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매일 저녁 늦은 밤 아들의 밥을 차려준다.
독서실이나 학원을 다녀오면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지만, 친구들과 같이 먹는 경우가 아니면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않는 아들은 삼각김밥이나 음료수로 대충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집에 오면 꼭 식사를 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들에게 집에 도착하기 5분 전에는 전화나 톡을 보내라고 얘기를 하는 것도, 오자마자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늦지 않게 밥을 차려주기 위해서다.
어릴 때는 나물이며 청국장 등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던 아들은 청소년기를 겪으며 편식이 심해졌다. 한 번은 그 이유를 물으니, 중학교 때 급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실제로 너무 맛이 없고 부실하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에 중학교 3년 때부터 변화가 생겼다는데,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아이는 너무 매운 거나 채소를 잘 안 먹는 것, 그리고 달게 먹는 것을 좋아하고, 버터나 밀가루가 많이 든 음식을 즐기지 않고, 한 때 입에 달고 살던 콜라가 여드름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탄산수에 오미자청이나 딸기청, 냉동 블루베리를 넣어 달달하게 마시는 걸 좋아한다.
매운 음식을 잘 안 먹는 이유는 장이 예민해서이고, 어릴 때 아토피가 있었던 경험이 있어 지금도 버터는 즐기지 않지만 스테이크나 전복을 구울 때 들어가는 버터는 예외다. 밀가루 또한 여드름에 좋지 않다며 잘 먹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먹는 비빔면이나 어묵은 예외다. 일관성이 없달까...
고3이라 체력이 중요하기도 하고, 바쁜 엄마가 차려줄 수 있는 최고의 한 끼라는 생각에 아들의 늦은 저녁 밥상은 주로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려주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고기가 빠질 수 없다. 채소를 먹지 않으려 해서 억지로 김치나 나물을 같이 주지만, 이마저도 잘 안 먹으려 해서 가끔은 입에 넣어주기도 해서 지나가던 여동생이 보고 기함하기도 한다.
고3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다.
너무너무 어렵고 복잡한 입시정보는 회사 일만으로도 힘들어하는 나에게 먼 세상 이야기였고, 40대 후반이 되며 급 체력과 건강이 나빠진 데다 직장도 멀어 퇴근만으로도 진이 다 빠지는터라 둘째는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퇴근하고 오면 밥 먹고 눕기 바쁘다. 둘째 챙기는 건 미안하지만 이미 손을 놓고 있고, 조금 쉬다가 아들이 오면 저녁을 차려주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아들은 어묵(볶음보다는 국에 들어간 어묵)을 좋아하고, 샐러드를 좋아한다.
샐러드? 샐러드라고? 채소는 질색 아니었나?
스테이크를 구워주고 나서 '샐러드 먹어볼래?' 하고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돌아온 답은
'네, 저 샐러드 좋아해요. 그런데 엄마가 뿌려준 키위드레싱이 좀 별로던데... 그래도 먹을게요.'
아... 우리 아들이 샐러드를 좋아했구나...
얼른 샐러드용으로 작게 커팅돼서 판매하는 채소모둠을 작은 접시에 덜어 드레싱을 뿌려 주었다.
아들은 단단한 심지가 있던 양배추 조각을 빼고 여린 잎들은 모두 먹어주었다.
같이 끓여준 꼬치어묵은 고기에 손대기도 전에 네 개나 먹어치웠고, 밥이 부족해 햇반까지 데워주었는데도 모두 다 먹었다. 밤 11시가 다 돼 가는 시간에 이렇게 먹어도 되나 걱정스러울 만큼 잔뜩 먹은 아이는 맛있었다고 하며 거듭 고맙다고 했고, 다 먹은 후에는 길어진 손톱과 발톱을 다듬어 주었다.
분명 피곤한 일상인데... 감사한 일상이다.
날 선 말들을 주고받고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는 사춘기라고 해도 엇나가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춘기였는데, 내가 그걸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아이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만큼 그 당시의 나는 아이에게 가혹했고 무자비했다.
아들이 그 기억을 다 잊었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예쁜 말을 해주고 잠결에 안아주는 착한 아들이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아들과 더 다정하게 지내고 싶지만, 불행히도 내 성정은 여전히 맘에 들지 않으면 버럭 소리를 내고 돌아서기 일쑤고, 착한 아들은 방에 들어와 누워있는 나에게 다가와 달래준다. 나는 그 실랑이가 좋아서 일부러 맘에 없는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아들에게 엄마가 어떤 부분에서 서운하고 속상했는지를 얘기하고 서로 안아준다.
마치 어린이집 다니던 그 아기였던 시절처럼.
어제의 저녁 메뉴
밥, 생 로즈메리잎과 버터로 구운 스테이크, 꼬치어묵탕, 그린잎 샐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