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크리스탈리노 세노테, 플라야 델 카르멘 여행
2025_6/25
아침 8시가 되니 호스텔 직원이 와서 에어컨을 끄고 나갔다. 피곤했지만 2시간도 안 되어서 방에 열기가 올라 10시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고 보니 벌써 후덥지근하고 뭔가 허리랑 온몸이 뻐근했다. 오늘은 에덴 세노테를 갈려고 한 날인데 뭔가 귀찮고 몸도 안 좋고, 무엇보다 오늘도 물놀이를 다녀와서 수영복 빨고 뒷정리할 게 벌써 너무 귀찮았다.
옥상에 올라가서 날씨를 확인해 보니 해가 벌써부터 타오르듯이 끓고 있다. 아무래도 이 날씨라면 물놀이를 하긴 해야겠다. 어차피 숙소는 낮 시간 동안 찜통일 테니 달리 시간을 때울 곳도 없다. 그래도 괜스레 또 미적거리다 11시 반이 넘어서야 길을 나섰다. 뭔가 배도 고프고 머리도 아프고 찾는 식당마다 가격은 너무 비싸고.. 무엇보다 머리가 엄청 아팠는데 경험상 카페인 부족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산크리토발을 떠나고 제대로 커피 한 잔 못했으니 그럴만했다. 그래서 일단 스타벅스로 향했다.
플라야 델 카르멘 스타벅스는 스타벅슨데도 구글맵 평가가 정말 안 좋았는데 외관은 쇼핑단지 안에 있는 거라 아주 쾌적하고 좋았다. 스타벅스 직원도 아주 밝게 인사해 주고 좋다 생각하던 중,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가 84페소??? 무슨 소치 올림픽 끝난 모스크바 스타벅스 가격이다.
멕시코가 땅덩어리가 넓으니 주마다 건 지역마다 건 가격이 다른 모양인데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싸다는 후기를 알고 갔지만 그래도 84페소는 다소 충격적이다. 내가 사 먹은 비싼 스벅 손에 꼽힐 듯.. 그래도 어제부터 내내 머리가 아팠으니 약 사 먹는 심정으로 사 먹었다. 다행히 몇 모금 마시니 두통은 좀 가셨다.
12시 반까지 에어컨이 나오는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일부러 챙겨 온 텀블러에 남은 커피랑 얼음 털어 넣고 터미널로 향했다. 고민을 하다 오늘은 에덴 세노테 말고 크리스탈리노 세노테에 가기로 했다. 에덴 세노테는 스쿠버 다이빙도 하는 만큼 규모도 크고 수심도 깊은 편이라 들었는데, 크리스탈리노는 어제 갔던 아줄이랑 규모가 비슷해 보여서 가볍게 다녀오기로 한 거였다.
어제 다녀왔으니 오늘은 익숙한 콜렉티보 정류장 가는 길, 해가 너무 뜨거워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얼굴이나 손이나 전부 심하게 탈 거 같았다. 바람막이로 손등을 가려보았지만,, 소용이 있을까?
콜렉티보 정류장에 도착해서 제일 첫 번째 가게에서 소고기 토르타스를 포장했다. 받아 들고 툴룸행 콜렉티보 쪽으로 가니 어제보다는 사람이 적고 오늘은 어떤 아저씨가 안내를 해준다. 운이 좋게 막 출발하려던 콜렉티보 1자리가 남아서 혼자 온사람을 찾길래 냉큼 올라탔다.
피곤해서일까, 멀미가 나서 혼났다. 게다가 가방에서 은근슬쩍 나는 음식 냄새도 한 몫했다. 그래도 애써 풍경으로 눈을 돌리며 크리스탈리노에 무사히 도착 (탑승할 때 콜렉티보 앞에서 인원 정리하는 사람이 어디 가냐 물어보고, 그 사람이 내가 탈 때 “얜 크리스탈리노 감~~!”이런 식으로 기사에게 알려준다. 그래서 난 도착한 줄 몰랐는데 너 내려야 한다고 기사님이 알려주셨다. 가격은 오늘도 40페소.
크리스탈 세노테는 아줄 보다 체계적인 느낌이다. 무슨 공지 같은 거 읽고 (물고기 낚시 금지, 먹이 금지, 알코올 금지, 세노테 내 음식 금지-벤치에서는 괜찮음 등등) 공지를 확인했음에 서명을 한다. 그리고 여기는 구명조끼를 무료로 대여해 주는데 구명조끼를 대여하지 않은 사고에 대한 서명 같은 것도 받는 듯했다. 입장료는 올해 4월에 올라서 300페소. 역시나 샤워를 하고 들어가라고 알려준다.
옷을 갈아입고 물 샤워하고 들어가니 아줄 세노테보다도 얼마 안 걸어 들어가서 세노테가 나타난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자그마하고 어제보다 파랗다!
일단은 모든 물건을 가방에 넣고 잠그고 물 탐방을 나섰다. 들어가 보니 나무 뒤쪽으로 동굴도 이어지고 규모가 크고 수심도 아줄보다 깊었다. 물고기도 훨씬 많았고 색깔이 진짜 예뻤고 맹그로브 나무들이 물에 걸쳐있는 모습들이 멋졌다.
1차 탐방을 하고 열이 좀 식어서 걸어서 구석구석 돌아봤다. 다이빙하러 가는 길, 동굴 탐방하는 입구, 그냥 작은 세노테 등등 첫인상에 비해 규모가 컸다!
일단 한바탕 물에 몸을 담근 뒤라 열이 좀 식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포장해 온 토르타스를 먹었다. 역시나 맛있다. 나의 음식 지론엔 가격도 포함된다. 비싼 값을 주면 맛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저렴하게 맛을 보는데도 맛이 있다면 만족감이 배가 된다.
내가 빵을 먹기 시작하니 옆에 자리 잡고 있던 가족들도 갑자기 식사를 준비한다. 그들은 대 가족이 온지라 빵을 나이프로 썰고 치즈 조각이랑 햄 조각을 넣고 할라피뇨랑 소스는 각자 퍼먹도록 뚜껑을 열어둔다. 내가 신기해서 쳐다보니 "너도 하나 만들어줄까?" 하는데 괜찮다고 했다. 먹는 동안 이구아나들과 새들도 많이 왔다 갔다.
밥 다 먹고 싸 온 커피를 한입. 역시 텀블러에 챙겨 오길 잘했다. 아까의 커피가 그냥 두통 해소제 정도였다면 이런 풍경을 보면서 마시는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그늘에 앉아 좀 쉬다 보니 추워질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추워지면 다시 물에 못 들어가니까 얼른 장비를 챙겨 물속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아줄 세노테에 비해 물고기가 훨씬 많았고 수심이 깊고 그 가운데에 맹그로브 나무가 있으니 그냥 통으로 되어있는 세노테 보다 더 구조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은 느낌이었다. 제일 좋았던 건 수심 얕은 구역에서 수심 깊은 구역으로 가는 맹그로브 나무 터널. 물 속도 아름답고 구명조끼 입은 채 얼굴 내놓고 풍경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동굴 쪽은 처음에 무서웠는데 어떤 모녀가 슝 들어가는 걸 보고 따라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깊은 바닥에 누군가가 낙서도 해두었고, 뭔가 동굴 속 물은 더러울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해가 안 드니 물 자체의 파란빛이 오묘하고 아름답게 색을 발해서 너무 예뻤고 물고기도 많았다.
동굴 탐방까지 하며 2차 물놀이를 끝내고 나와서 또 휴식, 커피도 마시고 혼자 놀다 보니 3시 반이 넘었다. 그쯤 그늘이 지고 천둥소리가 나는 게 날씨가 심상치 않아 질 기운이다. 얼른 3차 탐방에 나섰다. 이번엔 카메라도 두고 유유자적 물놀이를 즐겼다. 사람들도 날씨의 낌새를 묘하다고 느꼈는지 대부분 마지막 입수 후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마지막으로 한 바퀴를 돌고 나와보니 4시 15분쯤이었다.
어차피 돌아가서 샤워를 해야 하기에 그냥 물을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탈의실이 있는 건 좋았는데 어디 걸어둘 곳이나 선반도 하나 없어서 혼자 여행 온 나는 옷 갈아입는 게 꽤 힘들었다. 세노테를 나오자 바람도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근데 있어보니 플라야는 산크리스토발 마냥 냅다 갑자기 폭우가 내리고 그러진 않더라..)
돌아오는 길도 운이 좋았던 게 콜렉티보가 서있길래 냅다 문을 열었는데 만석이었다. 머쓱해하며 다시 닫으려는데 앉아있던 아저씨가 "나 곧 내릴 거니까 여기 앉거라" 해서 "아냐 다음 거 탈게" 하니까 "괜찮아 앉아" 해서 냉큼 앉았다. 그래서 하나도 안 기다리고 바로 출발, 한 1-20분은 기다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운이 좋았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 내려서는 체드라위에 가봤다. 근데 사실 이쯤부터 마음이 너무 급했다. 갑자기 허리랑 아랫배 쪽 통증이 오는데 익숙한 통증이었다. 이건 생리통이다.. 하고 느꼈다. 얼른 계란이랑 고기를 사고 돌아오는 길.. 10분의 거리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찐찐 로컬 과일 판매점에서 토마토 파는 걸 발견해서 토마토 3개를 샀다. 역시나 저울에 달아주셨는데 처음에 20페소라고 했다가 20페소를 주니 잠깐만 하고 다시 달아보고 10페소라고 하셨다. 다른 청과물 용량으로 되어있었나 보다. 솔직히 20페소 받아도 난 몰랐을 일이고 잘 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사했다. 나는 멕시코에 와서 상인들에게 덤터기 쓰이거나 거스름돈을 덜 받는 일은 한 번도 겪지 못한 거 같다.
여하튼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역시 생리가 터졌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어차피 내일 세노테 탐방은 글렀다 싶어서 꼼꼼히 빨래를 하고 샤워도 마쳤다. 여전히 날이 더워서 샤워하고 나왔는데도 땀이 나려고 했다.
옥상에서 바람을 쐬는데 모기가.. 어제 그제 모기에 엄청 뜯겨서 온 다리가 가려운데 다리가 더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그래도 더운 방에 처박혀있기 싫어서 모기를 쫓으며 8시 다될 때까지 있었다. 여기 스태프인 얄로가 내가 좀 오래 앉아있으니 심심해 보였는지 자전거 타고 싶으면 타라고 자기 거라고 빌려준다 했다. 생리 중에 자전거..?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 그냥 피곤하다고 고맙다고만 했다.
8시가 다 돼 갈 때쯤 내려와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색은 좀 창백하지만 맛은 있었다. 다만 리소토 밥(우리나라 즉석밥 마냥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거)이 너무 맛이 없었다. 역시 햇반의 기술은 아직 전파되지 않았나 보다. 일단 밥이 엄청 딱딱해졌고, 간이 되어있어서 너무 짰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고기의 간을 좀 덜할걸.
그래도 배를 채우고 방으로 올라갔다. 에어컨은 정말 대단한 전자제품이다. 하루 종일 우울하고 찝찝하고 힘들었는데 에어컨 바람을 쐬니 좀 살 거 같았다.
혼돈스럽고 덥고, 내일도 세노테를 가기로 예정했었는데 못 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어제오늘 세노테를 다녀왔다는 거였다. 남은 플라야의 시간과 체투말까지는 잘 쉬고 나면 키코커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정과는 다르게 흘러가지만 언제 뭐 여행이 늘 마음대로 흘러가던가. 그래도 항상 매번 즐거웠고 의미가 있으니 내일은 또 어떤 의미를 찾아볼지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