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에 대해서 쓰다.
4일만에 첫 번째 위기가 왔다. 오늘은 아내가 야근하는 날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누웠다. 자장가를 불러주다 내가 먼저 잠에 들었다. 거실에 두고 온 핸드폰에서 미리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집어든다. 유튜브를 누른다. 쇼츠를 본다. 머리를 흔들며 앱을 껐다.
"일기 써야지."
오전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시리즈를 건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오늘 글쓰기로 일기를 쓸 줄 어떻게 알고.'라고 생각했다. 동화를 쓰는 친구다. 공모전에 입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일년동안 동화쓰기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옆에서 나를 채찍질 해주던 친구다. 결국 나의 포기로 안타깝게도 그 친구의 오랜 노력이 무산되었다. 친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작법서를 선물했다.
친구와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 우리는 책을 읽는 것과 글 쓰는 이야기를 했다. 중간중간 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도, 이슈가 된 인물에 대한 여담도 나누었지만 결국 돌고돌아 읽고 쓰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는 친구에게 동화쓰기를 잠정 중단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브런치에 매일 몇 문단씩 1년 동안 올릴 계획을 말했다.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제는 한강 작가와 알베르 카뮈로 옮겨갔다. 우리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두 작가가 각자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와 한강 작가의 '폭력성'.
내가 스물 여섯일 때, 다른 친구들보다 한참 늦게 군대에 입대를 했다. 장교로 입대해 돈을 벌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군대에서 뭐라도 얻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습관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책을 펼쳐들었다. 처음에는 자기개발서로 시작했다. 몇 권 읽어보니 각자 자기만의 스토리, 성공 전략이 있었다. 몇 권 읽다보니 작가들이 책 속에 펼친 각자의 성공담이 더 이상 흥미롭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에세이를 읽었다. 자기 개발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즐거움이 있었다.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어느 순간 나는 에세이를 읽다가 벽을 느꼈다. 나는 에세이가 기억에 잘 남지 않았다. 크게 공감을 받았던 수필집도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나면 머리에서 곧장 잊혀졌다. 반면 오래전에 읽은 소설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수필과 소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분량의 차이일까, 아니면 한 편의 글을 쓸 때 작가가 담은 정성의 차이일까. 사랑을 말하는 수필도, 사랑을 말하는 소설도 사랑을 말하는 것은 같은 것 아닌가. 읽은 때 소설과 수필 모두 좋다면 왜, 어떤 것은 기억에 오래 남고, 어떤 것은 빨리 잊혀지는가.
학문적인 분석이 있을테지만 나는 잘 모른다. 전문적인 이유는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방법적인 면에서 오는 차이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수필은 자신의 생각을 짧게 표현한 것이라면, 소설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수필보다는 더 복잡하고, 더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늘어놓는다. 소설이 가지는 복잡성과 논리적인 치밀함이 기억에 오래 남게 만드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수필은 두시간, 세시간짜리 강연처럼, 소설은 16차시 강의처럼 느껴진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 두시간 세시간짜리 강연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16차시짜리 강의를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복잡하고 치밀하게 설계를 해서 글을 읽을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내 글이 독자에게 될 수 있으면 될 수 있는데로 큰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에세이보다 소설을 쓰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아직 소설을 쓸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작법서를 읽으며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채우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16차시를 강의해야 하니 앎에 있어서 보다 깊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이미 좋은 책은 넘쳐나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권의 책이 출판된다. 해야 할 말, 세상에 필요한 말,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미 책으로 나와있다. 나는 그 작품들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무언가를 쓰고 싶다. 지금의 나는 조금이라도 다른 무언가를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수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글을 쓰는 작가 분들께는 죄송하다.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수필을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다.
내년 1월에는 내가 뭐라도 조금 다른 나만의 무언가를 발견했길 소망한다.
2025.01.20 365개의 글 중 4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