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니(할머니)랑 나랑, 아랫집 중이네 한마니랑, 두 평 남짓한 초가집 안방, 초꼬지 불(호롱 불) 아래에 앉아있다.
한마니는 바느질 중이다. 중이네 한마니는 주머니에서 봉초 담배(담배 가루만 있는 것)를 꺼내어, 종이에 말아 불을 붙인다. 나는 눈이 침침한 한마니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 드린다. 중이 한마니가 피우다 남은, 담배꽁초들에서, 남은 담배가루만 모아 담배를 다시 말아드린다.
나의 어릴 적 자리는 늘 할머니 곁이었다. 무서운 아버지에게 혼이라도 날 양이면, 늘 치마폭에 우리를 감싸고, 뒤돌아서서 안아 주었고, 그 품에서는 그렇게 서러운 울음마저도 곧잘 그쳐지곤 했다.
할머니는 어릴 적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항상 함께였다. 서울로 올라오며 나의 세상살이는 더욱 고단해졌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맞았을 때도,
"내 새끼야, 내 새끼야! 불쌍한 내 새끼야."
"어쩔 거나, 어쩔 거나! 불쌍한 내 새끼야."라며
내 마음속 할머니가 같이 울고 있었다. 그렇게 응어리도 분노도 아픔도 할머니는 모두 녹여 주었다. 할머니는 내 눈물의 원천이며, 연민의 원형이다.
할머니에게 우리는 환대 그 자체였다. 세상에 태어나 이유 없이 받아본 환대의 기억은, 고된 삶을 살아낼 이유이며, 세상 모든 이들을, 나 또한 환대하고 품을 이유였다.
작은오빠도 손주가 있다. 할아버지가 멀리에서 나타나면 폴딱폴딱 뛰며 소리를 지르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오빠도 할머니 같다. 그 아이도 모든이를 환대하는 어른으로 잘 자랄 것 같다.
제주에는 설문대 할망 있다. 한라산도 만들고 오름도 만든 분이다. 치마폭에 흙덩이를 담아 다니며, 하나씩 툭툭 흘려서 만든 것이 제주 오름이란다. 한라산에 누워, 한쪽 다리는 성산 일출봉에 걸쳤다니, 거인도 그런 거인이 없다.
친구들은, 자식은 예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키웠는데, 정신 차려보니 고렇게 예쁜 것(손주)이 있더란다. 삶의 여유가 사랑도 만드나 보다.
"영아. 영아! 내 새끼야. 이쁜 내 새끼야!" 숲에서도 할머니는 말한다.
"웜마, 다 늙은 저 할망이 뭣이 이쁘다고 그라요."
산딸나무 꽃이 하얀 얼굴을 하고 웃으며 말한다.
"산딸나무야. 너 그러다 혼난다. 우리 한마니는, 나 업고 마당에 있다가, 장사치가 와서 이뻐라고 해야 물건을 팔아 주었다나 어쨌다나. 넌 이제 국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