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0%

개인적인 만족도와 표면적인 완성도의 교차점.

by 돌이


오랫동안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세 가지 하면, 식욕 수면욕 성욕을 이야기해왔다. 나는 성욕이 식욕 또는 수면욕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고 생각한다. 식욕과 수면욕은 타인의 시선을 본능에 비해 덜 의식한다. 좋은 것을 먹느냐, 보기 좋은 것을 먹느냐, 비싼 것을 먹느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좋은 침대에서 자느냐, 얼마나 수면의 질이 좋으냐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무언가를 먹어야 하며, 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성욕은 다르다. 상대가 꼭 있어야만 한다.


상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있어야만 해소가 되는 욕구, 성욕이 인간을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는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존재에게 나를 내보이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다. 우리는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존재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경쟁 우위에 서도록 발버둥 치게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성이 문명을 통해 발전하며 본능을 거부하고 거스르는 일이 점점 더 쉬워지고 있지만, 성욕은 본능이다. 다시 말해, 식욕과 수면욕과 달리 성욕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없다면 실현될 수 없는 욕구인 것이다.


나는 지독하게도 비교를 한다. 내가 하는 많은 일들의 동기가 바로 타인과의 비교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점이 나는 나에게 항상 불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하게, 선한의 도로 생산적인 일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상대방은 눈치채지도 못하게 나 혼자 조용히 그와 경쟁을 하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수십, 수백 번 상대방을 끄집어 내리고, 기어코 끄집어 내린 뒤에는 환호하고, 그를 조롱했다. 그러나 겉으론 평화로운 척, 고상한 척, 좋아 보이는 가면들을 모조리 꺼내 뒤집어썼다. 내가 타인들에게 내보이는 내 모습과 내 내면의 괴리가 너무나 커질 때면, 더 이상 나를 감당하기 힘들어 동굴로 숨어버리곤 했다.


동굴에 며칠, 몇 시간씩 숨어있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들에게서 완전히 잊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없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용도폐기 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면 또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가면을 쓰고 살아갔다.


세상을 살다 보니,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뒤늦게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책 속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 다마 자신만의 못난 내면이 있었고, 그 내면을 온전히 다루지 못해 힘들어했다. 각자 자기만의 가면을 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나만 못난 것이 아니었기에. 나만 못난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했기에. 비교로 비교의 늪에서 조금 자유롭게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태어난 뒤부터 내 시간이 줄었다.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어떤 사람은 배드민턴을 열심히 쳐서 대회도 나가고, 또 어떤 사람은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탄탄대로를 걸었고, 자기만의 콘텐츠로 유튜브를 해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둘째가 태어난 뒤, 우울증이 왔었던 것은 더 이상 나는 성장할 수 없다는, 이제는 너무나 많이 뒤처져 버렸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즈음부터 나는 제한된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나에게 맞는 방법이 뭘까, 많이 고민했다.


1.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좋아야 한다.

2.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3. 그래서 내가 유능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100점짜리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1. 질적으로 좋아야 한다.>는 조건은 만족할 수 있지만, <2.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조건은 만족시킬 수 없다.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여러 일을 벌이지 말고 한 번에 한 가지씩 100점짜리로 마무리하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면 <2.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조건도 만족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렇게 되면 나는 일처리 속도가 너무 느려 <3. 유능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


비슷한 이유로 90점짜리 결과물도 나에겐 무리라는 귀납적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배움이 있었다. 80점 정도 되는 결과물까지는 비교적 손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1. 질적으로 좋아야 한다.>는 조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포장만 잘한다면 괜찮은 결과물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동시에 <2.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 하>며,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니 <3. 유능하고 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협점을 찾았다.


내가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지점. 80점짜리 결과물. 달리기 마일리지 월 200km도 같은 맥락에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월 200km는 80점짜리가 안될 수도, 80점보다 높은 점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기준이라는 점이다. 월에 300km를 뛰는 사람도, 그 이상을 뛰는 사람도 내 시야엔 많다. 굳이 러닝이 아니어도, 하루에 1시간 이상 일주일에 4회 이상 같은 종목 운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더 많다. 한 달 200km가 나에겐 <1. 질적으로 좋아야 한다.>, <2.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3. 내가 유능하고,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에 모두 만족하는 수치인 것이다.


이 방법이 적용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100점짜리를 쓰고 싶다. 이 어처구니없는 욕망이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80점짜리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단련하고 수련해 100점짜리를 쓰지 못할 바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나을까. 오늘도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2025. 11.2 365개의 글 중 72번째 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