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할머니의 '가슴애피'

내 사랑 할머니

by 동백이 좋아

전쟁이 끝나, 다 돌아왔지만 할머니의 큰아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고향 대표로 뽑혀 일본까지 다녀올 정도로 똑똑한 아들이었다. 그 시절 너무 똑똑해서 탈이었던가. 여순사건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 누구는 어느 날 난리 통에, 고향까지 왔던 아들을 보았다고도 했고, 북으로 간 것 같다고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할머니 집에는, 동네 ㅇㅇ이 이상한 깃발을 꽂았다. 그렇게 낙인을 찍었다. 가끔 낯선 사람이 감시자처럼 와서 큰아들을 찾는 날이 잦았기에, 할머니는 더욱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아마, 그때부터 할머니의 그 병은 시작되었을 터였다.

우리는 그것을 '가슴애피'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자다가도 일어나 할머니는 아파하며 잠 못 이루셨다. 인정 많은 작은오빠는 슬그머니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한 물을 데우고, 설탕가루를 타서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그래도 가슴이 아프고 또 아팠다. 목포 병원에 근무하던 큰언니가, 주사약을 보내주었다. 동네 윤석이네 아부지가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프고 또 아팠다.

나의 할머니는 그렇게 아프고 또 아팠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마른 젖가슴을 만지며, 나도 따라 아팠을까. 할머니는 그렇게 아프고 또 아프고, 우리도 아프고 하늘도 땅도 아팠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할머니의 병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도 백방으로 할머니 병을 고쳐보려 했을 텐데, 할머니는 그렇게 아프고 또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저세상으로 가셨다. 70세 되던 해였다.

한 맺힌 시간들이었다.

아프고 또 아픈 중에도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길으셨다. 할머니의 사랑으로 우리는 자랐고, 우리는 할머니의 '가슴애피'를 어찌해드리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보아내느라 항상 그저 슬펐다.

슬픈 가슴을 가진 나는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의 슬픔을 걷어내주지 못한 나는 슬픈 사람이 되었다. 역사가 앗아간 아들은 그렇게 저 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창밖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마음껏 울지도 못했던 가슴속 속울음이, 그렇게 핏덩이가 되어 얹혀 있던, 그 가슴. 이제 울어도 된다며 비는 대신 울어 주고 있다.

아마, 아주 큰비가 되겠다.

울지도 못하는 아픔은 '가슴애피 병'이 된다고. 따뜻한 설탕물과 주사약도, 모두 무용지물이니, 그저 울어야 낫는다고 하지만, 울음마저 울 수 없는 슬픔도 있다는 것을 나는 할머니를 통해 알았다. 할머니와 그 아픈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한라산. 윗세오름. 선작지 왓. 만세 동산. 올해는 철쭉이 영 시원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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