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담배를 피우는 시간의 은밀함, 내밀함을 알게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담배 냄새를 정말 싫어했다.
어릴 때는 냄새만 싫어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돼서 여성들에게 유리한 업종에 여성 친화적인 기업을 다니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특히 남성들이 흡연장에서 나누는 대화와 사교의 시간?(이라 부르고 자기들끼리의 정보 교환 같은)들로 은근히 사내에서 경쟁하는 여성들을 배제시키는 것들을 보면서부터는 더 흡연을 혐오하게 된 것 같다.
다행히 대학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이자 지금의 남편은 나에게 담배 냄새를 피우지 않기 위해 항상 왼손으로만 담배를 피우고 손을 자주 씻었고, 결혼 후 첫 아이가 생긴 그 시점부터 금연을 시작해서 무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도 다시 피우고 있지만.
그랬던 내가 흡연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어떤 심리로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로나로 방안에 격리되어 무료하던 차에 남편 차의 블랙박스에 녹음된 남편과 그 여자, 그러니까 남편의 불륜상대이자 내 지인과의 대화를 우연히 떠올리면서였다.
블랙박스 음성에서 그 여자는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마구 쏟아냈고 얘기를 다 들은 남편은 조수석 창문을 열어주며 시원하게 담배나 한 대 피고 잊으라고 했다.
방안에 갇혀 핸드폰을 보는 것도 슬슬 지겨울 무렵 창밖을 내다보다 갑자기 그 대화가 생각났다.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풀리나?
담배를 왜 피우는 거지?
나도 담배나 피워볼까?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연애 10년 차가 되는 해 결혼했던 나와 남편은 어느덧 결혼 20년이 되어가고 있었고, 어느 날 밤 불현듯 떠오른 안 좋은 예감은 영화나 드라마 언제나 그렇듯 틀린 법이 없었다. 자고 있는 남편의 핸드폰은 잠겨 있었고, 불안한 예감은 내 안에서 점점 커져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라 도저히 이걸 해결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없을 것 같던 찰나, 차량 블랙박스가 생각났다. 차에서 메모리카드를 빼와 노트북에 끼워 넣고 하나씩 파일을 열어보았다. 내가 알아차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남편은 블랙박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지 최근 며칠의 행적과 대화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밤을 꼬박 지새운 나는 엉엉 울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서럽고 슬픈 아침을 맞이했다.
그 이후 폭풍 같은 한 달을 보내고 코로나에 걸렸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격리중일 때는 남편의 담배를 피웠다.
남편의 외제 담배는 매캐하고 독했다. 순간 머리가 어질 하고 목이 아팠지만, 오기로 계속 피우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시원하게 한 대 피라고 말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편이 눈치채거나 말거나 남편의 담배를 피우던 격리 기간이 끝나고 마지막 날 PCR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편의점부터 들렸다. 담배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편의점 카운터 앞에 서서 직원의 등뒤에 진열된 엄청난 종류의 담배를 보며 뭘 사야 하는지 몰라 버벅거리다 정말 아무거나 사들고 나와서 PCR검사장으로 향했다. 차를 세우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 깊게 한 모금 들이킨 순간 내가 잘못 샀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얇고 긴 모양의, 여자들이 많이 핀다고 생각했던 국산 담배는 남편의 것보다 훨씬 매캐하고 독했다. 바로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이것저것 알아본 후 곧바로 새 담배를 사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담배만 피우고 있다. 캡슐을 터트리면 담배 냄새가 덜 난다고 하는 그 담배는 다양한 과일향 담배보다 훨씬 좋았다.
담배의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고 기대이상이었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시간에 피우는 담배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이나마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집에서도 괴롭지만 마침 회사 생활도 매우 괴롭던 시기라, 점심시간과 오후 쉬는 시간에 피우는 담배는 괴로운 마음을 달래는 데 제법 효과적이었다. 아직은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중년의 여성 흡연자로서는 너무 사람이 많은 대로변보다는 대형 오피스 건물 사이의 주차장이나 골목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이제는 다행히 한 곳에 정착했다. 물론 대부분의 흡연자가 남성이고 젊은 여성들도 많긴 하지만, 중년 여성 흡연자는 아마도 내가 유일하다는 점이 여전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가 아니라서 흡연 환경이 매우 좋다. 게다가 출퇴근을 차로 하니, 운전하면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 하루에 반 갑은 넘는 것 같고 두 갑으로 삼일은 부족하다. 한 손으로 담배를 끄는 스킬은 습득하지 못했지만, 냄새의 흔적을 없애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이 정도면 아주 빠르게 중독자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행히 아주 친한 친구를 포함해서 여성 흡연자 지인이 여럿 있어 그들과 만날 때 같이 담배를 피우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나의 계기를 모르는 그들은 대부분 만류했지만, 난 오히려 중년에 새로 생긴 취미라고 말하며 당분간 끊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담배를 피운 지 1년, 빌어먹게도 나는 알게 됐다.
오랜 시간 흡연으로 일상을 보내온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 잘 못 느낄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담배를 같이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는 뭔가 내밀한 분위기가 있다. 분명히 있다.
회의실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일행이 많은 자리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이 정보가 되고 그들만의 은밀한 네트워크가 된다.
남편과 그 여자... 도 그랬다.
지인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중간에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일어설 때 같이 나서는 남편을 볼 때도 나는 남편이 다시 흡연을 시작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 같이 담배를 피우던 나의 지인이자 남편의 지인들 모두 남편의 편에 서서 내가 그의 흡연 사실을 모르고 있도록 내버려 두었고 같이 감춰주었다.
그 지인들 중에 그 여자도 하나였고...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지인들 중에 부인에게는 담배를 안 피우는 것처럼 연기하는 남편(모두가 지인이다...ㅎㅎ)이 있고 모두가 함께하는 술자리 중간에 그 남편과도 같이 담배를 피우지만,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그의 부인에게 남편이 당신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그 부부의 문제니까. 아마도 당시 남편과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50을 앞둔 나이에 흡연을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몇 년은 내 폐는 쌩쌩할 것이고, 부엌에서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니 폐암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커피를 잘 사마시지도 않는데 담배값이 들어가는 건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회사도 남편도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한은 흡연은 계속될 것 같다.
덧)
담배 피우는 여성의 이미지를 찾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유튜브 섬네일부터 하나같이 부정적인 시선이 깃든... 말레나의 모니카 벨루치 사진은 정말이지 그녀니까... 예쁘니까... 올린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