 한 두 골목정도 따라오다가 또 사라짐) 그 언니가 자기는 극장 쪽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이 가자고, 가면서 길바닥에 앉아서 기타 치는 분이랑 인사했는데 자기랑 되게 친한 친구라고 했다. 역시 과나후아토 인싸언니였던 거다. 사람을 참 잘 골랐다. 지금 극장에 가는 것도 (아마도 남자) 친구가 오늘 시내 돌아다니면서 공연하는데 같이 참여할 거라서 간다고 했다. "참여티켓 150페소인데 내가 끊어줄까?" 이래서 괜찮다고 했다. 여러모로 무서운 기분이 안 가셨고, 기도 빨려서 혼자 있고 싶었다.
언니는 극장이 보이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 가볼게 안녕~~~~!!!!" 하며 사라졌고 나는 우니온 공원에 좀 앉아 있었다. 내가 앉은 벤치에 할머니가 도리토스에 야채 올린 걸 들고 앉으셨는데 할머니와 외국인, 다소 낯선 조합으로 앉아있으니 호객꾼들이 나에게 호객하지 않고 가서 할머니께 고마웠다.
거의 한 시간을 앉아서 사람 구경을 했는데 할머니도 한 40분은 앉아있다가 가셨다. 서로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마지막에 가실 때 미소를 지으며 스페인어로 좋은 여행 되라고(추정..)하고 가셨다.
할머니가 가시고 나도 슬슬 숙소로 복귀했다. 돌아오는 길엔 맥주 한 캔을 사 왔는데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려다가 너무 추워서 결국 방으로 돌아왔다. 멕시코 시티보다 작고 소란스러운 느낌의 과나후아토. 그 소란함이 즐거운 말소리들처럼 들리는 귀여운 마을의 두 번째 밤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