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 지붕에 둘러쳐진 흰 천은 할머니의 치마인 양 바람에 휘날린다. 상여를 타고 할머니가 간다.
"에 헤에 에헤헤 어야, 에헤헤 에헤헤 에헤어야. 삼천갑자 동방삭은 삼천 갑자를 살았어도, 요내 나는 백 년도 못 살아."
"에 헤에 에헤헤 어야, 에헤헤 에헤헤 에헤어야.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이제 가면은 못 올 길을."
"에 헤에 에헤헤 어야, 에헤헤 에헤헤 에헤어야. 친구분네 잘 계시오. 자식들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요난 길로"
슬프고도 유장한 가락은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인다. 꽹과리 소리마저 구슬픈 만가를 따라 부르며, 우리도 할머니 가시는 길을 보내드렸다.
아랫동네 신작로 가에는 상엿집이 있었다. 그 상여를 쓸고 닦아 할머니를 태우고, 노제를 위해 마을 정미소 앞 큰길에 모였다. 할머니 노잣돈 하시라, 맨 앞 새끼줄에 단단히 지폐를 끼워 드린다. 마을 사람 모두 그렇게 할머니를 배웅한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다시 매고 일어선다. 다리는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다시 만가는 이어지고 흰 천은 또 바람에 날린다.
그렇게 할아버지 옆 양지바른 곳에 할머니를 묻어 드렸다. 무덤가에는 삘기도 나고, 엉겅퀴도 나고, 고사리도 피어났다. 나는 할머니 무덤가에서 고사리도 꺾고 나무도 했다. 할머니가 계신 산이라 무섭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가시고도, 할머니 방은 있었다. 사진과 제상을 놓고,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제사상을 차려드렸다. 우리는 그 방을 상방이라 했다. 크고 귀한 배나 참외가 그곳에서 상해갔지만, 우리는 먹지 않고, 그렇게 할머니를 드시게 했다.
1년 동안 그렇게 하는 것을 고향에서는'소상'이라 했고, 1년 만에 탈상을 치렀다. 이제는 그런 풍습도 모두 없어지고, 점점 슬픔을 위로할 시간들도 짧아지고 있다.
고향 할머니들은 늘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계셨다. 일이 끝나면, 수건을 벗어 휘휘 온몸의 먼지를 털었다. 비녀를 꽂은 흰머리가 보인다. 아침마다 작은 앉은뱅이 거울 앞에서, 참빗으로 곱게 빗어 머리를 틀어올려 비녀를 꼿던 할머니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할머니는 앞가르마에 시원한 이마와 적당한 콧날을 한, 곱고 아름답고 인자한 모습이다.
개별적인 '나'라고 할만한 게 있기는 한 것일까. 내 마음속 할머니는 할머니일까 나일까. 수많은 인연들이 모여 이뤄진 '나'는 나일까, 아버지일까, 할머니일까.
"으따야야 내 새끼야. 내 새끼야."라며 내 딸을 부르는 것은 할머니일까, 나일까. 구슬픈 진도 상여소리,'진도 만가'를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