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굿. 풀어야 자유다

할머니와 당골네의 굿

by 동백이 좋아

'날만 새면 내 것이다. 대추 곶감 내 것이다.'

징징징징,당당당당, 빠른 박자에 맞춰 당골네(무당)가 사설을 읊고 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던 우리는, 당골네가 저러고 있을 거라며 자주 흉내를 냈다. 사실 굿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더 간절했다. 제상에 올려진 떡과 고기 먹기를 학수고대하며, 어서 굿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안방에서는 여전히 당골네가 징을 치고 있다. 당당당당, 당당당당. 그렇게 징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을 것이다. 아침이면 당골네는 간데없고, 그렇게 밤새 굿도 끝나있었다.

어릴 적 마을에서 굿은 일상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자식도, 아픈 아이도, 할머니에게는 굿을 해야 할 이유들이었을 것이다.

당골네가 혼자 와서 하는 작은 굿도 있었지만, 씻김굿이라 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하는 큰 굿도 있었다. 장구, 징, 아쟁 등을 다루는 악사까지 따라왔다.

누가 죽기를 원하랴만,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들이 많았다. 바다는 수시로 산목숨을 데려갔고, 반도 끝섬은 전쟁에서 끝까지 몰릴 때로 몰린 자의 처절한 최후의 땅이었다.

굿은 산자의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굿이라도 해야 했다. 모두 모여 밤새 굿을 했다. 울기도 웃기도 하며 밤새 풀고 또 풀어냈다. 거대한 집단 치유의 몸부림이었다.

떠난 자를 불러 영혼을 씻긴다. 가는 길을 잘 닦아서 좋은 곳으로 보내드린다. 산자는 이제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살아내야 한다.

굿은 산자의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며, 숙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받아들임이며, 그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음이다.


서울의 거대한 경기장에서는, 수만의 여인들이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같은 색의 봉을 흔들고 있다. 악사들은 더욱 화려해졌고, 영웅가수의 노래는 더욱 애달파졌다.

전쟁도, 바다의 앗음도 사라졌지만, 우리는 지금 더 많이 맺힌 것일까?

나는 오늘도 깊고 깊은 숲에서, 한 판 굿판을 벌임인가. 노루와 딱따구리를 악사로, 때죽나무 떨어진 흰 꽃은 천궁 가는 길의 곱고 고운 꽃으로, 나는 한을 풀어내는 무녀라도 됐음인가?

자유는 풀이다. 마음을 풂이다. 풀어야 삶이다.

굿판 무녀의 손에서는 창호지를 길게 잘라 만든 여러 갈래의 지전들이 나부낀다. 경기장 여인들의 봉들도 흔들흔들 나무 낀다. 히어로가수가 애드벌룬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 여인들 마음 맺힘이 풀림인가. 파란 하늘빛 옷을 입은 여인들도 모두 같이 애드벌룬을 따라 난다. 나도 노루랑 숲 속 나무 위를 난다.

한판의 굿. '대자유임'이다.

제주. 성산 종달리 수국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5. 그녀들을 위한 찬가