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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Love

양귀자 <모순> 1

by 돌이

자기를 사랑하냐는 연인의 질문이 가장 난감했다. 나는 우선 사랑이 무엇인지 쌍방 간에 합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 뭔데?”

“사랑이 뭐긴. 서로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고, 입 맞추고 싶으면 사랑하는 거지.”

“그게 사랑이야? 그냥 자기 욕심 채우는 거 아니야?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 그 느낌을 받고 싶은 거 아니냐고.”


두 번째 질문을 던질 때쯤이면, 상대가 누구었든지 간에 질색하는 표정과 함께 대화는 끊겼다. 나이를 먹고, 책을 읽고, 머리에 든 게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일정한 모양을 갖춰갔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가 아니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우정, 호감, 배려, 동정, 등등. 내 사랑은 점점 고지식해져 갔다.


‘사랑은 나를 위한 게 아니야.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것이어야 해. 보고 싶은 것도,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입을 맞추고 싶은 것도 모두 상대방을 사랑해서가 아니야.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은 것일 뿐.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작자들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아우라 뒤에 숨어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취하려는 자들이야.’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들의 '사랑'을 믿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누군가가 내뱉었다면,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자가 친한 사람일 경우에는 일침을, 그렇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 나는 침묵을 택했다. 오랫동안 사랑이 무언인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규정짓기가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에는 커다란 틈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사랑이 이기적인 것임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했다. 동시에 난 긴 시간, 사랑이라는 단어를 잊었다.


며칠 전, 서점에 갔다. 베스트셀러 가판대에 나란히 놓여있는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었다. 가장 많이 팔린 책,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와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었다. 몇 달 전 십 수권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꽤 큰 금액을 결제했었다. 왠지 <모순>은 그때 샀던 기억이 있어, 집에 와서 책장을 훑었다. 역시나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여러 권의 책 틈사이에 양귀자의 <모순>이 끼어있었다.


펼쳐보니 단어나 분위기가 요즘의 것이 아니었다. 검색해 보니 1998년에 발표한 작품이었고, 요즘의 젊은 세대에 의해 소위 말하는 ‘역주행’한 책이었다. 그 지점에서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유행이라는 것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생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 양귀자의 <모순>은 진짜로 젊은 세대에 의해 선택되어 자연발생적으로 역주행한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의 어떤 점이 2000년대 생의 관심을 끌었을까.


이야기는 내게 전혀 자극적이거나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의 분위기는 소설 속 주인공인 안진진처럼 보통은 소극적이나, 가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던 중 나는 '관망'이라는 단어에 확 내리 꽂혔다.


“당분간은 관망, 이것이 내가 두 남자에게 정한 법칙이었다. 그러므로 누구 한 사람을 선택해서 미리 주말을 약속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비상 대책이긴 하지만, 운명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두고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참으로 소극적인 방법으로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질지 대응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발상은 참으로 기발하고 발칙하게 느껴졌다. 전혀 상반되는 두 명의 남자, 그 남자사이에서 치열하게 저울질하는 안진진. 그러나 두 남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동시에 안진진 자신도 치명적인 죄책감은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관망하는 태도로 상황을 지켜보고자 하는 ‘안진진’에게 이입이 되었다. 내 삶의 태도도 그녀와 비슷하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란 단어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로 '관망'이었다.


그녀가 '관망'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 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니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쌈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 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 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해 질 녘, 낮도 밤도 아닌 시간. 하늘이 푸른색도 어두운 색도 아닌 푸른색 바탕에 어둠이 점점 내리기 시작하는 그 시간. 중간 시간. 달콤하지도 쓰지도 않은, 쌉싸름한 냄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순간을 너무도 아름답게 묘사한 그 대사는 주인공 안진진의 아버지가 그녀의 가슴에 새겨둔 것이었다.


술주정뱅이에 가정폭력을 일삼으며, 아내가 번 돈을 수시로 갈취해 가는 아버지.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 이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일 년에 한 번 집에 들어왔던 아버지. 안진진의 나이 스무 살 이후로는 5년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은 그녀의 아버지를 그녀는 기다린다.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약속했다. 자신의 손크기와 안진진의 손 크기가 같아질 때쯤 손을 맞춰보고 비밀의 반쪽을 맞추기로. 그녀는 아버지와 손을 맞춰볼 그날을 은근히 기다린다.


안진진은 아버지와 손바닥을 맞대면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는 상실감. 그런 생각에서부터 시작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 존재 부정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과 그에 따른 현상들. 그리고, 사랑. 안진진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은 무슨 심리일까.


책은 심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서 끝내지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감정을 느끼게 한다. 문장은 지루하지만 울림이 있고, 담겨 있는 감정은 상투적이지만 매력적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해서 굳어버린 내 머리통을 두드린다.


'야, 인마. 네가 생각했던 사랑. 그렇게 굳게 믿어왔던 사랑. 그게 맞아?'


내가 생각했던 사랑이 고지식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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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0.365개의 글 중 66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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