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글을 올렸던 날이 생각난다. 2024년, 한 해 동안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끙끙 앓아대며 써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 시간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마침표를 찍지 못했고,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았던 것은 사실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내 안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이 일 년이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꾸준히 풀어나갈 수 있을 만큼 생각의 깊이가 얕다는 것을 깨닫고, 시작한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일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 한 뒤에는 미친 듯이 허기가 밀려왔다. 읽지 못했던 책을 읽었고, 미뤄왔던 영화를 몰아쳐 보았다. 이야기를 쓰는 데 에너지를 쓰느라 애쓰지 않았던 사념들이 떠올랐다. 그때, 조금 느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다면 더 깊이 있게, 끝까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2025년 1월 어느 날, 365개의 글을 써보겠다는, 철저히 이야기를 쓰기 위한 수단으로써 글을 써 내려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안타깝게도, 365개는 쓰지 못했다. 글을 업로드하지 않은 몇 달 동안, 많은 생각들이 나를 스쳐갔다. 가장 빈번하게 나를 관통했던 감정은 자괴감이다.
'나는 이야기만 쓰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365개의 1/5도 써내려 갈 힘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떠올리는 글을 올리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들, 모두 자기 합리화이다.'
하나, 하나, 나에겐 굉장히 아픈 속삭임들이다. 나를 무너뜨리고,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말들이다. 참 다행인 점들은 나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대응체계를 만들어 두었다는 점이다.
'야, 걱정 마. 뭔가가 다시 차올랐다는 기분이 들 때, 넌 결국 다시 쓸 거야.'
'네가 1년 동안, 365개의 글을 써 내려가겠다고 했지만, 조금, 아니 아니, 많이 늦어지면 어때. 결국 써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할 수 있다고.'
이곳에 글을 써 내려가면서 여러 사념들이 하나의 생각으로 자리 잡아갔다. 비옥한 토지에 내린 씨앗이 싹을 틔우듯, 고작 60개 밖에 안 되는 생각의 토양임에도 일종의 씨앗들이 싹을 틔웠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나는 어느 정도의 분량을 써 내려갈 수 있을지 '분수'를 조금씩 자각할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장의 신이 스쳐가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어느 한 장면이 스르륵,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 날 저녁이면, 노트북을 켜 떠오른 그 장면을 써 내려갔다.
이야기가 조금씩 자라는 동안, 이곳에 물 주는 일을 점점 까맣게 잊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여기가 메말라가니 이야기도 성장을 멈추었다. 토양을 잘 가꾸어야 싹을 틔운 씨앗이 잘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왜 잊고 있었을까.
참으로 비겁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가 써지지 않으니 다시 이곳을 기웃대는 것만 같아서. 그것이 정말 비겁한 일일까.
9월 한 달, 글도, 독서도, 영화도 모두 그만두었다. 난 참 게으르다. 그러나 참 다행이다. 그렇게 한 달을 게으르게 산 덕분에 오늘 다시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에. 모두 비워졌다. 다시 하나씩 채워나간다. 누가 강요하거나 압박한 일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먹고, 자리를 내어 생긴 공간이다. 그 공간에 다시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채워나갈 생각이다. 어쩌면 이번엔 67개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괜찮다. 쓰는 데까지 쓰다가 또 좀 쉬고, 다시쓰면 되니까.
2025.10.01 365개의 글 중 68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