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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 Car wash

새 차를 뽑으면 고사를 지냈던,

by 돌이

10년 전, 군을 전역하자마자 첫 차를 샀다. 다들 첫 차는 중고차를 뽑는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꼭 새 차를 뽑고 싶었고, 친척을 통해서 은색 소형차를 구매했다. 계약하고 일주일 뒤, 틴팅까지 마친 차를 인수해 가라는 연락을 받고 신나는 마음으로 틴팅샾으로 향했다. 딜러가 내 손에 차키를 쥐어 주었고, 나는 운전석으로 가 차문을 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시동을 걸 수가 없었다. 차키를 꼽고 돌리는 순간 차가 앞으로 튀어나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계속 그려졌다. 차키를 건네받은 내가 시동도 걸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비웃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지고, 창피했지만 심장이 쿵쾅거려 도저히 시동을 걸 수 없었다.


일단 운전석에 앉은 게 일 년 만이었다. 주행시험을 위해서 운전석에 앉은 게 일 년 전이었고, 그 후에도 이러저러한 일들로 연수를 받는다거나 할 기회가 없었다.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덜컥 차를 계약하고 뽑았던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는 조수석에 앉아, 나를 안심시켜 줬다. 시동을 걸어도 된다고, 액셀을 밟아도 된다고, 기어를 주행으로 두어도 된다고 말이다. 그렇게 1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30분 걸려 느릿느릿 주행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차를 몰고 출근을 했다. 25km 정도 되는 거리였고, 주행시간은 40분 정도였다. 사흘정도 운전하니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새 차와 함께, 군 복무 이후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새 차를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주변에서 세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차를 뽑은 뒤에는 3주에 한 번씩 손세차를 해주어야 한다고. 자동세차를 흠집이 많이 가고 자동차가 상한다며, 꼭 세차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곧장 마트로 향했다. 바스켓, 타월, 카샴푸, 유리창 발수코팅제, 내부 클리닝, 극세사 타월 등. 처음에는 3주에 한 번씩 꼭 해줬지만 점차 주기가 길어졌다. 3년까지는 두 달에 한 번은 꼭 손세차를 해주었다. 3년이 지난 뒤에는 자동세차를 했다. 정말 너무 편했다. 손세차를 할 때만큼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시간도 절약되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도장면에 흠집이나 흠집이 생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3년을 더 그 차를 탔다.


2023년 그 차를 10만쯤 탔을 때, 사고가 났다. 조수석 쪽 바퀴와 보닛이 많이 망가졌고, 운전석 핸들에 있는 에어백이 터졌다. 자동차는 고철값만 받고 팔았다. 나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던 왼쪽 손목에 작은 열상만 입었을 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 자동차에게 고마웠다. 내가 다칠 몫까지 모두 안고 망가져버린 것만 같았다. 온전하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게 망가뜨려서 내다 버렸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나는 참 몹쓸 짓을 많이 했는데, 차는 끝까지 나를 지켜주며 떠났구나.


차는 내게 너무나 소중한 물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에는 차가 없었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엄마와 함께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와야 했다. 물론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며 귀가하는 길이 싫지는 않았지만, 내 손과 엄마 손에 난 비닐봉지 손잡이 부분에 눌린 자국을 보며 항상 생각했다. '나중에 차가 생기면 장 보러 다니기 편하겠지?'


차 덕분에 날씨나 기온에 상관없이 직장과 집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출퇴근하는 시간이면 블루투스로 듣는 음악, 블루투스로 하는 통화가 또 다른 재미였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통화 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감상하는 경치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내 연애사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차가 없었다면,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한 뒤에는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결혼 초기에는 부부싸움을 참 많이도 했다. 내가 남편이 될 준비가, 아빠가 될 준비가 덜되어 있었던 탓에 아내와 잦은 갈등을 빚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차로 도망쳤다. 그만한 은신처가 없었다. 부부싸움했다고 친구에게 연락해 한잔 할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연락해 찾아갈 용기도 없었던 내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런 마음을 담아 손세차를 했었다. 자동세차를 했었다. 그리고 사고로 폐차했다.


오늘은 우리 가족차를 세차하고 왔다. 바쁘다는 이유로 참 오랫동안 세차를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세차를 하면 차에 새겨진 묵은 때가 잘 벗겨지지 않는다. 몇 달 전엔 보이지 않았던 흠집도 보이고, 찍힌 부분도 있다. 차 안에는 아이들이 먹다 말았던 과자부스러기, 과장 봉지가 한가득이고,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마시다 흘린 커피자국이 여기저기 그대로다. 운전석 쪽 전면 유리창과 계기판 덮개에는 말하면서 튄 침자국이 선명하고, 카매트에는 신발에서 떨어진 흙이 가득했다.


우선 차에 있는 모든 짐들을 꺼냈다. 조수석 글로브 박스와 센터콘솔에 있는 짐들까지 모두 걷어냈다. 1열부터 3열까지 깔려있는 카매트를 모두 꺼낸 뒤, 진공청소기와 에어건으로 내부의 흙과 쓰레기, 과자 부스러기를 모두 정리하고 깨끗하게 물세척한 카매트를 다시 설치했다. 꺼냈던 짐들을 분류하고 정리한 뒤에 다시 글로브 박스와 센터콘솔에 정리한 뒤에 물세차장으로 갔다.


물세차장에서 고압수로 먼지와 흙을 1단계로 걷어내고, 분사형으로 나오는 워시 폼으로 자동차를 덮어주었다. 자동차가 거품에 하얗게 덮인 뒤엔 중력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거품이 내려온다. 다시 한번 고압수로 세척해 준 뒤, 카샴푸로 다시 한번 자동차를 닦아준다. 이때 전면 유리창에 있는 유막과 뒷 유리창에 있는 유막도 제거해 주고, 타이어 세정제도 함께 분사해 준다. 카샴푸로 자동차를 모두 한번 씻겨준 뒤에 다시 한번 고압수로 깨끗이 묵은 때를 씻어낸다.


물세차장에서 차를 빼내 다시 진공청소기가 있는 곳으로 차를 옮긴다. 세차용 대형 수건을 꺼내 차에 남아있는 물기를 모두 닦아준다. 유리창은 발수코팅제를 뿌려 닦아주고, 얼룩이 있는 부분은 얼룩제거제를 뿌려 지워준다. 타이어엔 타이어 광택제를 뿌려 광택을 올려주고, 자동차 구석구석 남아있는 물기를 모두 닦아주면 세차 끝. 내부에서부터 타이어까지 깨끗하게 한바탕 씻겨내고 나면 개운하다.



2025.11.30 365개의 글 중 74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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