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써야 하는가.
그렇다. 글을 쓰기 싫어서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생각 중이다.
"왜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붙잡고 아무것도 쓰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이 두 달이다. 수많은 책, 스승들은 그런 고민하지 말고 "일단 써."라고 말하는 데, 어쩌겠는가. 나는 그렇게 되질 않는다. 저 질문에 답이 서야, 내가 나 만의 답을 내릴 수 있어야 머리가 팽팽 돌고, 키보드가 두들겨지는 것을.
우연히 페이스북을 눈팅하다가 어떤 작가가 불특정 다수에게 날린 일침을 보았다.
내용인 즉, 이제 새롭게 글을 써보겠다는 사람들이 기성 작가들보다 글 쓰는 시간이 적으면, 어쩌겠다는 이야기인가. 기성작가들은 더욱 치열하게 본인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런 글이었다. 물론 글을 쓴 작가가 누군가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거나, 따끔한 일침으로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그 짧은 글을 읽는 순간, 내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쓰는가.", "쓰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하는가."
형편없다. 최근 몇 주간은 다른 일 때문이라는 이유로 핑계라도 댈 수 있겠지만, 2025년을 전체로 두고 보면 참으로 아쉬운 수준이다. 문제는 항상 머릿속으로 공상만 할 뿐이라는 점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정리해서 글로 써보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으면 유튜브부터 시작한다. 하기 싫은 일을 끊임없이 미룬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흐르고, 마지못해 30분, 1시간 남짓 끄적이다 피곤해서 자거나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이 행위를 해야 할 이유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누군가는 내가 글을 쓰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을 운동을 하는 데 투자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데 쓴다. 공부를 하기도 하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은 것일까.
주제를 살짝 바꿔서 러닝으로 가보자.
올해 나는 월에 200km를 달려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왜 굳이 200km일까. 그게 2024년을 보내고 2025년을 맞이하는 내 수준을 보았을 때, 목표로 삼기에 적절한 수치로 보였다. 2025년 1년 동안 단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다. 2월에는 192km를 달렸고, 8km가 부족했다. 8월에는 194km를 달렸고, 6km가 부족했다. 10월에는 딱 200km를 맞췄다. 200km를 달리기 위해 10월의 마지막 주에는 아침에 달리고 저녁에도 달렸다.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지만 일정에는 부담이 되었다. 가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분명히 무리한 목표였다. 하지만 10월에 기어코 달성했고, 이제 나에게 200km는 더 이상 크게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월 200km라는 목표 이전에도 여러 목표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쉬운 목표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항상 버겁고 달성하기 힘들어 보이는 목표들이었다. 그렇게 낮고 작은 목표들을 계단처럼 하나씩, 때로는 두 개, 세 개씩 밟고 올라섰다. 만약 내가 달리는 이유가 기록 향상이었다면,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을 것이다. 더 촘촘하고 세밀한 목표들을 설정하고 하나씩 밟아나갈 것이다. 그러나 월 200km 이상 달리려면 가정과 글쓰기, 직장 셋 중에 한 가지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럴 생각은 없다. 다만 확인하고 싶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면 나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글로 돌아온다. 달리면서 글 쓰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달리는 건 비교적 꾸준히 해왔는데, 글 쓰는 건 왜 안될까. 달리기는 목표한 대로 잘 달려지는 반면, 글쓰기는 뚜렷하게 손에 쥐어지는 성과가 없어서일까? 그저 나라는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키보드를 치는 것보다 운동화를 신고 길을 달리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인간 본성 자체가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머리 쓰는 것을 더 싫어하기 때문일까?
"나의 글쓰기가 뚜렷한 결과물을 단 한 번도 내지 못했고, 나는 운동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것은 머리 쓰는 것보다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까운 일이다."라는 것이 지금 나의 결론이다. 그래서 더욱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써하는가."
나는 달리기는 했지만, 달리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달리기로 인해서 가정이나 직장, 글쓰기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글은 조금 다르다. 내가 글을 쓰는 일로 직업을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쓴 글이 사랑을 받고, 그래서 내가 쓴 글로 돈을 벌고, 그래서 내가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난 직장을 포기하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많이 생각한다. 아내와 아이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최소한 가정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수준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운이 내게 따른다면, 기꺼이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곧장 따라오는 의문. "그럼 그만큼 노력해야지, 네가 여태 무슨 노력을 얼마만큼 했는데?"
맞다.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고, 노력해 보고자 애썼던 순간들도 최선을 다해 글을 쓰려고 했다기보다, 최선을 다해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올해 365개의 글을 써보겠다는 연초의 다짐은 70여 개의 업로드 목록을 보면 처참한 수준으로 어그러졌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아직 그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6년이 되든 2027년이 되든 365개를 꼭 채워야겠다는 목표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을 주욱 써 내려가다 보니 분명히 알겠다. 지금 내가 내게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써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인가."라는 것을.
내게 글쓰기는 달리기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달리기보다 목표를 더 촘촘하게 세분화시켜서 세워야 할 것이다. 온몸으로 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일(글쓰기)을 끝끝내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잊을만하면 다시 쓰고, 잊을만하면 다시 쓰려고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촘촘해진 작은 목표들을 하나씩 밟아나가다 보면 그래서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고 나면 지금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그때가 오길.
2025.10.31 21:30 365개의 글 중 71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