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과나후아토에서 와하카, AU버스, 멕시코시티 환승
2025_6/8
과나후아토의 마지막 날이자 대 이동의 날. 과나후아토에서 멕시코시티까지 5시간, 4시간 대기 후 멕시코시티에서 와하카까지 8시간의 야간버스를 타야 한다. 멕시코시티 기준으로 서북부는 프리메라, 동부는 ADO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프리메라 버스를 타고 가서 AU버스(저가 ADO)로 갈아탄다.
어제 데낄라를 마셨음에도 혹시 몰라 맞춘 8시 알람보다도 일찍 눈이 떠졌다. 다행히 신발은 거의 말랐고 옷도 다 말랐다. 밥집들이 대부분 12시에 문을 열어서 그냥 한강라면처럼 라면을 팔던 라면집에서 라면을 먹고 가려고 11시에 나왔다.
가는 길에 과나후아토 첫 아침에 먹은 빵을 사러 왔는데 내가 먹고 너무 맛있어했던 참치 속이 들어간 빵은 이미 팔리고 없었다. 짐 싸기 전에 사러 올걸.. 그래서 처음 먹는 빵 한 개랑 그날 먹었던 슈크림 빵 한 개 해서 16페소를 주고 샀다.
그리고 역시나 멕시코 타임~ 11시 오픈이라 해놓고 안 열어 놈. 근데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OXXO에서 브리또 하나랑 주스 하나 컵라면 하나 사서 먹기로 했다. 컵라면은 밍밍하니까 저번에 계란국에 타먹고 좀 남은 왕뚜껑 스프를 넣었다. 알뜰살뜰 안 버리길 잘했어.
오늘도 역시나 옥상에서 먹다가 브리또 다 해치우고 얼른 방으로 컴백해서 먹었다. 왜인지 아직 그늘막을 설치를 안 해서 (아마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그런 거 같긴 하다) 매일 아침마다 햇빛과 싸웠던 날들도 이제는 안녕.. 과나후아토를 떠나면 이 옥상이 제일 많이 생각날 거 같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충분히 행복했던 과나후아토와 작별할 시간. 짐가방 앞뒤로 메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과나후아토 버스는 순환식이라서 그냥 내렸던 곳에서 타면 된다. 역시 숙소 바로 앞! 가끔 안 가는 버스도 있다고 해서 터미널 가냐 물어보니 간다고, 다른 몇 사람들도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되게 많았다. 오는 길과는 다르게 터널 대신 마을을 빙 돌아 떠나는 길, 버스 터미널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버스 시간까지는 한 삼십 분 남아서 앉아서 기다리다가 탔다. 멕시코 시티 가는 버스엔 사람들이 꽤 타서 내 옆에도 어떤 아저씨가 타셨다. 근데 통화를 너무 역동적으로 해서 ‘아 진짜.. 신경 쓰이게 왜 저래…….’하다가 잠듦. 사실 신경 안 쓰였나 보다.
중간중간 깰 때마다 선인장 밭, 말들인지 망아지들도 있고, 염소도 있고 다양한 풍경들이 바뀌고 있었다. 나는 자다꺠다자다깨다를 반복했다. 버스만 타면 왜 이리 잠이 잘 드는 건지, 자고 일어나도 잔 거 같지 않을 걸 보면 일종의 멀미 같기도 하다. 어쨌든 시간은 잘 간다네.
차가 많아지는 게 멕시코시티에 다다른 것 같아 내리기 전에 화장실을 갔다 왔다. (프리메라 버스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도 다 돈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앞 뒤 배낭을 메고 작은 화장실 출입구 들어가는 건 못할 짓이다.
내려서는 배가 고팠다. 자고, 일어나면 배고프고 거의 신생아..
사실 북부 터미널에 테오티우아칸 갔다 올 때부터 눈여겨본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과나후아토에서 가려고 했던 거랑 비슷하게 메뉴를 고르면 그거랑 밥이랑 파스타를 주는 건데 그걸 먹으려 가보니 과나후아토랑 같은 체인이었다! 왜 몰랐지? 이름을 잘 안 보고 다니니까 이런 일이 다 있다. 그럼 결국 어제 중식당이 문 닫아서 못 간 건 정말 잘된 일이야~
가격은 과나후아토보다 20페소 정도 더 비싼 거 같았다. 체인인데 그래도 되나 싶지만 뭐.. 나는 1개를 고르는 콤보로 탕수육을 받았다. 북부터미널은 냉방이 안 되는 듯, 무지 더웠지만 맛있게 싹싹 비워서 먹었다. 식당 와이파이는 아니지만 터미널 공짜 와이파이 (무언가를 입력하고 하긴 해야 함..)가 있어서 여기 더 있을까 하며 시간을 보니 8시도 안 됐었다. 10시 반 버스라 최소 10시까지는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2시간을 뻐기기는 좀 그럴 거 같아서 8시까지만 거기에 있다가 나왔다. _너무 덥기도 했고..
나와서 혹시 몰라서 ADO 창구에 가서 "이 버스 여기서 타는 거 맞지" 하며 물어봤다. 다행히 친절하신 분이어서 (Ovni 트라우마;;) 엄청 자세히 보시고 조회까지 해서 10시에 4번 탑승구로 들어올 거라고 알려주셨다. 그라시아스 ~ 무차스 그라시아스 ~ 하니까 되게 좋아하셨다ㅎㅎ
원래는 카페에 갈까도 했는데 그냥 물이나 사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 멀리서 봤을 땐 너무 북적여보였는데 중간중간 자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 1.5리터짜리 사서 콸콸 마셨다. 어차피 출발 전에 한 번은 화장실 갈 거니까~
물 마시면서 공짜 와이파이 (근데 자꾸 뭘 입력해야 되고 일정 시간 지나면 끊김, 다시 연결하면 또 되니까 감사히 썼다.)를 잡아가며 시간을 때웠다.
+참고로 멕시코시티에서 와하카 가는 버스는 거의 다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북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건 내가 가던 날 기준 하루에 한대뿐이었다.
9시 45분쯤, 화장실에 가려고 하다가 뒷배낭은 도무지 가져가고 싶지 않아서 옆자리 할머니 두 분께 번역기로 부탁을 드렸다. 다행히 엄청 흔쾌히 알겠다고 해서 다다다 화장실로. 멕시코시티는 화장실 8페소다. 화장실에 갔는데 다행인지 생리도 안 터지고 불안하게 나오는 것도 없었다. AU버스는 화장실도 없는데, 장거리 버스가 걱정이었다.
화장실 갔다가 돌아오니 할머니 한분은 벌써 탑승구 쪽으로 나가계셨고 한분은 내 부탁으로 인해 못 가시고 내 가방 앞에 서 계셨다. 후다닥 가서 고맙다고 하니 너의 버스도 아마 곧 올 거야 하면서 나갈 준비를 해야 될 거라고 알려주셨다.
감사하다 하고 가방 정비하고 메는데 그분이 다시 오셔서 "내가 물어봤는데 와하까 가는 것도 지금 온대 조심히 가~" 하고 다시 알려주셨다. 가방 봐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버스 들어오는 것까지 확인해 주시다니, 되게 따뜻한 경험이었다.
10시 10분쯤 버스는 들어왔는데 짐을 실어줄 생각을 안 한다. 멕시코 버스는 짐 싣을때 택을 붙이고 그거랑 맞는 회수권을 제출해야 짐을 돌려주기 때문에 짐 실어주는 직원이 따로 있는데 한꺼번에 여러버스가 와서 그 직원들이 바쁜 거 같았다. 근데 그럼 애초에 근무 배치를 잘못한 거 아닌가..
뭐 할튼,, 10:20 출발인데 20분에 짐 실어주러 온 직원. 그래도 아무렇게나 넣고 도난 가능성 있기 vs 기다렸다가 조금이나마의 안전장치 하기 라면 무조건 후자니 불평은 넣어두었다.
이번에는 버스버드 어플에서 좌석 예매를 안 해서 1번에 앉게 됐다. AU버스는 ADO버스 중에 저가형으로 나온 버스들인데 내가 1번 자리라 그런지 충전 코드도 안보였고 자리도 좁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나라 좌석버스랑 우등 버스 사이? 못 탈 정도는 아니었는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옆자리 언니가 엄청 글래머러스해서 그녀의 엉덩이가 내 자리까지 넘어오는 거였다. 내가 최대한 왼쪽으로 붙을수록 더 넘어오길래 그냥 그 언니랑 허벅지 맞대고 8시간을 갔다. Au는 냉방도 그다지 많이 안 해줘서 약간 더웠는데 땀 차서 힘들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2번 쉴 때도 언니가 너무 곤히 자서 깨울 수도 없었다. 휴게소에서 열심히 몸을 푸는 기사님 말고는 모두 졸음에 빠진 모습들, 시간이 길지 않아서인지 야간 8시간 운전을 한 명의 기사가 전담했는데 너무 피곤해 보였다. 걱정되긴 했지만 달리 방법도 없어 나도 애써 자다 보니 아침 6시쯤 와하까 시내 들어오기 전 정류소에서 한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도 내리다가 이상해서 보니까 여기가 아니었다) 6시 반쯤 마지막으로 와하카 시내에 도착한다.
와하카 AU버스는 ADO랑 다른 정류장을 쓴다. 블로그랑 카페 후기에서 AU버스 터미널이 우범지역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때도 밝았지만 더 유동인구가 많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또 숙소 리셉션 직원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 7시 반쯤 가자 싶었다. 다행히 터미널엔 의자가 있었고, 야외여서 답답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꽤 있어서 기다리지 못할 환경도 아니었다. (와이파이는 없음)
해는 밝게 뜨고 멀리서 택시 아저씨들의 호객 소리가 들라고 나는 어제의 일기 쓰며 와하카의 아침이 활기차지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