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체드라위, 아마존 주문하기, 카메라 파는 곳
2025_6/17
산크리스토발에서 매번 10시에 일어나던 이유가 있었다. 어제오늘 스페인어 수업 때문에 아침 7시에 눈을 뜨려니 너무 추웠다. 어제는 추워서 샤워도 안 하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갔던 터라 오늘은 샤워를 꺠끗히하고 길을 나섰다. 도착해서 복습한 종이를 잠깐 보고 있으니 소피아가 왔다.
오늘은 식사, 요일, 월, 숫자를 배웠다. 멕시코의 음식 중에 뭘 좋아하냐고 물어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곰곰이 떠올려봤다. 타코는 멕시코시티에서 매일 먹으니 좀 질렸었고, 족발 토르타스는 정말 맛있었고, 소파 아즈테까가 참 맛있었다.
신기했던 건 멕시코 사람들은 점심을 2시-5시 사이에 보통 먹는다고 한다. 아침에 거하게 먹기 때문에 아침 식사 메뉴와 거의 비슷하게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은 8시 이후에 보통 먹는데 점심을 늦게 먹기 때문에 외식하는 날이 아니면 대부분 간단하게 먹는다고 한다. 소피아는 커피나 차 한잔, 그리고 비스킷 종류나 케이크 한 조각 이런 걸 저녁으로 먹는다고. 나라마다 밥 먹는 문화나 시간조차 다른 게 새삼스레 신기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어쩐지 내가 어제 5시에 밥을 시작할 땐 조용하던 주방이 내가 밥을 다 먹고 설거지하려고 하니 분주해진 거 같기도 하고..?
그동안 정말 필요했지만 미루던 숫자 공부도 오늘 소피아랑 같이 하니까 좀 귀에 들어오는 거 같았다. 이제 꾸안또 꾸에스따?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당당하게 계산할 수 있을까. 숫자는 어렵지만 제일 정복하고 싶은 부분이다. 오늘도 10시 10분쯤 10분가량 쉬는 시간을 가지고 11시까지 꽉 채워서 수업을 했다. 내일 숫자로 관련된 대화들을 복습 삼아할 거니까 공부해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와서 오늘은 집에서 밥 해 먹는 것도 좋지만 소파 아즈떼까를 다시 먹으러 가고 싶었다. 쌀쌀하기도 했고, 아까 수업하는 동안 먹을 것들 사진을 보고 얘기했더니 멕시코 음식도 오랜만에 먹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윌리네로 가는 길 비가 조금씩 내렸다. 아까 수업할 때 갑작스레 폭우가 내렸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이런 식으로 비가 올랑말랑 할 예정인가 보다.
윌리네는 오늘도 사람이 많았다. 아까 선생님이 식당 몇 군데를 추천해 주면서 윌리네를 추천해 줘서 진짜 현지인 맛집이구나 싶긴 했다. 소피아가 닭고기 엠빠나다를 꼭 먹으라고 해서 고민하다가 (메뉴 두 개를 해치울 수 있을지..) 결국 소파 아즈떼까만 주문 했다. 처음 먹은 날도 맛있었지만 오늘도 맛있다. 중간에 도리토스 같이 생긴 것도(칠라킬레라고 한다) 계속 추가하며 먹었더니 충분히 배가 불렀다.
윌리네 식당을 오는 길에 3페소 샵이 있길래 뭔가 싶어서 가봤는데 칫솔, 비누, 빨래집게, 학용품, 파티용품, 화장품 등등 안 파는 거 빼고 다 파는 잡화점이었다. 이런 곳을 구경하는 건 꽤나 재밌다. 혼자 다이소에 가서 구경하느라 한 시간씩 보내는 거처럼 구경을 한참 하다가 반찬통을 하나 샀다. 산크리스토발에서 쌀 씻고 접시 엎어두고, 밥 해두고 접시 엎어두고 이런 게 좀 위생적이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서 겸사겸사 샀다.
도시락 통을 산 김에 토요일에 20시간 버스를 탈 때 볶음밥을 해서 타는 건 어떨까! 하는 엄청난 아이디어도 생각해 봄. ADO에 밥 볶아 들고 타는 건 손에 꼽히지 않을까?
도시락 통을 40페소에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고프로를 살리려고 노력을 해봤다. 역시나.. 역시나 되지 않는다. 날씨는 안 좋지만 날씨가 안 좋다고 여행이 멈추는 것도 아니니까 체드라위에 가보기로 했다. 어제 찾아본 바에 의하면 고프로를 파는 상점도 있어서 뭔가 그들은 해결 방법을 나보다는 잘 알 수도 있으니까.
체드라위는 월마트보다는 시내에서 가까워 걸어서 30분 거리다. 산크리스토발 센트럴 외곽으로 걸어가 보는 건 처음인데 여기는 중심가를 벗어나도 그렇게 위험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있는 성당도 한번 들어가 주고, (누군가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 노래도 들으면서 산책 삼아 걸어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다 말다 반복했다. 가는 길에 엄청 큰 나무가 쓰러져 있는 걸 봤다. 아무래도 번개에 맞은 걸까..
그렇게 30분을 걸어 체드라위 도착. 30분은 그렇게 먼 길이 아니다. 더군다나 날씨가 덥지만 않다면.
체드라위에 안에 어제 찾아본 라디오 샥이라는 전자제품 판매점을 먼저 찾아갔는데 고프로를 7000페소 대에 팔고 있었다. 50만 원이나 쓸 생각은 없는데.. 그거 말고 다른 옵션은 없단다. 내가 고프로를 고칠 방법을 혹시 아냐고 하니까 모른다고 절레절레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살짝 짜증이 난다.
결국 고프로를 고치거나 사는 건 포기하고 체드라위 쇼핑을 구경을 나섰다. 여기는 진라면 컵라면이랑 신라면 밖에 없다. 초밥용 쌀도 무지 비싸다. (아참. 여기는 한국 김이 있더라. 고민하다 가방에서 다 부서질 거 같아서 사지 않았다.) 그래도 고기는 싸서 300그람 60페소에 소고기를 사고, 일본라면 2 봉지, 즉석밥도 있길래 비상용으로 4개를. 샀다.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혹시나 입구 쪽 전자 판매점에도 액션 카메라 파냐고 하니까 자기들은 카메라는 안 판다고.. 이상한 게 여기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 가격보다 카메라가 더 비싸다. 사치품이라고 느껴서 그런 걸까?
나오니 비가 한바탕 왔는지 온 동네가 촉촉한 느낌이다. 내가 체드라위 들어가기 전에도 풀을 뜯고 노닐던 소들은 아직도 풀을 뜯고 있었다. 비가 살짝 왔다 안 왔다 하는 거리를 다시 되돌아가는 길, 가는 길에 정말 갑자기! 갑자기 고프로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는 뭔가 상점이라기엔 귀금속, 티비, 세탁기, 카메리, 오디오, 아이패드 이런 식이라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구글맵을 보니 전당포였다. 고프로 11이 4100페소. 가격은 이제까지 본 옵션 중에 가장 합리적인데 문제는 전당포에 맡긴 물건을 사는 거다 보니 충전하는 어댑터나 여분 배터리가 없었고 얼마나 사용한 상태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좀 고민을 해본다고 하고 숙소로 복귀. 일단은 장 봐온 걸 정리하고 일단은 밥을 해 먹기로 했다.
원래 오늘 저녁은 식은 밥 조금이랑 라면을 끓여 말아먹으려고 했는데, 마트에서 질 좋은 고기를 만나서 오늘은 고기를 꼭 먹어야겠다. 밥을 새로 하고 (오늘도 밥은 완벽하고 맛있게 잘 됐다. 이제 밥은 쉽다!) 고기를 구웠다. 300그람이라서 오늘내일 나눠먹으려고 했는데 굽다 보니 왠지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단 자신감이 생겨 다 구웠다.
_내가 밥을 하고 고기를 굽는 동안 수잔은 개인 전기포트에 라면을 끓였다. 수잔은 참 독특하고 또 멋진 사람이다. 그리고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몰라 소통은 안되지만 어제 내가 식탁에서 노트북 투닥거릴 때 내 옆에서 정말 행복하게 식사를 만끽하시던 아저씨가 오늘은 반죽을 막 하고 있었다. 자기는 빵을 만들 거라고. 반죽을 다하고는 따뜻하게 둬야 한다며 내 냄비밥 옆에 비닐을 씌워 발효를 시켜두었다.
식사를 시작하니 벌써 고기가 조금 식어 좀 질겨졌다. 이대로면 내일 먹어봤자 그렇게 맛없을 거 같아서 그냥 맛있는 상태인 지금 다 먹기로 했다. 다행히 고기를 안 먹은 지 오래돼서 잘 먹을 수 있었다. 밥이랑 고기 단순했지만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특히 고기 300그람이면 엄청 넉넉한 양이라 정말 든든하게 먹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까 빵 반죽을 한 아저씨가 빵을 구워와서 하나 먹으라고 준 것까지 먹었다. 안에 볶은 양파가 들어가 있어서 엄청 맛있었다! 그나저나 빵을 반죽해 굽다니,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밥을 하는 것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느껴질까? 그건 아닌 거 같았지만, 누군가가 만드는 과정을 보고 바로 먹는 건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었다.
밥을 다 먹고 노트북을 켜고 액션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영상을 어디 만들어 올리는 것도 아니라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그때 영상으로 기록해 둘 걸'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아마존에서 이번 주까지 배달을 받을 수 있는 옵션들이 있었다. 그중 오즈모 액션 4 어드벤처 패키지가 한국에 비해 거의 20만 원 저렴하고 토요일까지 도착 보장이라고 했다.
다른 옵션도 알아보면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 아마존에서 오즈모 액션캠을 사기로 결정하고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숙소 스태프에게 부탁해서 전화번호를 빌리고 주소 확인도 부탁했다. 그렇게 결제까지 잘 갔는데.. 근데 아마존 계정이 갑자기 잠기면서 결제가 거절되는 사태가.. 신분증 인증, 카드 인증 등등을 해도 안 돼서 결국 새로 계정을 또 만들고 어찌어찌 결제에 성공했다. 결제 성공과 동시에 새로 만든 계정 또한 잠겨서 무사히 올진 모르겠지만..
뭐 하나를 고르더라고 치열하게 고민했고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마무리.. 하려는데 아직 스페인어 복습도 안 했다. 뒤늦게 10시부터 스페인어 복습을 시작했다.
왠지 오늘 하루 종일 한 거라곤 고민과 스트레스받기의 반복이었던 거 같지만.. 어쨌든 카메라 찾아 삼만리 나섰다가 맛있는 소고기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그러면서 오랜만에 멕시코 음식이 먹고 싶어져 외식을 했고 반찬통이 생겼고, 폭우가 내릴 땐 적절히 안으로 잘 대피해 있었고. 고민의 결론도 좋게 났다. 크게 하는 것 없이 진이 쭉 빠져버렸지만 좋게 생각하려면 뭐든 좋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실수하고 수습하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그야말로 일상적인 여행의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