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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함, Tenacious

어리석어 보이지만, 어리석지 않은

by 돌이

벌써 지어진 지 20년 가까이 된 곳이 있다.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긴 시간 동안 가보지 못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무심코 들어선 경사로에서 나는 멈춰 섰다. 길었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처럼 보였다. 다른 곳들은 20여 년 전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그 상태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것처럼 보였고, 더러는 새롭게 지어 올리 곳들도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골목 중 하나에 불과한 그 경사로 양 옆에 끼인 물 때와, 물 때 위를 뒤덮은 녹색 이끼 만이 유일하게 그 시간을 온전히 전달해 주는 것만 같았다.


tempImageHAxNHD.heic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생가에서 내려오는 길목


"아빠, 여기 누가 대통령 할아버지 이름 앞에 '바보'라고 써놨어."


대통령 묘역에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 바닥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남긴 문장이 박석에 새겨져 있었다. 여러 문장 중에 아들의 눈길을 확 잡아끈 문장은 '바보 노무현'이었다. 참배를 마치고, 길 건너에 오픈한 노무현 기념관에 갔다. 기념관은 1 관부터 10관까지 '바보 노무현'의 인생을 시간 순서에 따라 테마를 정해 나누어져 있었다.


"아빠, 대통령 할아버지는 시민들을 많이 사랑했나 봐."

"딸, 그게 느껴져?"


1 관부터 진지한 태도로 사진과 글자를 들여다보던 아내는 8관에 놓인 스크린 앞에 멈춰 섰다. 대통령의 삶이 어떠했는지, 대통령의 죽음은 또 어떠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그 영상을 보면서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기념관에서 나와 차까지 걸어가는 길, 아들은 물었다.


"그런데, 대통령 할아버지는 왜 죽은 거야? 누가 죽였어? 아파서 죽었어? 아니면 혼자 스스로 죽은 거야?"



추석 연휴가 길었다. 추석 당일 어머니 합동향례를 마치고, 처가댁에서 아침식사를 한 뒤 우리 가족은 김해로 떠났다. 아무 연고도 없는 김해까지 평소였다면 3시간이면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귀성객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뒤엉켜 6시간이나 걸려 오후 5시 30분에 간신히 도착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우리는 텐트를 쳐야 했다. 자동차 진입이 어려운 곳에 예약을 해둔 탓에 우리 가족은 차와 텐트 자리를 여러 번 왕복해야 했다. 3박 4일 김해 여행의 첫날이었다.


둘째 날 저녁, 금관가야와 김해 천문대를 다녀온 뒤 녹초가 된 아이들을 재운 뒤, 아내는 장작을 피우자고 했다. 하지만 불을 피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날이 습했고, 장작에 불 붙이는 것을 도와줄 착화제나 토치가 없었다. 종이에 불을 붙이고, 선풍기로 공기를 쏘아주고 10여분을 애써보았지만 불길이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10여분이 더 지났을까.


"여보, 나와."


얇은 장작 하나가 활활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불을 내고 있었다. 아내가 성공한 것이었다. 잠시 뒤, 옆에 붙여있던 장작에 불이 옮겨 붙더니, 곧 화로가 커다란 불길로 가득해졌다. 참 따뜻했다. 불이 붙으니 모기도 달려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셋째 날 저녁, 워터파크와 아웃렛을 다녀온 뒤 역시 녹초가 된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함께 텐트 밖으로 나섰다. 나는 전 날 아내의 성공을 목격한 바, 오늘은 내가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어제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로 불 붙이는 일에 임했다. 나는 화로대 안의 온도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키친타월에 불을 붙여 화로대 곳곳에 쑤셔 넣었다. 키친타월에 붙은 불이 장작에 옮겨 붙기 전에 불씨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키친타월을 한 통 다 써갈 무렵, 오늘은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이그,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여기저기 불을 붙여대면 장작이 타겠냐? 가장 잘 탈 것 같은 장작 한놈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공략을 해야지. 으이그, 바보."


나는 결혼 생활 내내 보지 못했던 아내의 전략적인 모습과 집요함에 놀랐다. 더불어 그녀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나의 무지함과 어설픔에도 놀랐다.


마지막 날, 텐트를 정리하고 봉하마을로 향하는 길, 아내는 내게 물었다.


"봉하마을이 왜 가고 싶어? 예전에 부산여행 갔을 때도 들렀다 가자고 했었는데."


나는 대답을 고르다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운전만 했다.


봉하마을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나와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누군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바람개비 좋아해? 일로와 봐. 바람개비 만들어줄게."


파라솔 밑에 서서 바람개비를 만들어주는 자원봉사자였다. 그는 봉하마을의 위치를 소개해주며, 자기소개도 얹었다.


" 대통령님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매주 주말마다 경기도에서 내려왔어요. 16년 개근. 저쪽에 가면 국화 있으니까 필요하면 한송이사서 가시면 되고, 요 뒤쪽에는 대통령의 집. 그리고 저기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바위 말고, 그 밑에 있는 바위 있죠? 거기가 부엉이 바위고."




아내는 노무현 기념관 3관 즈음에서 내게 물었다.


"왜 이렇게 까지 한 거야?"


그랬던 아내가 눈물을 쏟았다.


"넌 도대체 왜 운 거야?"


나는 의아함 반, 놀리려는 마음 반, 반반의 마음으로 집요하게 아내에게 되물었다.


"몰라. 사실 여기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먹먹했는데, 네가 놀릴까 봐 꾹 참았어. 그런데 그 영상 보는데, 앞에서 봤던 생활기록부의 기록, 감옥 갔던 일 이런 게 다 이해가 되는 거야.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터졌어."



2025. 10. 11 365개의 글 중 70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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