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한마니(할머니) 동구리

내 사랑 할머니

by 동백이 좋아

아침부터 할머니는 머리에 동구리(바구니. 대나무로 엮음.)를 이고 읍내에서 집까지, 십 리 길을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친정 제사에 다녀오는 길이다. 머리에서 내려놓은 동구리에는 흰 보자기가 덮여 있고, 우리는 모두 둘러앉아, 침을 꼴딱이고 있다.

오빠는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저도 모르게 보자기를 들춘다. 팥시루떡이 속살을 내보인다. 할머니는 떡을 찢어 차례대로 조금씩 나눠준다. 밥 지을 쌀도 부족했던 시절, 떡은 제일 귀하고 특별한 음식이었다.

할머니 친정은 읍내의 부자이었다. 부잣집 막내딸은 가난한 집 손주들이 늘 안쓰러웠다. 그렇게 동구리에 쌀도 얻어오고, 떡도 얻어다 손주들을 먹이셨다.

엄마는 아이를 낳고도 먹을 것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할머니는 또 그렇게 읍내에 다녀오셨고, 엄마는 늘 아이 낳고 호강했다며, 할머니를 감사히 추억했다.

김이 귀하던 시절, 어디서 났는지 할머니는 아궁이 잔불에 구운 김을 한 장씩 나눠 주셨다. 나는 늘 내 차례가 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더 달라고 아우성인 틈바구니 속에서도, 할머니 손은 늘 모두를 공평하게 품으셨다.

고향의 송편은 유난히 컸다. 추석 때, 주먹만 하게 빚어 고소한 참기름 바른 송편을, 학교 다녀온 나에게 쥐여 주셨고, 나는 입이 터져라 맛나게 먹었다. 할머니의 자애로움도 참으로 맛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오랜 시간 방황을 했다. 분명, 엄마는 계신데 이유 없는 마음의 허함을 안고 살며, 부평초 같은 느낌으로 지냈다.

나중에야 할머니는 내 마음의 엄마이며, 자애의 원천임을 알았다. 내 마음속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서야, 세상이 살만해졌다. 부평초처럼 붕 뜬 것 같은 아슬아슬한 마음도 한결 누그러졌다. 살아계신 엄마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제주의 바다는 넓고 끝이 없다. 하늘도 그렇다. 할머니는 바다일까 하늘일까. 가늠할 수 없는 할머니의 큰 품에서, 우리는 다디단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상의 쓴맛을 니가 알어?"

칠레꽃에게 물었다.

"알제. 내 가시를 봐라. 세상살이는 참말로 써. 나도 알어."

찔레꽃이 사진 찍는 나에게 가시를 내보인다.

"너, 한마니 없지. 나는 있지롱. 그래서 난 가시가 필요 없지롱."

하하. 가시 없는 찔레꽃이라니. 그것도 웃길 것은 같다.

제주 서귀포 찔레꽃. 이승악 가는 길. 마흐니길 가는 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 영아!영아! 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