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며칠 전, 큰 딸이 학교에서 물고기 '구피'를 데려왔다. 우리 가족은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던 구피가 혹시나 죽을까 봐 걱정했다. 구피가 우리 집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물속놀이터라는 곳에 방문해 작은 수조부터 여과기, 온도 조절기, 조명 그리고 다른 물고기까지 구입해 왔다. 수조에 넣을 물을 담고 준비를 하는 동안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온도 조절기를 설치하다가 깨 먹은 것이었다. 수조에 반쯤 채워 넣었던 물을 모두 버리고, 물을 다시 받았다. 새로운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이들과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수조 앞으로 달려갔다. 밤사이 물고기들에게 별다른 일은 없었는지 그들이 헤엄치는 것을 바쁜 아침시간에 한참을 들여다본 뒤 아침준비를 시작했다. 퇴근 후에도 똑같았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수조 앞으로 달려가 조명을 켜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오늘 밤에는 누가 물고기들에게 밥을 줄 것인지 다퉜다. 물고기들이 수면에 떠있는 먹이를 먹는 입모양은 어떤지, 바닥에 가라앉은 먹이를 주워 먹는 입모양은 어떤지, 똥은 또 얼마나 길게 싸는지, 임신한 암컷 구피의 배는 어제보다 얼마나 더 부풀어 올랐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정작 본인들의 옷 갈아입는 일은 뒷전으로 한없이 밀렸다. 밥을 다 차리고 모두에게 외쳤다.
"그만 쳐다보고 밥 먹어!"
지난주에는 파란 구피가 새끼를 낳았다.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임신을 한 건지, 우리 집에 온 뒤에 임신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배가 많이 불렀고, 새끼를 낳을 것 같다던 아내는 새끼를 키우기 위한 수조 안에 작은 수조를 따로 구입했다. 수조 안에 수조에 들어가 있던 물고기는 다음 날 새끼를 낳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았다. '물고기는 알에서 태어나지 않나? 왜 새끼를 낳은 것 같지?' 내가 지나간 뒤에 수조로 달려간 아내가 말했다.
"아기 물고기 엄청 많아. 하나, 둘, 셋,...., 열다섯."
오늘 아침 수조 앞으로 달려간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우리 집에 온 지 3주 만에 처음으로 물고기가 여과기에 끼어 죽었다. 물고기들을 사 올 때, 물속놀이터 사장님이 말했다.
"한 달 뒤에 10마리 중에 반절만 살아 있어도 잘 키우신 거예요. 아, 그리고 여과기에 물고기가 끼어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여과기 틈을 잘 벌려주세요."
수조에 처음엔 11마리의 물고기가 있었다. 지금은 처음에 사 온 11마리 중 10마리가 살아남았고, 15마리의 물고기가 새로 태어나 자라고 있다. 모두 25마리다.
아내와 아이들은 계속해서 집에 새로운 생명을 들인다. 물고기가 오기 전에는 하늘고추라는 관상용 식물을 데려오기도 했고, 어머니 합동차례를 지내러 간 곳에서 받아온 국화도 키우고 있다. 기존에 키우던 식물들까지 계속해서 가족이 늘어가는 게 나는 영 부담스럽다. 내가 책임져야만 하는 생명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오늘 아침 구피의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내일 또 다른 어떤 존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죽은 구피를 보며 아내와 아이들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내가 말했다.
"물고기 지능이 몇이지? 어떻게 저 여과기에 끼어서 죽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지."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내뱉은 뒤에 생각했다. 내 말이 너무 메말라 있지는 않았나.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두려움 때문에, 내 책임은 없다는 변명을 하고 싶어서 엉겁결에 뱉어버린 말은 아니었을까. 아내가 플라스틱 컵에 물을 담에 죽은 물고기의 사체를 넣어두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투명한 물, 그 속에 담긴 붉은 구피 한 마리가 배를 뒤집어 까고 둥둥 떠 있었다. 나는 플라스틱에 담긴 물을 따라내고, 사체만 남겨두었다. 투명한 비닐봉지를 꺼내 물고기 사채를 담았다. 그리고 냉동실에 넣었다.
"얘들아 오늘 학교 다녀온 뒤에 물고기 묻어주러 가자."
2025. 12. 2 365개의 글 중 75번 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