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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은 우리를 먼 곳으로 끌어당긴다.

하늘, sky

by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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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을 옮기지 않았다. 이사한 집에서 아이들 어린이집까지 3km. 자가용으로 10분 거리, 버스타고는 15분 거리, 걸어서는 35분 걸리는 곳에 어린이집이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지갑을 자가용에 두고 내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신발장을 열었다. 나는 제일 편한 신발을 꺼내 신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나오더니 힘이 넘쳐 보였다.

"얘들아 오늘은 집까지 한번 걸어가 볼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신이 났는지 방방 뛰었다. 딸은 쫑알쫑알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아들은 빨간 벽돌만 밟겠다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저만큼 앞서서 가던 아들이 멈춰섰다. 그리고는 하늘을 보았다.

"아빠, 나 오늘 비행기 3개나 봤다?"

아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푸른 하늘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유유히 하늘을 가로지르는 흰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들은 그러고도 몇 초동안 파란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오전에 읽었던 책 한 구절이 생각났다. 한병철 작가의 <불안사회>의 한 문장이었다.

"파란색은 우리를 먼 곳으로 끌어당긴다."

<불안사회>는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과 같이 희망이 없는 공동체는 회색으로 덮여 있다."고 말했다. 파란하늘이 아니라 회색하늘 말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희망할 수 없는, 당장 눈 앞의 현실을 살아가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희망이 없는 불안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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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사회>를 잠깐 내려놓고 나는 창문을 바라봤다. 평소에는 저 멀리 있는 건물이 참 또렷하게 보였는데, 오늘은 하늘이 흐릿했다. 파란 하늘이 아닌 회색 하늘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미세먼지 수치를 검색했다. '매우나쁨'.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러다 말았다. '2~3일 정도 환기하지 않은 내부공기가 더 탁할까, 미세먼지 '매우나쁨'수치의 공기질이 더 나쁠까.'를 생각하는 것도 잠시, 창문 손잡이를 내려놓았다.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사하면서 구입한 로봇청소기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구석구석 빨아들이고, 박박 닦았다. 혼자 있었지만, 혼자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오늘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쓰지.', '점심밥은 무엇을 먹지?', '또 해야할 일이 뭐가 있지?' 생각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었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닌 채로 몇 시간을 보낸 뒤 어린이집 하원을 위해 집을 나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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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2km쯤 걸어가니 공원이 나왔다. 생긴지 얼마 안된 공원 중심부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다. 미끄럼틀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가방을 내려놓고 달려들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곧 입주를 앞둔 아파트가 있었다. 그 아파트 뒤로 노을이 은은하게 지고 있었다.

"아빠 술래잡기 하자! 신호등 놀이도!"

한참을 놀고 집으로 마저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은 물었다.

"아빠는 제일 가고 싶은 나라가 어디에요?"

아들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묻지도 않은 딸이 대답했다.

"나는 터키! 터키 아이스크림 먹어보고 싶어."

"나는 일본. 아빠 일본에도 아이스크림 있어요?"

누나가 터키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하자 샘이 났는지 아들도 아이스크림이 있는지 물었다. 이미 터키와 일본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아이였다. 나는 아들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아빠, 나 오늘 비행기 3개나 봤다?"


덕분에 나도 오늘 하늘을 여러번 보았다.


2025.01.21 365개의 글 중 5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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