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뒤에 숨기
나는 겁쟁이다. 글을 쓰기 전에 가장 많이 쓰던 표현이 '~인 것 같다.', 이다. 다른 여러 이유로 저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명확하다. ~일 것 같다고 했던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을 경우 책임을 지지 않을 개구멍을 파 둔 것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기에,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 틀렸을 땐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정정하면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파둔 구멍이었다.
오래된 애니메이션 <머털도사>에 이런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갈대를 아무렇지 않게 꺾는 머털이와 그 모습을 보고 도사는 커다란 나무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이 나무를 갈대 꺾듯이 꺾어보란 말이야."
그러자 머털이 답한다.
"태풍이 불어도 끄떡 않을 나무를 어떻게 꺾으란 말씀이십니까."
머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은 점점 강해지더니 결국 태풍이 불어도 끄떡 않을 것 같았던 나무를 꺾어낸다. 깜짝 놀란 머털이를 바라보며 도사는 말한다.
"그럼 갈대는 어떻게 되었느냐."
갈대는 사람 손에는 쉽게 꺾였지만 바람엔 오히려 나무보다 끄떡없었다. 도사는 말한다.
"커다란 나무는 거센 바람에 쓰러지지만 갈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보다 더 겁쟁이였을 때 나는 꼿꼿했다. 완벽하다고 속으로 생각만 할 뿐, 겉으로는 완벽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나만의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느낌으로 안다. 나의 그런 태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오점, 결점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네가 완벽하다고? 정말? 확실해? 그렇다면 내가 너의 완벽함에 먹물을 끼얹을 오점을 반드시 찾아주지.'
그렇게 나의 오점이 발견되면 나는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한다. 나를 공격하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으로 말이다. 상대의 그런 태도를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결론적으로 모든 원인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갈대가 되어야 한다. 내가 겁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하고, 강한 척하려고 하고, 근육을 키우고, 아는 것을 많이 드러내려고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야 들어야 한다. 때문에 나와는 생각이 다르거나, 내가 한 말이 사실과 틀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그런 상황이 되면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면 그만임을 알아야 한다.
갈대는 바람이 불지 않을 땐, 바르게 서 있는다. 그러나 바람이 동에서 서로 불어 가면 달대로 동에서 서쪽방향으로 쓰러진다. 내가 태풍이 불어도 끄덕 않을 나무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러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결국 꺾여 나갔고, 점점 생명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지만 지금 쓰는 글들보다 더 선명한 주장을, 강한 어조로 내뱉으려고 할 때마다 내면의 필터가 작동한다. '이 문장이 너무 과격하지는 않은지, 정치적인 면에서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져있지는 않은지, 혹은 나중에 내가 지금 쓴 글이 내 발목을 잡지는 않을지, 글을 읽을 독자가 내 글을 읽고 평생 비웃진 않을지. 결국 나는 그 문장을 포기한다. 그리고 더 애매모호하고 아리까리한 문장으로 내 생각을 바꾼다. '~인 것 같다.'처럼.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그 뒤에 오는 헛헛함이 있다. 아직까지는 그 헛헛함이 발행 버튼을 눌렀을 때 분출되는 성취감보다 낮다.
이런 내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본 적이 있다. 문학 작품을 쓰고자 하는 욕구, 그중에서도 에세이가 아니라 단편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문학이 갖고 있는 비유 뒤에 숨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문학이라는 학문적 특성 뒤에 숨어 은근하고,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싶은 것이다. 결국 나는 비겁한 겁쟁이다. 나에게 문학은 그저 홀로 숨는 것조차 하지 못해 문학을 이용해하고 싶은 말은 내뱉으면서 또 분명한 내 생각을 말하기 싫어하는 욕구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런 비겁함으로는 글을 더 이상 써내려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너무도 큰 힘을 가져버린 관성이라는 구슬을 멈춰 세워야 할 때이다.
2026. 03. 04 365개의 글 중 91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