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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안, Opening

미세먼지가 걷히고

by 돌이
1점 소실


하늘이 참 맑다. 지난 며칠간 건물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눈에 들어오던 풍경이 오늘은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튀어나온 고층 아파트와 그 뒤로 펼쳐진 파랗고도 높은 하늘이 말이다. 나는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 사진의 가운데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를 응시했다. 또렸했다. 누렇게 빛이 번진 하늘을 배경으로 아파트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였다.


'꽤나 멀리 떨어진 저 건물이 이렇게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단어다. "개안". "눈을 뜸.", "깨달아 아는 일."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뇌리에 콱 박혔다. 그 순간엔 어떤 뜻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하늘이 맑아진 것인지, 내 눈이 깨끗해진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하늘이 맑아진 것도 있지만, 내 눈이 깨끗해진 것도 있다.


최근에 내 뇌리에 새겨진 키워드들이 있다. 첫 번째는 요즘 인기 있는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이고, 두 번째는 유튜브 채널 "낭만러너 심진석"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얼마 전 KBS에서 공개 콘서트를 한 "조용필" 선생님이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유튜브에서 시청했다. 일단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김연경 선수가 중심으로 등장한다는 점, 언더독스라는 팀에 선발된 선수들이 생존을 위해 경기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강한 압박이 흥행에 있어서는 너무나 좋은 점들이다. 두 번째로 연출에 있어서 의미 없는 슬로우 모션과 같은 장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 없어, 이야기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때문에 답답하지 않다. 프로그램의 룰은 다음과 같다. 한국 고교 우승팀, 일본 고교 우승팀, 대학리그 우승팀, 실업 우승 팀, 프로팀, 프로리그 준우승팀, 프로리그 우승팀과 7경기를 해서 50%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면 팀이 지속된다.


내 관심을 잡아 끈 지점은 감독 김연경과 언더독스에 선발된 선수들과의 차이다. 언더독스에 선발된 선수들은 대부분 여자 프로배구 팀에서 방출된 이들이다. 방출의 이유는 다양하다. 실력에 비해 연봉이 너무 높다고 판단했거나, 해당 선수의 포지션이 겹쳐지거나. 대부분의 경우는 실력이 부족해서라는 게 프로그램에 나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 김연경 감독은 훈련 상황과 시합 상황에서 선수들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 속에 김연경과 언더독스 소속 선수들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김연경은 사전엔 상대팀을 분석하고, 시합 땐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마다 최선의 선택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쓴다. 선수시절 어떤 방식으로 선수생활을 했는지,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선발된 선수들에게선 그런 모습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겠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눈에 띄게 노력을 했던 이들은 분명히 기량의 성장이 있었다. 지능적으로 분석하고 경기 상황에서 적용하고자 애썼던 이들은 경기 속에서 분명히 빛났다. 대한민국 여자배구 1위, 김연경과 방출된 선수들을 비교하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프로라면 최고를 위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두 번째, 유튜브 채널 "낭만러너 심진석"이다. 처음에는 "낭만러너"라는 수식어가 불편했다. 심진석 선수는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는 것일 뿐일 텐데, 보는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그를 낭만러너라고 규정짓는 것만 같아서였다. 며칠 전 그의 이름을 내건 유튜브 채널에 그의 일상을 소개하는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새벽 5시 출근하는 모습으로 시작한 영상은 내겐 그리고 많은 시청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출근 복장, 발을 보호하기 위해 쇠가 들어간 안전화, 안전모가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아침부터 8km를 4분 페이스로 달리는 모습은 다양한 이유로 달리기를 미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참 다양한 변명을 해왔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져서,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등등. 실제로 이런 이유로 달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충분히 달릴 수 있음에도 달리지 않기 위해 들이댔던 핑계들이었기 때문에.


심진석 선수는 그냥 달렸다. 몸이 피곤하니까, 월요일이니까, 어제 무리했으니까, 배낭을 메었으니까, 안전화를 신었으니까, 날씨가 추우니까, 날씨가 더우니까, 복장이 쾌적하지 않으니까와 같은 토는 달지 않았다. 그는 이틀 연속 풀마라톤을 달리기도 했고, 양말을 신지 않고 달리기도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게 그저 달렸다. 그는 2025년 현재 풀코스 2시간 31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세 번째, 조용필 선생님이다. 올해로 75세인 조용필 선생님은 KBS에서 주최하고 진행한 무료 공개 콘서트를 진행했다. 고척 스카이 돔(1만 6천여 명 수용가능)에서 진행한 콘서트에서 두 시간 가까이 특별한 멘트 없이 공연을 진행한 조용필. 75세의 나이에 2시간 공연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체력과 목소리.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과 목소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위해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버려야 하지 않았을까.


하늘이 맑아졌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명해졌다. 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내가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버려야 한다. 어떻게 행동에 옮길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 일지 고민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일단 시작해야 한다. 해오던 방식대로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눈을 드는 법을 알앗디.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디 위해 그렇게 행동 했다는 것도 알았다. 나도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2025.11. 11 365개의 글 중 73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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