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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Day27.플라야 델 카르멘 바다는 아름답지 않다

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플라야 델 카르멘, 조각 피자, 치킨, 바다

by SUNPEACE

2025_6/23


어제 낮 2시쯤, 무려 20시간짜리 버스를 타고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버스에서 해가 지고, 새벽이 오고, 비가 내리더니 그치고, 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피곤한 상태로 여정은 계속되었다. 옆 자리 아저씨가 메디나에서 내린 뒤로 좀 편해졌지만 그래도 허리가 찌뿌둥허니 아팠다. 풍경은 점점 마을을 향하는 듯 바뀌어가고 직감적으로 그 마을이 플라야 델 카르멘이라고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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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야 델 카르멘 터미널은 작았다. 나가는 출구도 자그마했다. 길을 나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 13분. 그 길이 너무 더워 중간에 한번 쉬었다. occ버스가 추워서 맨투맨에 긴 바지를 입었는데 그게 축축이 젖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는데 직원이 없어 입구에 앉아서 늘어지게 앉았다. 그렇게 불량한 자세로 앉아있는데 어떤 수염 난 남자가 와서 "오~ 미안 ~" 하며 말을 걸었다. "네가 리! 맞지? 내가 니 방 확인 해볼게" 하며 다시 올라갔다. (리셉션 직원 친구는 ‘리’가 중국의 성이라고 생각해서 니하오라고 인사했다. 중국의 리 씨들이 많이 왔었다고.) 뭔가 이제까지 멕시코에서 겪었던 조용조용한 무드와 달리 되게 활달한 느낌의 리셉션 스태프였다.


내려와서는 체크인은 3시에 될 거 같다고 "짐은 러기지 룸에 넣어줄까?" 물어봤다. 러기지룸은 해리포터 방 같은 창고였다. 거기에 짐을 넣어두고 리셉션 앞 의자에 앉아있으니 "옥상 혹시 좋아하면 가봐! 거긴 와이파이 비밀번호 다른 거야~" 하며 알려줘서 얼른 올라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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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상으로 좋은 루프탑. 수영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수영장은 아니지만 수영장이 있고, 옥상이 있다는 것 만으로 좋았다. 게다가 와이파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피로한 와중에도 그늘, 바람, 와이파이 덕에 시간이 잘 가고 입맛도 없어서 옥상에서의 시간은 잘만 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2시가 넘은 시간, 시간을 보니 배가 고픈 거 같기도 해서 그제야 밥을 먹으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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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zza Renzo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어 찾아보니 조각 피자 파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피자 한 조각에 30페소, 음료도 30페소 총 90페소를 냈다. 나는 식당에서 음료 주문을 거의 안 하는 편인데 여기는 너무 더워서 할 수밖에 없었다. 관광지라서 산크리스토발에 비하면 물가가 비싸졌지만 버섯인 줄 알고 시킨 피자가 뭔 나물 같은 피자여서 맛있었다. 다만 치즈 냄새가 콤콤한 치즈라 한국인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듯했다. 페퍼로니는 엄청 짰다.


그나마 먹는 공간은 시원했는데 다시 나와도 떙볕. 너무 덥다. 얼른 가서 씻고 싶었다. 다행히 밥을 먹고 나니 체크인 시간 3시가 지나 있어서 피자 집이 숙소에서 5분 거리라 얼른 와서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했다. 그런데 여기 숙소는 8시부터 8시까지만 에어컨을 켜주는 곳이라 결국 또다시 땀범벅이 되었다.




방으로 가는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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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깨끗하지만 4인+8인 도미토리룸이 사실상 한 방이고 화장실이 1개이다

에어컨을 안 틀어주는 방보다는 바람이 부는 옥상이 그나마 살만 해서 옥상으로 다시 올라갔다. 옥상에서 한참 놀다가 청소 및 관리 직원인 '쟐로'랑 인사를 나누었다. 쟐로는 멕시칸으로 영어를 거의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지만 어찌어찌 소통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됐던 건 산크리스토발에서 배운 짧은 스페인어들이었는데 그 정도만 해도 엄청 좋아해 줬다. 하긴 누군가 한국어를 서툴게나마 하려는 걸 보려면 나라도 좋아할 테니까.


그러다 해가 좀 가시고 산책 겸 먹을 걸 사러 나와서 바닷가로 가봤다. 나오기 전에 리셉션 직원에게 "여기서 맥주 먹어도 돼?" 하니까 "음.. 맥주인 걸 비밀로 하고 먹으면 돼!" 이랬다. 뭐 들어보니 원칙상 금지이지만 글라스나 머그컵에 따라 마시면 자기는 제재를 안 할 거다 이런 뜻인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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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까 무슨 인디언 분장을 하고 전통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어 두 분이 만나는 동상까지. 난해하지만 내가 플라야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본 멕시코 다운 풍경이랄까.. 왜냐하면 여기는 어딘가 뭐.. 대단한 휴양지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 해변에 가기 전에 기념품 샵 구경을 갔는데 페소 및 달러로 표기도 되어있고 기념품 마그넷이 100~180페소였다. 그걸 어떻게 사요.. 아무래도 칸쿤에서 여기까지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다 보니 덩달아 물가가 많이 오른 거 같았다.



게다가 바다는 정말 별로였다. 내가 여행하는 6월 말~7월은 멕시코 동부의 바다가 안 좋다는 걸 알고 왔기에 세노테로 일정을 다 채웠지만 알고 봐도 상태가 별로였다. 그런데도 몇몇은 수영을 하고 있었고, 바로 옆이 코즈멜로 가는 페리 터미널이었다(?) 물 진짜 안 좋을 듯.


그런 생각을 하며 플라야랑 나는 굳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세노테가 목적이니 세노테를 구경하고 마음의 판단을 내릴 일이지만 어쨌든 동네 자체는 잘 모르겠다. 덥고, 물가도 비싸고, 바다가 아름답지 않고. 어쩌면 너무 정들었던 산크리스토발을 뒤로한 채 온 것이라 괜스레 혼자 심술을 부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EL PECHUGÓN ROSTICERÍAS 치킨

오늘은 이동하느라 고생했으니 치맥 하는 날. 동네 치킨집에서 4분의 1마리를 포장하고 맥주 2캔을 사 왔다. 치킨 2마리 포장하는데 토르티아, 살사, 밥 조금까지 뭘 많이 챙겨준다.


나는 여기서 챙겨준 밥 말고 산크리토발에서 볶아온 밥이 남아있어서 그거랑 치킨을 먹었다. 같이 넣어준 감자 2알도 별미였다. (콤보에는 감자를 더 넣어주나 보다. 내 거에 감자 왕창 넣다가 주문받은 직원이 ‘콰드로 주문임’ 이러니까 와르르 덜어냈다.)


할튼 여러모로 맛있었는데 볶음밥 다 먹고 거기서 준 밥을 냉장고에 넣어 놓으려고 통에 옮기니까 쉰 냄새가 났다. 쌀 한두 알 집어먹으니 백 퍼센트 쉰 맛이었다. 플라야 델 카르멘의 식당 후기들을 보면 여기서 사 먹고 탈 났다는 식의 후기가 종종 있던데 이런 일 때문에 그런 거 같았다. 먹는 걸 조심해야 할 거 같은 더위이긴 하다.



그래도 여기도 우기라고 8시 다 돼가니까 비가 한 30분 폭우가 쏟아진다. 산크리스토발을 겪고 와서 이 정도는 귀엽지. 너무 더워서 차라리 와라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고 올라와서 낮에 샤워한 후에 또 땀을 흘린 몸을 한 번 더 씻고 싶어서 샤워를 했다. 그래도 8시가 넘어 방에 에어컨을 켜주니 살만하다. 멕시코 시티나 와하카, 과나후아토 등의 도시도 낮에는 더웠지만 아침저녁으론 괜찮았는데 동부 쪽은 너무 더워서 밤에도 에어컨 없이 자기는 힘들 거 같았다. 더위에 무척 취약한 나는 내일을 어떻게 날지, 또 남은 멕시코의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플라야 델 카르멘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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